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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있지만, 붕괴된 형사로 돌아온 <헤어질 결심> 박해일

2022년 7월 1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헤어질 결심>에서 용의자로 의심받는 ‘서래’(탕웨이)는 담당 형사인 ‘해준’(박해일)에게 ‘품위’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과연 그는 품위 있는 인물인가. 유능하다지만 용의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데다 결국에는 사건을 덮어 버리는 낮은 직업의식에, 붕괴될 정도로 서래를 사랑하면서도 주말에는 꼬박꼬박 아내에게 내려가 식사를 준비하고 한 달에 한번 잠자리 약속을 성실하게 지키는 남편. 엉망진창, 모순투성이인 이 남자를 ‘품위’있게 보이게끔 연기한 박해일을 만났다. 해일=해준 같이 느껴지는, 배우와 캐릭터의 싱크로율을 극한으로 끌어올린 그의 말을 들어본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 인터뷰라니!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러잖아도 오늘 나오면서 우리 영화와 잘 어울리는 날씨라고 생각했다. 안개가 자욱한 ‘이포’라는 도시 설정도 그렇고, 주제곡 ‘안개’ 그렇고 장마 기간에 개봉하는 게 어딘가 정서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 출연 배우로서 뭔가 먹고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웃음) 팬데믹 동안은 외부 행사 없이 촬영만 해 왔고, 3년 만에 여러 매체와 인터뷰를 하니 이제야 일을 시작한다는 느낌이다.

<헤어질 결심>에 이어 <한산: 용의 출현>이 바로 개봉한다. 덕분에 여름 극장가에 당신의 존재감이 확실하다.
팬데믹으로 개봉 스케줄이 꼬이면서 그간 찍은 한국 영화가 마치 종합선물처럼 우르르 쏟아지는 감이 있다. 많은 한국 영화가 극장에 올라와서 좋다. 그간 개봉이 지연되는 등 답답한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물리적인 시간이 확보되어 후반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하더라. 이는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문화 영역도 마찬가지일 거다. 그간 창작물이나 창작자가 칼을 간 만큼 수준 높은 작품이 대중을 찾아가지 않을까 한다. 사실 <헤어질 결심>의 무대 인사를 하는데 솔직히 감동이었고, 많이 들떴었다.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에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감추고 숨기는, 이런 어른의 사랑에 공감하나. 본인은 어떤 편인가.
뭐 개인적으로야 상황에 따라 직접 드러내기도 하고 한편으로 에둘러 숨기기도 하지 않았을까. ‘해준’(박해일)은 형사라는 직업상 용의선상에 있는 ‘서래’(탕웨이)를 대할 때 진심도 있지만, 그녀를 의심하는 입장이라 어느 정도는 (가짜로) 유인하여 진실을 알아내야 하는 면이 있다. 수사극이라는 테두리 안에 해준의 이런 감추고 숨긴 감정이 잘 녹아 들어간 것 같다. 멜로와 로맨스 사이 박찬욱 감독님의 색깔을 잘 녹여낸, 화학작용을 일으킨 영화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당신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들었다. 박 감독이 무슨 이야기를 하며 캐스팅을 제안했는지 궁금하다.
처음 만난 1시간 동안 계속 영화의 스토리를 말씀하시는데 긴장돼서 중간에 뭔가를 되물을 수 없었다. (웃음) 마지막에 비로소 어른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짧게 표현하셨다. ‘해준’은 형사인데 기존의 한국 콘텐츠에서 봐온 형사와는 다르다고, 이 부분에 호기심이 일었다.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대목에서 혹시 수위 높은 영화를 예상하지는 않았는지? (웃음)
그게, 중간에 물을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져서. 또 자꾸 질문하면 왠지 가벼워 보이는 것도 같아 어떤 형사인지와 수위 등에 대해서는 호기심으로 남겨뒀다. (웃음)

배우로서 박 감독과의 작업에 대한 기대가 컸을 것 같다.
일단 ‘나’라는 소재가 감독님에게 어떤 방식으로 쓰일지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됐었다. 촬영하며 얻는 매 순간의 결과물에 대해서 감독님을 만족시킬 수 있을지, 또한 나 역시 만족하면서 신나게 즐기며 촬영할 수 있을지 이런 숙제들로 인해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헤어질 결심>은 (말했듯) 감독님이 배우를 먼저 캐스팅하고 시나리오를 완성했기 때문에 배우의 성질과 특성을 더 많이 흡수하여 감독님의 세계에 반영했다. 덕분에 내 연기에 대해 많은 지지를 받았고, 이런저런 연기를 해본 시도의 장이었다.

