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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다행이다 <동주> 박정민

2016년 2월 19일 금요일 | 최정인 기자

시사회를 마치고 대표님에게 혼났다는 기사를 읽었다.
대표님과 (황)정민 형은 언제나 더 잘 할 수 있었다며 충고를 많이 해 준다(웃음). 나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는 반증일 거다(웃음).

지적을 받을 때 분발하는 편인가 아니면 칭찬을 받을 때 힘을 내는 편인가.
욕을 먹어야 뭐든지 하는 스타일이다(웃음).

시사회에 함께 한 가족들이 당신의 출연작 중 <동주>가 가장 좋았다고 했다면서.
부모님들은 평소에도 나와 정민 형이 나오는 것 이외의 영화는 잘 보지 않으신다. 그래서 <동주>가 최고였다고 하셨을 때 기분이 좋더라. 특히 동생은 영화를 보고 눈이 퉁퉁 부을 정도로 울었다. 언제부터 그렇게 대단한 애국자였냐고 놀리긴 했지만 동생의 그런 모습이 예쁘고 고맙더라(웃음).

연기를 잘 해서 어릴 때부터 연기 교육을 받아 온 줄 알았다. 그런데 프로필을 보니 고려 대학교를 중퇴한 뒤 연기를 시작했더라. 남들은 힘들게 입학하려는 학교를 관두고 늦은 나이에 연기를 시작하는 게 보통 용기는 아니었을 텐데.
용기에서 비롯된 결정이 아니었다. 해야 하는 일이 있으니 학교를 관둔 것뿐이다.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곳으로 가야지 학교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만일 학교에 남아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성격 상 학교를 졸업했을 거다. 하지만 그런 고민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학교를 관둔 거지 사실 용기가 필요한 일은 아니었다.

학교를 졸업하는 게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에 부합하지는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판단을 한 셈이다.
그렇다. 학교에 남는 게 어쩌면 그 나름대로 도움이 됐을 수도 있다고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 당시의 판단으로는 빨리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갑자기 영화가 하고 싶어진 건가.
열정은 예전부터 있었다. 고등학교 때도 한예종 입학시험을 봤는데 떨어졌다. 그래서 고대를 간 뒤 한예종 시험을 다시 봐서 합격한 거다.
영화의 무엇에 끌렸던 건가.
처음에는 연기가 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골에서 학교를 다녀서 연기를 배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내 나름대로 계산을 해 보니 내가 영화를 직접 만들어서 출연하면 그게 곧 영화배우가 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배우가 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먼저 나를 자극한 건 중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강원도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아저씨였다. 자신이 연극 배우, 영화 배우라고 소개했는데 나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무슨 영화에 나오냐고 물었더니 조만간 개봉하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출연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영화가 개봉할 때 찾아보니 정말로 그 분이 나오더라. 바로 박원상 선배님이다. 박원상 선배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연기가 재밌을 것 같았고, 그 분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예전부터 영화를 좋아하기는 했지만 <와이키키 브라더스> 같은 독립영화, 또는 저예산 영화는 처음 접했었다. 그런데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도 확실하고 어딘가 나에게 충격을 주는 부분이 있었다. 저런 영화를 만들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에 와서 시나리오를 썼고 막연한 생각에 경기도 교육청에서 하는 공모전에 시나리오를 냈다. 그런데 상을 받은 거다. 무슨 일이지? 나에게 재능이 있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부터 꿈을 키워나간 거다(웃음). 그런데 연기를 시작해 보고 싶기는 했지만 그때는 용기도 없고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곳도 주위에 없었다. 그래서 영화 공부를 시작했다.

