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유미의 세포들> ‘웅’ 과 <마이 네임> ‘필도’, 너무나 다른 얼굴로 동시에 시청자를 찾은 안보현은 그간 맡은 모든 작품과 캐릭터가 베스트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이 네임>은 각별하게 기억될 작품이라고 확신한다. 뿌듯하고 한편으로는 배우로서 야망을 높이는 당근과 채찍을 안긴 넷플릭스 글로벌 3위라는 성적 외에도 태어나고 자란 부산 영도가 주요 촬영지이기 때문. 구석구석을 빠삭하게 알고 있는 고향에서 촬영할 때의 그 남다른 기분이란! 운명 같은 느낌이라는 안보현을 화상으로 만났다.
<마이 네임>이 넷플릭스 글로벌 3위에 올랐다. 축하한다! 소감 한마디.
신기하고 감개무량하다. <오징어 게임>을 너무 재미있게 보고 홍보대사 마냥 선전하고 다녔는데, K-콘텐츠의 정점을 찍어준 그 후광을 본 것도 있는 것 같다. 좋은 반응에 성취감도 느끼고 더불어 글로벌 스트리밍이라 시청자들이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어서 더 좋다. 한편으로는 배우로서 야망이랄지 여하튼 더 열심히 해보자는 생각도 드는 게 꼭 당근과 채찍을 받은 기분이다.
가장 기억나는 리뷰나 댓글은. 또 주변 반응은 어떤가.
나뿐만 아니라 지인들도 공개를 기다렸나 보더라. SNS나 메신저를 통해 연락이 많이 왔고, 그중 일부는 정주행했다고, 월요일 출근 어떻게 하냐고 하기도. 또 <이태원 클라쓰>를 같이한 (박)서준이, 현재 유럽에 있는데 영상통화로 그곳에서 봤다고 하니 색다르게 느껴졌다.
댓글을 정말 많이 달아주셔서 하나하나 열심히 보고 있다. 기억에 남는 댓글이 많지만, 특히 ‘악역뿐만 아니라 멜로와 선한 역할도 되네?’라고 해 주신 분이 여럿 있어서 배우로서 뿌듯하고 앞으로 더 다양한 역할에 도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또, <유미의 세포들>과 동시에 공개되어 너무 다른 모습에 혼란스러워하지 않을지 생각했는데 오히려 같은 배우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분도 있더라. 특히 해외시청자에게는 오버랩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더 좋았다.
처음부터 ‘필도’역을 제안받은 건 아니라던데, 캐스팅 전모(?)는?(웃음)
원래는 ‘강재’(장률) 역으로 대본을 받았다. 전작 <이태원 클라쓰>에서의 센 악역을 재미있게 보셨는지 악역 중의 악역을 제안하셨었다. 그런데 미팅 후 형사인 ‘필도’를 해 보는 건 어떻겠냐고 하시는 거다. 대본을 읽으면서도 ‘필도’에 꽂혀 있었는데, 제안을 받고 다시 보니 엄청나게 감정이입이 되더라. 감독님이 제안주셔서 정말 기뻤다.
필도의 어떤 면이 그렇게 좋았나?
무엇보다 나와 비슷한 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아프거나 슬퍼도 그 감정을 드러내 타인과 공유하기보다 혼자 삭이면서 이겨내는 부분이 큰데 필도가 그렇더라. 그러면서도 강단있고 또 겉으로는 무심한 듯하나 살뜰히 챙기는 면도 있고. 마약수사대 에이스로 팀에 꼭 필요한 일원이라는 점도 좋았다.
필도는 전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 인물이다. 나름대로 상상을 보태 연기했을 것 같다.
필도 개인 서사를 모두 담기에는 시간이 한정적이라 결과적으로 그의 아픈 사연을 후반부에 짧게 드러내는 정도가 됐다. 그래서 혼자 그의 서사를 만들어 갔었다. ‘지우’(한소희)에게 죽은 여동생의 복수를 하기 위해 매일 칼을 들고 다녔다고 말한 데서 미루어 혼자, 외롭게 살았을 거로 생각했다. 나도 일찍부터 혼자 산 경험이 있고 또 여동생이 있기 때문에 상상하며 감정을 쌓았던 것 같다.
지우를 향한 감정 등 필도의 변화를 어떤 식으로 표현해 나갔나.
