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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아닌 표현가이자 기술자,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양동근

2020년 10월 8일 목요일 | 이금용 기자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9살에 아역배우로 데뷔해 음악, 춤, 뮤지컬, 연기 등 다방면에서 종횡무진하며 연예계에 발 담근 지 어느덧 34년 차, 양동근은 스스로를 예술가가 아닌 ‘표현가’이자 기술자라고 소개한다. 그는 “예전엔 자만심에 빠져 내가 예술가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감독의 큰 그림을 채워가는 ‘미장센’ 배우가 되고 싶다. 이전의 연기가 준비운동이었다면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을 기점으로 배우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맞은 것 같다.”고 설명한다.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이 추석 시즌에 개봉하며 신선한 재미로 호평 받는 중이다. 특히 양동근이라는 배우가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이전에 선보인 영화들 중 진중한 작품이 많아서 이런 호응이 낯설면서 기쁘다. 영화를 보신 분들이 ‘닥터 장’을 너무 애정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특히 젊은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게 생소하다. 원체 성격이 진지한 편이라 예전부터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름대로 그런 이미지를 바꿔보려고 꽤 오래 노력을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내가 입을 열면 이유 없이 피식피식 웃더라. (웃음)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에서도 일부러 웃기려고 계산하진 않았는데 많은 분들에게 즐거움을 드린 것 같아 다행이다.

이번 영화도 보다 친근한 이미지를 위한 선택이었는지.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내심 신파 드라마 같은 장르는 좀 기피하고 있던 차에 타이밍 좋게 <차우>에 이어 두 번째로 신정원 감독님의 섭외 제안이 들어왔다. 대본이 좋고 감독님을 믿었기에 선택한 작품이다. 우선 제작사 대표부터 이번 영화에 엄청난 확신과 애정이 있더라. 그뿐만 아니라 신 감독님의 작품은 설정부터 참신하고 희소성이 있다.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흥미로운 스토리에 감독님만의 확고한 코드가 있어 구미가 당겼다. 내가 모르는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확실히 이번 영화는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라는 표현에 들어맞는, 감독 자체가 영화의 아이덴티티인 작품이다.

극 중 바람난 배우자의 뒷조사부터 외계인까지 쫓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미스터리 연구소의 ‘닥터 장’ 역할을 맡았다.
워낙 개성 강한 캐릭터들이 많아서 내 역할이 특별히 사랑받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시작하진 않았다. 솔직히 처음엔 어떻게 연기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고 코믹 연기에 자신이 없어서 대사를 전부 숙지하고, 사전 준비도 나름대로 철저히 해서 현장에 갔다. 그런데 감독님이 그때그때 떠오른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시고 현장수정이 많았다. 그 때 이렇게 영감으로 움직이는 분의 영화를 할 땐 내가 나서기보단 감독님을 완전히 믿고 맡긴 채 따라가는 것이 맞겠다고 느꼈다.

자유로운 분위기라 애드리브도 많았을 거 같다.
나와 신 감독님의 스타일이 절묘하게 맞았다. 감독님이 현장감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들어 갔다. 때문에 초반의 캐릭터 설정에서 많이 바뀌었지만 즉석에서 던지는 애드리브는 없었다. ‘닥터 장’은 감독님의 디렉션에 충실하게 연기한 결과다. 예전엔 감독들의 디렉션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나만의 틀에 갇혀 있었다. 배우의 색깔대로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게 유연함이라고 오해했던 거 같다. 지금은 감독의 디렉션을 바로바로 시도해볼 수 있는 게 배우로서의 유연함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기이한 사건에 연속적으로 휘말린다. 그게 웃음 포인트지만 촬영하면서 몸이 고됬을 것 같은데.
어렸을 적부터 고생스러운 작품을 많이 하면서 고된 역할을 많이 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30년 구력의 요령을 잘 피워서 힘들진 않았다. (웃음) 대신 새로운 시도를 했다. 순수하게 내 연기만 생각하는 시절은 지났고, 영화를 산업적 측면에서 바라보고 영화 러닝타임도 고려하면서 연기를 했다. 대사에 설명하는 부분이 많아서 기존 스타일대로 늘어지게 대사를 치면 상당부분 편집될 것 같았다. 리듬이 생기지 않아서 재미도 없었을 거고. 말을 빨리 하는 게 어렵긴 했지만 한편 신선하기도 하더라.
그리고 현장 분위기도 편안했다. 아이 얘기만 나오면 자연스럽게 입이 열린다. 결혼과 육아 얘기를 하면서 다른 출연진과 섞이고 가까워졌다. 예전이었다면 과묵한 성격 탓에 배우 간의 거리감을 좁히지 못했을 거다. 그렇게 만들어진 배우들과의 호흡이 연기에도 묻어나와서 좋은 영화로 완성됐다.

연기로 대중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지만 사실 음악, 춤, 뮤지컬 등 보다 넓은 영역에서 꾸준히 활동해왔다.
20대땐 그런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칭했다. (웃음) 되돌아보면 철없는 생각이지만 그 때는 자만심에 빠져 (배역이) 내 예술관에 부합하지 않으면 설렁설렁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나를 예술가가 아닌 표현가로 소개한다.

