[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어머니가 쓴 짧은 이야기에서 출발한 영화가 인간의 정체성과 실존에 관한 질문으로 뻗어 나갔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실낙원>이다. 영화는 9년 전 납치됐던 아들 "선우"(배현성)가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아들을 되찾은 기쁨도 잠시, 엄마 "소영"(김현주)은 어딘가 달라진 아들을 마주하며 혼란에 빠진다. <돼지의 왕>, <사이비>부터 <부산행>, <지옥>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장르적 상상력으로 인간과 사회의 이면을 파고들어 온 연상호 감독. 이번에는 존 밀턴의 동명 서사시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에서 사유의 실마리를 찾았다. 그러나 철학적 질문을 품었다고 해서 영화까지 어려워야 할 이유는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주 쉽게 아주 어려운 질문을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장르영화에 대한 연상호 감독의 지론이자 <실낙원>을 관통하는 창작 원칙이다.
◆ 어머니의 이야기에서 시작된 질문
<실낙원>은 연상호 감독의 어머니가 쓴 짧은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닭을 훔치고 사람을 때리는 등 악행을 일삼는 아들 때문에 고통받던 어머니가 결국 아들을 품에 안고 함께 소멸하기로 결심한다는 내용이다. 2020년 무렵 이 이야기를 접한 연 감독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집착과 극단적인 선택에 호기심을 느꼈다. 아들인 자신조차 어머니의 마음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됐고, 그 심리를 이해하려는 고민은 영화의 출발점이 됐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9년 만에 돌아온 아들 "선우"(배현성)가 있다. 어린 시절 납치됐던 선우는 끔찍한 사건을 겪은 뒤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돌아온다. 살인에서 쾌락을 느끼는 잔혹한 인물이다. 그런데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다. 선우가 납치범과 함께 지낸 시간은 불과 일주일 남짓이다. 그 짧은 시간에 살인의 쾌락에 눈뜨고, 자신을 납치범과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게 됐다는 설정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선우의 변화는 타고난 본성이 드러난 결과일까, 아니면 극단적인 경험이 만들어낸 결과일까.
연 감독은 선우의 변화를 선천적 본성이나 후천적 학습의 문제보다 "정체성"의 문제로 바라봤다. 특히 존 밀턴의 서사시 "실낙원"에서 인물의 심리를 풀어갈 실마리를 찾았다.
“"실낙원"에서 사탄은 인간에 대한 질투로 뱀의 몸을 빌려 이브를 시험한다. 나는 그 질투에 주목했다. 영화 초반 납치범이 소영을 돌아보는 장면도 아이를 걱정하는 어머니에 대한 질투라고 생각했다. 납치범은 선우의 몸을 빌린 셈이다. 돌아온 선우 역시 AI 아들에게 질투를 느끼는 것처럼 보이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연 감독은 선우가 납치범에게 세뇌당했다기보다, 스스로를 악마로 규정함으로써 감당하기 어려운 죄의식에서 벗어나려 했다고 해석했다. 납치범이 선우에게 건넨 “너는 내 아들이 돼라”라는 말은 그 정체성을 부여하는 계기가 됐다.
“교육받아서 생긴 정체성이라기보다 죄에서 탈출하기 위한 정체성인 것 같다. 자기 손으로 친구를 죽였다는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를 악마로 규정한 거다. 밀턴의 "실낙원"에도 "천국에서 섬기느니 지옥에서 다스리겠다"는 사탄의 대사가 나온다. 굉장히 인간적인 대사이지 않나. 선우도 자신의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에게 그런 정체성을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선우가 납치범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에 매달린 것은 악행의 결과라기보다 죄의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9년 만에 재회한 어머니 소영이 “넌 내 아들이야”라고 선언하면서 그 정체성에 균열이 생긴다. 납치범의 아들로 살아온 선우 앞에 또 다른 정체성이 주어진 것이다.
결국 <실낙원>이 파고드는 것은 선우가 왜 악마가 됐느냐는 질문만이 아니다. 한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스스로 믿는 자신과 타인이 기억하는 자신이 다를 때, 과연 어느 쪽이 진짜인가. 연 감독은 선우의 변화를 통해 그 질문을 관객에게 되돌려준다.