박 감독과 작업한 후 발견한 의외인 면이 있다면.
의외의 면은 잘 모르겠고, 내 예상이 빗나간 부분은 있다. 감독님 전작의 질감이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가서 감정에 스크래치를 내는 방식이었다면, 이번에는 관객이 조용조용히 (극 중) 인물에 다가와서 그들의 눈빛을 봐야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있게끔 찍어서 기존과 다른 결을 느꼈다.

서래는 ‘중국인이라 한국어가 부족하다’고 먼저 얘기한다. 그녀가 ‘마침내’, ‘단일한’, ‘심장’ 등 틀린 건 아니지만, (한국인과는) 미묘하게 뉘앙스가 다른 표현을 하는데 이 점이 영화에 묘한 느낌을 더한다.
송서래라는 캐릭터가 가진 언어적인 질감이 드라마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고, 감독님 역시 이점을 노렸다고 본다. 문학적이거나 구어체보다는 문어체적인 표현을 자주 하고, 해준에게도 품위가 있다고 하지 않나. 그래서 해준도 이에 부응하기 위해, 예의를 갖추고 더 또박또박 말한다고 생각한다. 언어는 상호작용이니 말이다. 여담이지만, 촬영 현장에서 ‘마침내’를 자주 사용하며 웃곤 했었다. 예를 들면 마침내 점심시간, 마침내 커피가 왔다 등등.

해준의 ‘붕괴됐다’는 표현도 일상적이지는 않다. (웃음) 이 대사를 접한 순간 든 느낌은?
순간 발음이 잘 될까 싶었다. 감정을 실어야 하는데 ‘붕’자가 들어가다 보니…(웃음) ‘붕괴’ 역시 감독님의 질감이 묻어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해준은 매우 유능한 형사로 단단하고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인데 서래라는 대단한(?) 캐릭터를 만나면서 서서히 무너져 가는, 다시 말해 붕괴돼 가는 상황 아닌가. 한편으로는 중요한 전환을 알리는 단어이기도 하다.

막상 찍어보니 어떻게 발음이 잘 되든가. (웃음)
해준이 서래에게 붕괴됐다고 말하는 장면은 매우 중요하고, (말했듯) 드라마적으로도 전환이 되는 신인데 제일 (연기하기) 어려웠던 장면이기도 하다.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배우로서 난이도가 높은 장면이라 염두에 뒀었다. 촬영 2~3일 전부터 세트를 만드는 와중에 미리 가서 (혼자) 리허설을 해봤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긴장해 촬영했고, 하고 난 후에는 ‘잘했다’고 격려하며 속 시원하게 떠나보냈다.

수사극이자 멜로극인데 연기 톤은 어떻게 잡아갔나.
첫 톤을 잡는 게 중요했다. 해준이 서래를 처음 만나는 장면을 잘한다면 반 이상 해결된다고 생각했다. 초반부터 해준이 서래에게 미묘한 감정을 느껴야 이후 두 사람의 감정 드라마가 잘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망자의 아내이자 심문의 대상, 다시 말해 형사로서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대해야 할 상대인데 남자로서는 궁금하고 호기심을 느끼는 것 아닌가. 눈빛, 말투 등을 통해 해준이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드러낼 연기 톤을 찾고자 했고, 나름대로 ‘해준스러운’ 부분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암벽을 오르고, 만조로 차오르는 바닷가를 헤매고 많이 고생했다.
마지막 바닷가 촬영은 만조 시간, 그날의 날씨 등 여러 환경이 받쳐줘야 해서 그날 끝내야 했다. 더불어 드라마를 관통하는 결정적인 감정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찍었는데 다행히 감독님도 만족해하셨다. 사실 고생은 꽤 했다. 추운 날씨에 바닷물에도 들어가야 했고, 또 보이지 않는 돌들이 많아서 몇 번 넘어지기도 했는데 고생한 이상으로 나와줬다. 이런 만족감을 (자기가 한) 영화에서 맛보는 게 쉽지는 않은 일이라 스스로 잘했다고 칭찬하고 싶다.