그때 이후로 박원상과 꾸준히 연락해 온 건가.
중학교 때 우연히 만나 헤어진 이후로 연락은 안 했다. 선배님을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한예종에 합격했는데 입학할 때까지 6개월 가량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게 모두 그때 만난 아저씨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웃음).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 아저씨를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만날 방법이 없었다. 한참 고민하다 남부터미널에 도착했는데 정말 거짓말처럼 그 아저씨의 얼굴이 커다랗게 나온 포스터가 전봇대에 붙어 있었다(웃음). 극단 차이무 10주년 공연 ‘마르고 닳도록’의 포스터였는데 거기 적힌 극단 차이무의 메일 주소로 이메일을 보냈다. 그랬더니 박원상 선배가 다음날 전화가 와서 기억난다며 술을 마실 수 있냐고 물었다. 내일 대학로로 나오라면서. 그때 선배가 나를 데려간 곳이 극단 차이무의 회식 자리였다. 내가 갔을 때 선배는 이미 조금 취해 있었는데 그 곳엔 문소리, 박광정, 문성근, 강신일, 이성민 등 내 눈에 익은 배우들이 정말 많았다. 이건 무슨 광경이지 싶어 술을 마구 받아 마셨다. 그러다 마침 문소리와 박원상이 ‘슬픈 연극’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길래 연습실에 가서 한 번만 구경하면 안 되겠냐고 부탁했다. 문소리, 박원상이 내 눈앞에서 연기 연습을 하고 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 그래서 아저씨, 내일 한 번만 다시 오면 안 될 까요? 한 번만, 한 번만, 했던 게 3년이 됐다. 그렇게 20대 초반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한예종 영상원을 뒤로 하고 극단 생활을 열심히 했다. 그런데 군대도 갔다 오고 어느 정도 극단에 적응도 돼서 무대 세팅이나 조명 세팅도 할 수 있게 됐는데 정작 8시에 조명이 밝혀지면 무대 위에 내가 없더라. 난 연기가 하고 싶은 사람인데 극단에서는 나를 영상원 학생으로만 보는 거였다. 연기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도 너무 어려 기회가 쉽게 오지 않았다. 그래서 연기를 제대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고 연기과로 전과한 거다. 사실 내 꿈이 배우였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된 건 한참이 지난 뒤였다. 15세부터 20대 중반까지는 창피해서 배우가 꿈이라고 말도 못하고 다녔다.

왜 창피했다는 건가.
부모님은 실망할 테고 친구들은 놀릴 것 같았다. 어딜 가도 웃기고 있다는 소리만 들을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마음 속으로만 꿈을 품고 있었는데 연기에 대한 마음이 자꾸 쌓이다 보니 도저히 안 되겠더라. 그래서 확 저질러 버리고 부모님께 통보했다. 아버지는 이미 포기 상태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했다(웃음).

그래도 잘 받아들이신 편이다.
그 전에 엄청 싸웠으니까. 영화 감독이 되겠다고 했을 땐 쓰러지고 난리 나셨다. 내가 고집을 안 꺾자 대학교까지 갔으니 이제부터는 알아서 하라고 하신 거다.

지금은 뭐라고 하시나.
별 수 없지 않나. 응원하는 수 밖에(웃음).
그렇게 힘들게 키워 온 배우의 꿈인데 <동주>를 촬영하기 전 연기를 그만두려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맞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니까.

경제적인 면을 말하는 건가.
경제적인 측면도 있지만 잘 하는 것과 좋아하는 건 다를지 모른다는 고민이 있었다. 앞질러가는 또래 친구들을 보면서 열등감도 느꼈다. 모두들 원래부터 잘하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될 놈이 된 거라고 생각한다. 진심으로 축하하고 그 친구들이 잘 돼서 기분도 좋았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그럼 나는 역시 안 될 놈이라는 생각이 점점 강하게 들더라. 어차피 배우로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 할 거라면 지금이라도 빨리 마음을 접고 유학을 가든, 취업을 하든, 무엇이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유학을 가려면 얼마가 필요한지, 어디가 좋은지, 뭘 배워야 하는지, 취업을 하려면 뭐가 필요한지, 토익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정보를 알아보던 단계였다. 토익도 예전과 많이 달라져서 스피킹도 준비해야 하더라(웃음). 고대 재입학이 가능한지까지 알아봤다. 재입학이 가능하다고 하더라(웃음). 10년이 지났는데도 다시 입학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해서 그럼 제가 다시 연락 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때 이준익 감독님의 <동주>에 캐스팅 된 거다.