필도는 처음에는 지우를 적대감까지는 아니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대한다. 그러다가 혜진의 신상이 적힌 서류를 보고 자기와 같은 아픔을 간직했다는 데 동질감을 느낀다. 다른 동료들이 혜진의 정체를 의심해도 자기만은 보듬어주고 싶다고 생각하는데 마치 처음으로 내 편이 생긴 것 같다는 기분으로 필도의 이런 마음에 접근했었다.
또 그가 지닌 아픔이 극 후반에 짧게 직접적으로 언급되기 때문에 이때 시청자가 공감하도록 빌드업하는 데 신경썼다. 필도는 마약수사대 내에서도 굉장히 강인하고 강단있고 독자적으로 움직이면서도 파트너십도 좋은 인물이다. 탄탄하고 믿음직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몸무게를 늘리고 또 편안하지만 강직한 느낌을 주는 의상을 주로 입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대하는 톤을 달리한다든지 외적으로는 헤어스타일도 조금씩 변화를 주는 식으로 표현했다.
복싱선수 출신으로 운동에는 이골이 났겠지만, (웃음) 이번 ‘필도’의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했는지.
이골난 건 맞지만, 운동을 막 좋아하기보다는 필요해서 꾸준히 하는 편이다. (웃음) 원래는 필도가 유도를 베이스로 한 친구였는데 내가 복싱했던 걸 고려해서 복싱 선수 출신으로 변경해 주셨다. 아무래도 발보다는 팔을 쓰는 게 익숙하다 보니 한결 편하게 액션할 수 있었다. 잘 보면 필도가 주먹을 쓰는 부분이 많은데, 그간 운동으로 다져진 반사신경 덕분인지 위험한 순간에는 본능적으로 피해지더라. 지금까지는 혼자 하는 액션이 주였다면 이번에는 혼자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만큼 동료 배우들과의 호흡과 액션 합이 중요했는데, 이 부분은 촬영 전부터 꾸준하게 연습했기 때문에 촬영에 들어가서는 오히려 수월하다고 느꼈다.
필도에게 동천파 보스 ‘최무진’(박희순)은 꼭 잡아야 하는 절대 악당인데, 막상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장면은 없다. 또 마약수사대 팀장 ‘차기호’(김상호)와는 친형제 같은 끈끈한 사인데 옆에서 본 두 선배는 어떤 분이던가.
워낙 현장에서 친하고 돈독하게 지냈었기 때문인지 희순 선배와 붙는 장면이 없다는 걸 이제야 느꼈다. 사실 (희순)형이 그간 작품에서 보여준 모습만 떠올리고 굉장히 카리스마 있고 강한 캐릭터를 예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귀엽기도 하고 장난스럽기도 하면서 세상에 이런 따뜻한 사람은 없겠다는 생각이 드는 분이다. 현장에서 후배들이 편안하게 연기하도록 엄청 배려해 주셨다. 김상호 선배는 작품 속 모습 그대로 유쾌하고 텐션이 높은 분이다. 두 분의 연기를 보면서 많이 도움받았다.
선배님 말고, 지우와 3인방(필도, 태주(이학주), 강재(장률))의 호흡은 어땠는지.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좀 털어놔 달라.
에피소드라고 딱히 말하기는 그렇지만 이학주 배우는 극 중 매우 점잖아 보이지만, 정말 (차원이) 다른 텐션을 지닌 개구장이다. 천하의 나쁜 놈인 강재를 전율이 일 정도로 표현한 장률 배우는 촬영장 밖에서는 그렇게 점잖고 쑥스러움을 탈 수가 없다. 그 모습을 보며 우리끼리 그(장률)의 연기에 놀아나고 있는 거라고 장난으로 말하곤 했었다. 한소희 배우는 생얼로 다니며 오로지 연기에만 몰입했는데, 이를 지켜본 우리 3인방은 리스펙할 수밖에 없었다. (웃음) 더불어 현장에서는 원래 이름보다 극 중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호칭했었다.
현장의 좋은 호흡이 작품 속에서 시너지를 발휘했나 보다.
바로 그 점이 이번 필도를 연기하며 배운 점이다. 이번엔 혼자 연기하기보다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누군가와 함께 연기했는데 그렇다 보니 단체로 움직이는 것과 호흡 맞추는 것의 중요성을 크게 느꼈다. 카메라 안에서도 또 밖에서도 동료들 간에 주고받는 에너지의 축적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게 유난히 진하게 다가온 현장이었다.