서래를 연기한 탕웨이 배우와 호흡은 어땠나. 해준은 서래에게 매료되는데 실제로도?
탕웨이 배우에게 고마운 점 중 하나가 카메라 앞에서와 밖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거다. 앞뒤 모습이 너무 달라지면 연기하다 당황할 수 있는데 그는 평소에도 진짜 송서래 같은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기대와 예상해 볼 지점이 있어서 좋았다. 마치 해준이 서래를 만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은 거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장면은 해준과 서래가 심문실에 마주 앉아 얘기하는 장면이다. 전반부와 후반부에 두 번 있는데 심문하면서도 연애를 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올 미묘한 감정이 흐른다. 그녀가 원체 감정을 잘 잡아줘서 수월하게 리액션할 수 있었다.

탕웨이 배우는 한국어를 배워서 소화했다고. 당신이 대사를 녹음해 줬다고 들었다.
초반에 감독님, 나, 탕웨이 이렇게 셋이 시나리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때 영어, 중국어, 한국어 이렇게 세 버전의 시나리오를 내놓는 걸 보고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통해 한국어 대사를 내뱉는다는 걸 알았다. 한국어로 연기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더욱 밀도 있는 준비가 필요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서래와 해준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많으니 탕웨이 배우가 혼자 있는 시간에 대사를 듣고 싶어했다. 한국말의 톤에 익숙해지고, 나라는 배우의 질감도 파악하고 싶었겠지. 그래서 발음에 유의해서 녹음해 드렸다. 감독님도 녹음해 드린 거로 알고 있다.

나 역시 서래가 중국어로 말하는 장면이 꽤 있어서 (극 중에서는 서래가 중국어로 말하면 이를 스마트워치가 한국어로 해석하여 해준에게 들려준다) 그에게 중국어 대사를 녹음해 달라고 요청했다. 촬영 초반에 이런 준비가 자연스럽게 오간 덕분에 다른 언어와 문화권을 지닌 배우와는 첫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소통해 나갔던 것 같다. 기본적으로 통역사가 있지만, 통역사를 통한 소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또 관객이 극 중 두 사람이 소통하는 질감을 느껴야 하니 작업하면서 서로의 눈빛을 많이 봤던 것 같다. 나중에는 눈빛만 봐도 배고픈지 알겠더라.

영화가 칸영화제에 초청되어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해외에 선판매가 많이 됐다. 차후 기회가 있다면 외국 작품에 출연할 의향은 있나.
그렇잖아도 탕웨이 배우가 농담으로 중국에서 중국어로 연기해 보지 않겠냐는 역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는 언어 감각이 매우 출중한 사람인데다 그만큼 준비도 많이 해서 빠르게 습득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지도 않고, 또 자국의 언어로 연기해야 미세한 감정과 호흡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외국어 연기는 어려울 것 같다. 내 손해이자 창작자의 손해다. 그렇지만 타문화의 작품에서 한국어를 쓰는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가 있다면 잘해보고 싶다.

<헤어질 결심>이 당신에게 갖는 의미는.
가볍게는 형사라는 또 다른 캐릭터를 선보여, <살인의 추억>(2003)의 용의자에서 탈피한 계기가 된 작품이다. (웃음) 진지하게는, 감독님이 말한 어른들의 이야기라는 짧은 한 문장을 염두에 두고 그 테두리 안에서 연기하려고 했다. 해준을 연기하며 이렇게 감정을 드러내고 숨기고, 대사하고 느끼면서 좀 더 성숙해지지 않았을까. 앞으로 배우로서 다양한 결을 지닌 캐릭터를 만날 텐데 이때 보다 더 유연하게 다가갈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박해일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제일 쑥스러운 질문이고 참 어려운 대답인 것 같다. 이런 자문을 할 때가 있다. ‘박해일의 어떤 면을 보고 ‘해준’에 캐스팅했을까, 관객에게 어떤 부분이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을까’ 같은. 그럴 때마다 딱히 그 이유를 찾을 수 없는데, (웃음) 결론인 즉 (내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을 얘기할 때 가장 민망하다. 그렇지만 작품 안에서 제작진, 감독님, 상대 배우들과 같이 어울려 빈틈이 메워지고 매력적으로 보이게 되지 않나. 이렇게 일하다 보면 박해일 자체를 드러낼 상황이 많지도 않고, 사실 중요하지도 않다는 생각이다. 내가 아니라 필름이 남는 것이니 말이다.


사진제공. CJ ENM

[mail:eunyoung.park@movist.com]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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