◆ 이해할 수 없는 선택, 그럼에도 이해되는 감정
선우의 변화만큼이나 선뜻 납득되지 않는 것은 어머니 소영의 태도와 마지막 선택이다. 9년 만에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았지만, 소영의 얼굴에서는 재회의 기쁨을 좀처럼 읽을 수 없다. 오히려 아들의 귀환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결말에 이르러서도 마찬가지다. 아들을 향한 애착과 두려움 사이에서 어떤 갈등을 겪는지, 극단적인 결심에 도달하기까지 얼마나 깊은 혼란을 거치는지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다. 인물의 내적 갈등이 생략된 듯한 상황에서 관객이 소영의 선택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연 감독은 소영의 감정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은 것이 의도적인 선택이었다고 응수했다. 인간의 모든 행동을 합리적인 동기와 인과관계로 설명할 수는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예로 들었다.
“그걸 설명하는 순간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것이 사라진다고 생각했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대학 시절에는 나도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다시 생각하니 조금 이해가 되더라. 인간에게는 이해할 수 없지만 이해가 되는 영역이 있다. 그 간극이 인간의 정체성과 관련돼 있다고 생각한다.”
소영의 선택 역시 이성적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워도 감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놓여 있다는 설명이다. 연 감독은 그 모순을 해소하기보다 남겨두고 싶었던 듯하다. 다만 설명을 의도적으로 생략했다는 감독의 해석과 별개로, 소영의 감정이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영화가 관객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국 설명되지 않은 선택에 대한 이해이기 때문이다.
◆ 장르영화는 쉽게 전달하는 방식이지, 쉬운 사색을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인물의 내면은 복잡하지만 <실낙원>의 전개는 비교적 직선적이다. 소영이 마주한 딜레마도 대사를 통해 명확하게 제시된다. 철학적 질문을 품은 영화치고는 지나치게 친절한 접근 아닐까. 연 감독은 오히려 의도한 연출이라고 강조했다.
“많은 관객을 만나고 싶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 관객이 생각해 봐야 할 문제는 굉장히 복잡하다. 하지만 그 사색에 도달하는 길까지 어렵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장르영화라는 틀로 이야기를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를 많이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 작품을 받아들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 장르영화는 철학을 쉽게 만드는 장치가 아니라 어려운 질문에 더 많은 사람이 접근하도록 돕는 형식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주 쉽게 아주 어려운 질문을 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게 장르영화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좀비 영화나 <지옥> 같은 코즈믹 호러가 예술영화의 하위에 있는 것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하지만 장르영화는 쉽게 전달하는 방식이지, 쉬운 사색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 감독은 대중성과 예술성에 관한 생각을 설명하다 영국 록밴드 라디오헤드를 소환했다.
“대학 시절 얼터너티브 음악에 푹 빠져 있었다. 라디오헤드의 앨범 "OK Computer"를 정말 좋아했고, 이후 음악도 너무 멋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라디오헤드가 "Creep"을 싫어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나도 팬이다 보니 그 곡을 좀 후지다고 생각했다.(웃음) 그런데 돌고 돌아 결국 "Creep"이더라. 시기마다 받아들이는 게 달라지는 것 같다.”
대중적인 형식과 깊이 있는 사유가 반드시 반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가 반드시 쉬운 질문만 남기는 것은 아니다.
폭력 묘사에서는 직접적인 자극보다 여운을 택했다. 선우가 어린 시절 친구를 살해하는 장면은 당초 화면에 담을 계획이었지만, 최종적으로 소리만 남겼다. 잔혹한 행위를 보여주는 것보다 그 사건이 인물에게 남긴 흔적에 집중하려는 선택이었다.
“그 장면을 보여줬다면 선우가 받았을 충격이나 영향이 좀 더 설명됐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직접 보여주는 것이 영화의 주제에서 벗어나는 것 같았다.”
한편 영화의 장르적 장치인 "오 기자"와 이웃 주민 "수련" 모자 역시 소영의 불안을 구체화하기 위해 배치됐다. 오 기자는 소영과 함께 사건의 실체를 추적하다가 이야기에서 물러난다. 관객의 입장에서는 미스터리를 풀어갈 핵심 인물이 갑작스럽게 퇴장하는 듯한 인상도 남긴다.