마지막 8화에서 지우와 필도의 러브라인과 베드씬이 뜬금없다는 반응도 있다.
그 지점을 놓고 시청자의 의견이 나뉘는 걸 보며 참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본다고 느꼈다. 필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지우를 갑자기 사랑하게 됐다기보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자기 안에 존재한다는 걸 발견하고, 드디어 내 편이 생겼다는 감정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자기의 아픔을 나눌 ‘지우’라는 아이가 있고, 또 그 아이의 아픔이 자기의 아픔보다 더 큰 것 같아 보듬어주고 싶다는 마음에 철통같던 인물이 유해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닌가 한다.
특히 기억에 남거나 좋아하는 장면 혹은 대사를 꼽는다면.
거의 1년 전에 촬영했기 때문에 시청자 모드로 봤는데, ‘저땐 저랬지’ 혹은 ‘이런 것도 있었네’ 하는 장면이 많았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폐차장 씬이다. 필도와 지우가 공조해서 수사하다가 나란히 차 안에 가둬져서 폐차 당하는 장면으로 분량이 길기도 하지만 그만큼 긴장감이 넘치는데 다시 보니 그때의 긴장과 압박이 생생하게 떠오르더라. 핸드폰에 저장해 놓고 추억 삼아 보고 있다. (웃음) 또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았던 죽은 여동생에 대한 사연을 지우에게 말하는 장면이 기억난다. 액션 속의 멜로라고 할지, 그런 감정이 좋다.
<마이 네임>이 특별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고. 촬영지인 부산 영도 출신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알았지! 정말 각별할 수밖에 없는 게 영도에서 태어났고 또 고등학교도 영도에서 나왔다. 부모님, 할머니 모두 영도 출신이다. 영도 외에 촬영지가 다대포였는데 그곳도 내가 살았던 지역이라 빠삭하게 잘 아는 지역에서 촬영한다는 게 신기했다. 게다가 영도 촬영 장소에서 3분 거리에 어머니가 살고 계시기까지! 이건 내가 꼭 했어야 할, 운명 같은 작품이 아닌가 한다. 또 <마이 네임>으로 부산국제영화제까지 참석했으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았다.
<이태원 클라쓰> 이후 <마이 네임>과 <유미의 세포들>이 동시에 공개됐다. 쉴 새 없이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데 평소 작품 선택 기준은.
운 좋게도 좋은 작품을 연속으로 제안받은 결과가 아닌가 한다. 내가 선택하기보다 일단 참여하게 되면 그때부터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원작에 기반한 작품을 주로 했기 때문에 원작과 싱크로율을 맞추는 데 노력했다. 그렇지 않으면 이질감이 느껴져서 작품과 괴리감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런 노력이 값지게 돌아오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가볍게 묻자면, 그간 캐릭터 중 가장 안보현과 닮은 인물은 누굴까. (웃음)
정말 어려운 질문이다. 7~8년 동안 거의 쉼 없이 달려왔는데 매 작품마다 아끼고 또 애정하는 캐릭터라 어느 한 인물을 고르기 어렵다. 나를 이입하다 보면 저절로 애정이 생기는 것 같다. 하다못해 악역도 마찬가지라… 결론은 모든 작품(캐릭터)이 내겐 베스트였다.
가끔 충전도 필요할 텐데, 어떻게 하나.
지금까지 이렇다 할 충전이라는 게 없었다. 7년 동안 딱 두 달을 쉰 적이 있는데 쉬면서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현장에 나가고 그곳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작업하고 또 그 결과물을 보는 게 정말 재미있다. 이게 한 번 재미를 느끼니 더욱더 재미있어진다. 그렇지만 체력적으로는 좀 충전이 필요한 시기가 된 것 같다. 서른 중반까지 너무 채찍질만 해 온지라 내게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불쌍해지기도 한다. 이젠 충전이라는 당근을 좀 주려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한 행복은.
음, 가족들이 내가 하는 일을 탐탁지 않아 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는 조금은 뿌듯해하는 것 같고, 이를 조금씩 표현해줘서 작은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또 이번 ‘필도’로 인해 악역 외에 여러 캐릭터가 가능하다는 평을 들을 때 소소한 행복과 자극을 동시에 느낀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mail:eunyoung.park@movist.com]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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