팬으로서 당신이 연기를 그만두지 않아 정말 기쁘다. <더 킹>에도 캐스팅 됐다는 소식이 들리는 걸 보면 앞으로도 연기를 계속할 거라고 봐도 되겠나.
그렇다. 한재림 감독님의 <더 킹>에도 잠시 출연하게 됐다. 그런 걸 보면 이렇게라도 계속 연기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하고 싶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이 다르다는 고민의 시초는 무엇이었나. 캐스팅 제의가 많이 들어오지 않아서인가 자신이 정말로 연기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해서인가. 솔직히 말해 연기를 잘 하는 것과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건 조금 다른 맥락의 이야기이지 않나.
난 내가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기는 내 직업이다. 학업으로 치면 전공인 셈이다. 솔직히 글을 잘 쓴다는 칭찬도 받고, 누군가는 나더러 운전을 잘 한다고도 한다. 또 다른 누군가는 내가 운동을 잘 한다고 하고. 그런 칭찬을 들으면 기분이 너무 좋아 함박 웃음을 짓는다. 하지만 그건 그 일들이 내 전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추신수처럼 야구를 잘하는 것도 박완서 소설가처럼 글을 잘 쓰는 것도 아니다. 야구나 글은 내 취미일 뿐 난 그들처럼 될 욕심이 전혀 없다. 하지만 연기는 내 직업이기 때문에 내 스스로는 사람들이 칭찬하는 정도에서 만족할 수가 없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이 매우 높은 것 같다.
나는 저 높은 곳을 보고 있다. 누구나 보는 눈은 있을 수 있지 않나. 비록 아직은 그렇게 연기할 수 없지만 나도 송강호 선배나 로버트 드 니로처럼 연기하고 싶다. 내 나름대로의 기대가 있기 때문에 칭찬을 받으면 기분도 좋고 감사한 마음도 들지만 스스로 만족할 수는 없다. 그런 와중에 주변 동료들이 인정 받고 크게 성장하기 시작하니 내가 인정받지 못하는 건 연기를 못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주변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 편이라 그런 생각이 쌓이고 쌓이다 감정이 터지기 직전이었다. 힘든 티도 잘 내지 않는 편이다. 전과한 것도 모든 것이 정해지고 난 뒤 부모님께 통보한 것처럼 유학도 비행기표를 끊어놓고 통보했을 성격이다. 친구에게 지나가는 말로 유학을 가보면 어떨까, 한 적은 있다. 그랬더니 웃기고 있네, 미친 놈! 이라고 답장이 와서 회신을 안 했다(웃음).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건 따로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연기는 내가 꾸역꾸역 우겨서 하고 있는 거고, 어쩌다 보니 잘한다는 소리를 들은 게 아닐까, 싶더라. 그런데 이미 늦어 버린 것 같기도 하고.
30세라는 나이는 인생의 변곡점처럼 느껴질 때가 많아 마음이 복잡해지는 시기인 것 같다. <동주>가 당신에게 유독 특별했던 이유도 그 시기에 만난 작품이어서 그럴 수 있지 않을까.
그 지점에서 이준익 감독이 나를 주연으로 써 줬다는 게 특별했다. 처음 <동주>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는 솔직하게 말해 이건 기회라고 생각했다. 이준익 감독이 주연으로 써 준다는데 어떤 무명 신인 배우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겠나. 그런 생각이 없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다. <동주>는 정말 잘 해야겠다는 생각에 송몽규라는 인물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송몽규라는 인물이 너무 허구로 느껴지더라. 정말 판타지 같은 사람이었다. 말이 안 되지 않나. 믿을 수 없을 만큼 총명했고 너무 많은 것을 10대의 나이에 이룬 사람이었다. 나의 10대를 돌이켜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오! 멋있는데? 하다가도 읽으면 읽을 수록 이게 말이 되는 거야? 싶더라. 그런데 그렇게 인물에 다가가기 위해 전력질주를 하는 과정에서 <동주>라는 기회를 붙잡아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덜 중요한 부분이 되어버렸다. 송몽규라는 엄청난 인물을 내 몸과 내 목소리로 연기하는데 느끼는 책임감이 컸다. 캐릭터를 정말 소중하게 잘 보듬어 관객에게 제대로 소개하고 싶었다.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 했습니다. 무엇이 느껴지시나요” 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그리고 연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가 연기를 재밌어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맞아, 난 연기가 하고 싶은 거였는데! 한 동안 주변 환경과 여건, 그리고 열등감 때문에 연기가 마냥 재밌지만은 않았다. 드라마를 연속으로 하면서 시스템에 쉽게 녹아 들지 못하는 것 같고 부족한 점만 자꾸 드러나는 것 같아 스스로에게 화도 났다. 내 자신이 싫어지고 있었는데 <동주>를 준비하면서 그야말로 재충전의 기회를 가졌다.