“오 기자와 수련, 하오는 소영의 고민을 장르영화로 만들기 위한 장치였다. 관객은 오 기자와 함께 소영이 느끼는 불안감을 실체화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원래 "블랙 인페르노"라는 소설에는 비슷한 역할을 하는 형사가 따로 있었는데, 이번에는 오 기자로 통합했다. 무엇보다 영화가 소영의 이야기로 끝나기를 바랐다. 마지막에 소영이 내리는 기묘한 선택으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수련 역을 맡은 김소완과의 인연도 흥미롭다. 연 감독은 영화 <3학년 2학기> GV 뒤풀이에서 김소완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눈여겨본 배우에게 출연을 제안했다. 캐스팅 후에는 캐릭터를 위해 머리카락을 탈색해 달라는 주문도 덧붙였다.

◆ 새로운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몸이 필요하다
<얼굴>에 이어 <실낙원>까지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영화를 완성했다. 대규모 상업영화와 저예산 영화를 오가는 행보는 의도적인 선택일까. 연 감독은 <얼굴>을 준비하던 당시를 돌아보며 “지금까지 만든 영화와는 영혼이 다른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익숙한 방식으로 작업하면서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기는 쉽지 않았다.
“새로운 영혼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몸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 깨달음에는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과의 대화가 있었다. 롱테이크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고 물었더니, 시간이 부족해서 촬영감독과 한 번에 찍을 방법을 고민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영화의 미학이 결핍에서 올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다면 스스로 결핍된 상황을 만들어볼 필요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제작 조건의 제약이 오히려 새로운 미학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발견이었다. 그렇다고 작은 영화가 큰 영화보다 우월하다는 뜻은 아니다. 연 감독에게 두 방식은 서로 다른 창작의 경험이다.
“<돼지의 왕>이나 <사이비>를 만들 때는 영화의 정체성이 곧 나라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데 <부산행>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장인어른이 식당에서 서빙하시는 분께 "<부산행> 봤느냐, 우리 사위가 만든 영화다"라고 자랑하시더라.(웃음) 많은 사람이 아는 영화를 만든다는 건 또 다른 경험이었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작업 방식의 변화는 제작 현장의 보상 구조에도 이어졌다. <얼굴>을 만들 때는 적은 예산을 고려해 스태프들과 수익 지분을 나누는 방식으로 작업했지만, 흥행 후 정산 과정에서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우리 이런 거 한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러프하게 시작했다. 그런데 영화가 잘되고 정산을 하다 보니 빈틈이 보이더라. 그래서 일부 보너스를 추가로 마련했다. 이번에는 그런 부분을 더 세밀하게 챙겼다. 턴키 계약으로 묶여 있던 부분도 개인별로 정리하고, 막내 스태프에게까지 지분이 돌아갈 수 있도록 했다.”
기존 독립영화 생태계의 기회를 침범하지 않으려는 원칙도 세웠다. 상업영화 감독이 저예산 작품을 만든다는 이유로 독립영화 제작 지원을 받거나 예술영화 전용관의 기회를 가져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는 제작 규모에만 머물지 않는다. 일본에서 진행한 <가스인간>은 낯선 제작 환경에서 자신의 이야기가 다른 언어와 배우의 연기로 구현되는 경험이었다. 특히 오랫동안 동경해 온 배우 아오이 유우와의 작업은 각별했다.
“내가 쓴 대본을 아오이 유우가 연기한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아오이 유우는 함께 작업하는 게 꿈이었던 배우다. <가스인간>과 < T셔츠가 마를 때까지 >를 보면서 정말 명배우라는 걸 새삼 느꼈다.”
익숙한 제작 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영화를 탐색해 온 연상호 감독. 아오이 유우와의 작업으로 오랜 꿈 하나를 이뤘지만, 벌써 다음 꿈이 생겼다. 언젠가는 마츠 다카코와 협업하고 싶다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을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사진제공. CJ ENM
[mail:eunyoung.park@movist.com]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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