이유가 무엇인지.
솔직히 20대까지 연기자는 감독과 작가의 뜻대로 움직이는 일종의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모든 에너지를 갈아 넣어서 연기하니 정신적으로도 지쳤고 사람들의 말과 평가에 휘둘리는 것도 피곤했던 거 같다. 당시 나는 머릿속에 있는 걸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힙합을 하면 속에 있는 말을 막 뱉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연기를 통해 보여주지 못한 진짜 내 모습을 쏟아낼 수 있는 음악에 자연스럽게 더 열정을 쏟게 됐다. 그런데 30대에 접어들면서 생각이 또 한 번 바뀌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었나.
젊음이란 매력으로 중무장한 10대, 20대와 달리 세월이 흐르면서 신체적인 부분과 더불어 마인드도 달라졌다. 30대 땐 나의 20대는 끝났고 예전에 맡았던 것 같은 역할이 다시는 들어오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향후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중 결혼을 하게 되면서 ‘표현하기’를 잠시 멈췄다. 그 시기를 누에가 번데기가 되는 과정에 비유하고 싶다. 마음 속의 벽, 단단하게 응어리 진 돌덩이를 깨부수고 새로운 방향과 변화를 모색하는 시기였다. 혼자일 때와 환경이 달라지고 책임져야 할 가족이 생기니 어린 시절의 치기는 사라지고, 화려한 연예인이나 예술가 타이틀에 목맨다는 게 부질없게 여겨졌다. 지금은 배우가 미지의 것을 표현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처절함을 표현하는 표현가이자 연기라는 기술을 가지고 산업현장에 투입된 기술자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현장에 가면 선생님들을 보지 않나. 기술로 연기하는 걸 보고 그때는 저게 무슨 연기인가 싶었는데 이제는 그게 이해가 된다.

40대는 어떤가.
이전의 연기가 준비운동이었다면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을 기점으로 배우 인생의 새로운 시작을 맞은 것 같다. 그동안 연기에 투철하게, 전투적으로 임했지만 즐기지는 못했다. 이번 영화가 그동안의 내 패턴을 바꿀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작품 보는 눈이 없고 대본을 고르는 뚜렷한 기준도 없어서 상황과 기획사의 기준에 맞는 작품이 들어오면 무조건 받는 편이었다. 그 중 하고 싶은 작품도 있고 아닌 것도 있었지만 지금 와서 보면 그게 전부 내 자양분이 된 거 같다. 그 덕에 시야와 이해의 폭이 넓어졌고 연기 스펙트럼도 확장됐다. 이젠 어떤 상황에서도 나의 쓸모를 발견한다. 최근엔 ‘미장센’ 배우로서 전체적인 작품의 한 켠에서 그림을 채워가는 느낌으로 맡은 역할에 충실하자는 각오로 연기에 임한다. 나 자신을 비우고 개성을 뽐내기보다 감독이 원하는 그림 안에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영화 안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싶다. “남자 배우는 40부터”라는 말이 있지 않나. (웃음) 이제는 어떤 작품이라도 최선을 다해 임할 준비가 됐다.

결혼이 큰 전환점이 된 거 같다.
맞다. 군대와 특히 결혼이 내 인생과 가치관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인기에 취해 마음이 붕 뜨고 이도 저도 안 되는 포화상태였던 20대 땐 군대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충전과 반성의 시간이 됐다. 전역 후에도 결혼하기 전까지 사람들의 시선을 많이 의식했고 대중들이 원하는 나의 모습을 쫓느라 오늘을 살지 못했다. 작품을 할 때 최대한으로 즐기지 못했던 것이 가장 아쉽다.

너무 어릴 때부터 큰 인기를 얻은 탓인지 내가 생각하는 프레임 이외의 것은 틀렸다고 생각했고 타인과 소통하는 법을 잘 몰랐다. 평생 독불장군처럼 혼자 버텼는데, 그게 결혼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가족이 생기면서 공동체와 인간 관계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조금씩 배워가게 됐다. 만약 결혼하지 않았으면 내 마음대로 살다가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될 수도 있었을 거다. (웃음) 요즘은 미래를 바라보기보단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싶다. 예전엔 일을 최대한으로 즐기지 못했지만 이제는 가능할 거 같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즐겁고 사람들의 반응도 새롭다. 이 느낌에 취해 있고 싶다. (웃음)

설경구, 박해수와 함께 한 영화 <야차>가 개봉을 기다리는 중이다.
아직 개봉 시기가 확실치는 않다. 첩보 액션물이라는 장르 역시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앞서 얘기한듯 이제는 시야가 더 넓어졌고, 또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에 내 스타일만 고집하는 대신 이것저것 시도하려 한다.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낯선 질문이라 순간 얼어붙었다. (웃음)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행복을 쟁취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적극적으로 취하기보다는 매 순간에 집중하다보면 그 안에서 의도치 않게 행복을 마주하는 거 같다. 오늘 인터뷰도 최선을 다 하려고 했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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