다른 주변 여건들이 아닌 연기의 본질에 집중할 때 재미를 되찾은 셈이다.
그렇다. 그리고 <동주>의 촬영 초반 제작진이 모두 모여 술을 마시다가 감독님, 피디님, 나, 셋만 남았을 때 감독님이 <동주>를 더 많은 제작비를 투자 받아 찍을 수도 있겠지만 5억으로 찍는 건 <동주>가 과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송몽규라는 인물이 매우 중요한 거고 영화가 송몽규에 초점을 맞추는 거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미처 알지 못했던 감독님의 의도와 무명배우로서의 내 개인적인 욕심이 크게 충돌하는 걸 느끼면서 너무 부끄러웠다. 공부를 아무리 해도 해소되지 않았던 지점들의 실마리가 거기 있었다. 정말 그날 밤 부끄러워 잠을 못 잤다. 나는 <동주>가 흥행도 정말 잘 됐으면 한다. 하지만 이제는 결과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동주>는 이미 나에게 너무나 큰 의미로 남은 영화다. 앞으로의 배우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지에 대한 길라잡이가 된 영화이기도 하다. <동주>를 만들면서 지난 5년간 쌓인 열등감이 많이 해소됐다.

그런 말을 들으면 이준익 감독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생기겠다.
약간 종교다(웃음). 힘들고 지칠 때 인생에서 기댈 수 있는 기둥 하나가 생긴 느낌이다. 지금 이 시기에 내가 정말로 만나야 될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운이 좋았다. 만약 감독님을 못 만났다면 나는 지금쯤 어딘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을 거다.

고대 캠퍼스를 누비고 있겠지.
맞다. 안암역에서 막걸리 마시고 있을지 모른다(웃음).

송몽규는 실존인물인데다가 독립운동을 한 영웅이다. 관객들은 송몽규를 영웅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배우로서는 송몽규를 영웅이 아닌 사람으로 연기해야 했을 텐데 그런 면에서 고민되는 지점들이 있었을 것 같다.
물론 사람을 연기하려 했지만 결국 송몽규 선생님은 내 안에서 영웅이다. 어벤져스만 영웅이 아니지 않나. 지금 우리가 이렇게 카페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것도 70년 전 뿌리부터 부당했던 그 시대에 수십만 명의 숨은 영웅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 “와따시와 정민상 데쓰” 라고 말하고 있을 거다. 물론 송몽규라는 영웅을 현실로 끌어오려고 노력은 많이 했다. 그러기 위해 공부도 정말 많이 했다. 그런데 나는 오히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송몽규를 영웅처럼 느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왜?
다시 돌아보니 영웅인 거지 영화를 볼 때는 저런 사람도 있었네, 라고 관객들이 느끼길 원했다. 관객들이 송몽규 선생님을 영웅으로, 우리는 범접할 수 없는 인물로 생각하면 감동이 적을 것 같았다. "송몽규 선생님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데도 이런 일을 해냈습니다. 우리들은 어떤가요" 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송몽규 선생님을 보며 너무 부끄러웠다. 송몽규 선생님의 정신과 뜻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최대한 인간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그래서 영화를 볼 때는 그가 여느 일반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느껴지고 영화가 끝나고 돌이켜 볼 때 그가 영웅으로 여겨지길 바랐다.

정말 그렇다. 내가 공감할 수 없는 엄청난 인물보다는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이 용감하고 고귀한 일을 해 낼 때의 감동이 오히려 더 큰 것 같다.
아이언맨이 미국을 지킨다고 우리가 미국을 지킬 수는 없지 않나. 그런데 한 개인이 자그마한 행동으로 국가를 구한다면 그건 정말 깊은 차원의 울림이 있다.

송몽규의 인간적인 모습을 더 잘 드러나게 연기하기 위해 배우로서 기술적으로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송몽규를 어떻게 표현하는지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분이 7~80년 전에 실제로 행한 일들과 선택, 그리고 말들은 내가 어떻게 연기한다 한들 실제보다 멋있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연기하는 거지만 그 분은 실제로 그 일들은 행한 분 아닌가. 그 분의 목소리가 설령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다고 할지라도 그 분 자체가 멋있는 거다. 그래서 나에게 중요한 건 그 분이 하는 말과 행동을 얼마나 멋있게 표현하는지가 아닌, 얼마나 설득력 있고 정당성 있게, 그리고 진정성 있게 표현하느냐였다. 그래서 송몽규가 지금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고 이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만 계속 파고 들었다.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은 것도 그 때문이다. 송몽규가 전쟁 상황을 설명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대사가 정말 많았다. 사실 대사는 외우기만 하면 초등학생도 연기할 수 있다. 하지만 대사를 단순히 읊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송몽규가 알고 있는 상황을 내가 이해하는 게 중요했다. 그 분이 알고 있는 것이 100이라면 10이라도 따라가야 했다. 그래서 제 2차 세계 대전이 왜 일어났는지, 어떻게 진행됐는지, 모두 공부했다.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해야 송몽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 송몽규 선생님을 관객들에게 멋있게 보이게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은 어느 순간부터 배제해 버렸다.
그 장면이 촬영하기 가장 힘든 장면이었나?
아니다. 오히려 그 장면은 전반적인 상황을 모두 알고 나면 어렵지 않은 장면이었다. 사실 난 더 가볍게 연기하고도 싶기도 했는데 그러면 영화의 톤과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의 영화처럼 연기했다. 가장 촬영하기 힘들었던 건 취조실 신이었다. 일본어도 해야 했고 감정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가장 부담이 됐던 장면이다.

<동주>에 참여하며 돌이켜 보게 된 자신의 모습이 부끄러웠다고 했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가.
우선 이기적으로 살아 온 지난 29년의 시간이 가장 부끄러웠다. 어느 순간부터 나밖에 모르는 너무나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있더라.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했고 큰 피해를 준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 동안 내 안의 세계에 갇혀 살았다. 부모님 속도 많이 썩이고 친구들에게도 상처를 많이 줬다. 만나면 너무 힘들어서 정말 친한 친구 몇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안 만났다. 사실 아직도 여전히 이기적이다. 그래서 창피하고 면목이 없다. 동기들이 끊임없이 연락하는 데도 내가 연락 안 했다.

이루고 싶은 일이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잘 풀리지 않으면 마음의 여유를 잃게 되기 마련이다.
맞다. 5년 동안 안 풀리니까 정말 아무도 못 만나고 연락도 못 하겠더라(웃음). 창피하고 미안해서 도저히 만날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동주>를 비롯해 앞으로 당신에게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다.
영화가 잘 된다고 갑자기 연락하는 것도 너무 속 없는 인간처럼 보이지 않나.

하지만 늦게라도 연락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반가운 친구들이 분명 있을 거다. 아예 연락이 없는 것보다야 낫지 않나.
그런가(웃음).
흔들리는 일이 많았는데도 아직까지 연기를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결국 내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거다. 연기를 정말 놓고 싶으면서도 기회가 오면 또 잡고 싶은 내 안의 이중성 때문이다. 연기를 다시 하게 되면 또 힘들어 진다는 걸 알면서도 기회를 잡으려 했다는 건 아마 내가 연기하는 걸 정말 많이 좋아한다는 뜻일 거다. 힘든 순간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나서 다행이다. 만일 그때 내 자신에게 실망스런 작품을 만났다면 정말 고꾸라졌을 거다. 물론 나는 나의 모든 작품을 결과와 관계없이 모두 좋아한다. 하지만 분명 힘든 일도 있었다. 내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계속 몰아세우는 편이기 때문에 그런 과정이 또 다시 반복됐다면 그때는 정말 사람 하나 버릴 것 같았다(웃음). 참 다행이다. 이준익 감독님을 만나고, <동주>를 만나고, 송몽규를 만나서.

윤동주는 전국민이 아는 시인이 되었지만 송몽규를 기억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만일 송몽규처럼 자신의 노력이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 다는 걸 안다면 그 같은 선택을 할 수 있겠나.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런 결과가 남지 않는다는 걸 미리 알고 있다면 도전하지 못할 거다. 어떤 결과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정말 열심히 하는 것이고 지나온 길을 돌이켜 봤을 때 내 길에 떳떳하고 싶기 때문에 지금 헛짓거리 안 하고 열심히 사는 거다. 만일 신이 내게 와서 박정민, 넌 아무리 연기를 열심히 해도 결국 무명배우로 남을 거야, 하면 그럼 안 한다고 할 거다(웃음).

솔직한 답변이라 좋다. 최근 있었던 가장 행복한 일이 무엇인가.
재작년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꾸린 극단이 있다. 그런데 그 중 한 친구의 어머니께서 암에 걸리셨다. 친구가 어머니를 간호하며 입이 전부 부르틀 정도로 많이 힘들어했다. 암이 척추 신경을 눌러 하반신이 마비되셨다고 했다. 마음이 좋지 않아서 문자를 했는데 답장이 없었다. 그런데 어제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하반신 신경이 돌아와서 이제 걷는 연습을 하고 계신다고 하더라. 그 말이 너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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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김재윤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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