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트=이금용 기자]
2010년 데뷔한 이래 드라마 <미녀 공심이>, <절대 그이>와 영화 <홀리>(2013), <아빠를 빌려드립니다>(2014), <좋은 말>(2019) 등 출연작이 벌써 20여 편에 이른다. 독립영화부터 시트콤까지 필모그래피가 꽤 쌓였지만 아직도 ‘방민아’ 하면 걸그룹 걸스데이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타이틀이 주는 편견이 부담스럽지는 않냐는 질문에 방민아는 “굳이 편견을 깨려고 하지 않는다. 깰 수도 없고, 깨고 싶지도 않다”고 담담하게 말한다.
같은 반 친구 ‘아람’(심달기), ‘소영’(한성민)과 가출을 감행한 18살 ‘강이’(방민아)의 이야기를 그린 <최선의 삶>에서 ‘강이’ 역을 맡았다. 이번 영화로 제20회 뉴욕 아시안 영화제 국제 라이징 스타상을 품에 안았는데.
처음 들었을 때 어안이 벙벙했다. 내가 좋아하는 스타들이 받았던 상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받았다는 게 너무 신기하더라. (웃음) 한편으론 내가 다른 수상작들을 보면서 깊은 감동과 울림을 받았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우리 영화를 그렇게 봐줄까 궁금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부모님께 제일 먼저 연락 드렸다. 부모님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 켠이 편해졌던 것 같다. 요즘 같은 힘든 시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로 인해 좋은 기분을 얻었다고 생각하니 그게 가장 기뻤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잡게 되는 계기가 됐다.
기자간담회에서 대본을 읽으며 몸이 아팠다고 밝혔는데.
각본을 읽을 때 몰입한 나머지 마음이 너무 아파서 몸까지 저릿할 정도였다. 100% 똑같진 않겠지만 ‘강이’는 나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내가 예전에 했던 선택과 후회들에 대한 감정이 휘몰아치면서 충격이 컸던 거 같다. 그래서 ‘강이’ 역할에 욕심이 생겼다. ‘강이’를 연기하면서 내 아픔을 쏟아내면 그 때의 기억도 인생의 한 장면으로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고등학생 때 데뷔해서 영화 속 ‘강이’와는 전혀 다른 학창시절을 보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10대 시절의 트라우마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나도 그렇다. 딱히 괴롭힘을 당했던 게 아닌데도 괜히 강한 친구들에게 잘 보이려고 했다. 소위 말해 학교에서 잘 나간다는 친구들에게 밉보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생각하느라 밤새 뒤척인 적도 있다. (웃음) 친구들 사이에서의 그런 복잡미묘한 감정 같은 것들을 떠올리며 작품을 준비했다.
그간 무대와 예능을 통해 보여준 발랄하고 적극적인 이미지와는 상반되더라. 웃음도 없고 말수도 적다.
사실 기존에 내가 보여줬던 모습들이 관객들이 ‘강이’에게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됐다. 나보다 더 잘 표현해줄 배우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연기 선생님이 이번 작품은 무조건 하라고 그러시더라. 평소에는 굉장히 냉철한 분이고 내 의견에 쉽게 동의해주지 않는 분인데. (웃음) 처음으로 내게 하고 싶으면 해보라고, 잘 할 수 있을 거라고 용기를 북돋아주셨다. 또 이우정 감독님과의 첫 미팅에서 2~3시간 정도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 걱정하던 부분들이 완벽하게 설득됐다.
특히나 ‘강이’가 표정과 눈빛만으로 많은 감정을 전달해야 하는 캐릭터라 연기하기가 더 어려웠을 것 같다.
지금까지 연기한 배역 중에서 ‘강이’ 같은 캐릭터는 없었다. ‘강이’는 자기만의 뚜렷한 주관이 없이 주변에 휘둘리는 사람이다. 색에 비유하자면 회색 같다. 평소 감정 기복이 잘 없고, 자기 감정을 잘 드러내지도 않는데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폭발하거나 깊은 우울감에 휩싸인다. 그래서 연기하기 어려운 지점이 많았다. (웃음) 감정이 고요할 땐 그 미묘한 심리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나 고민됐고, 또 감정이 파도 칠 땐 그 갑작스러운 격차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도 처음 보는 내 얼굴이 영화에 많이 담겼더라. 특히 ‘소영’이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새로웠다. 늘 밝았던 내가 연기하는 웃지 않는 ‘강이’가 관객에게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
‘소영’과 ‘아람’은 나름의 명확한 이유가 있는데 ‘강이’는 왜 가출하는지 개인적으로 이해가 잘 안 되더라.
나 또한 영화를 촬영할 당시엔 ‘강이’에겐 집을 나갈 만한 동기가 딱히 없다고 생각했다. 모델이 되고 싶었던 ‘소영’이는 공부에 전념할 것을 요구하는 집안의 압박이 답답했고, ‘아람’이는 가정폭력으로 힘들어했다. 그런데 ‘강이’에겐 부유하진 않지만 억압적이지도 않고, 나름대로 사랑을 주는 부모님이 있는데 도대체 왜 가출을 결심하는지 납득이 안 되더라. 결국 촬영을 마칠 때까지도 ‘강이’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게 늘 찜찜했다. 그러고 나서 한동안 활동 공백기가 있었다. 집에 혼자 있는데 문득 ‘강이’가 떠오르더라. ‘강이’를 둘러싸고 있는 평범함이 가출을 부추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평범함이 왜?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다른데 ‘평범함’이라는 기준은 하나이지 않나. ‘강이’도 획일화된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데 답답함을 느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강이’네 집안이, ‘강이’ 본인에겐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집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던 ‘강이’의 마음이 이해될 것도 같더라.
이미 촬영을 마치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때였는데, 감독님에게 전화해서 다시 찍고 싶다고 억지를 부렸다. 물론 감독님은 안 된다고 하시고. (웃음) 그 때 이우정 감독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 “잘 모르는 게 바로 ‘강이’의 마음”이라고. 다행히도 아쉬움은 내레이션으로 풀 수 있었다. 영화 속 ‘강이’는 말이 거의 없는 인물이라 내레이션으로 감정을 전달해야 했는데, 이전에 몰랐던 의미를 깨닫고 나서 녹음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최선의 삶>은 당신에게 어떤 작품인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작품이다. 연기자로서 하나의 도전이었고, 다음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게 만들어줬다. 또 완성된 영화를 보며 위로도 많이 받았다. 가끔 잘 될 거라는 위로의 말보다 공감이 더 와닿을 때가 있지 않나. 극 중 인물들이 겪는 일들을 보면서 '나도 그랬지', '나는 그때 그래서 후회했는데 쟤도 그랬겠구나'라고 공감했고 그게 위로가 됐다. 관객분들도 비슷한 경험으로 인해 마음을 다친 적 있다면, 혹은 지나간 선택으로 후회하고 있다면 영화를 통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으면 한다.
2019년 이후 걸스데이 멤버들이 각기 다른 소속사로 이적하며 음반 활동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있다. 혜리, 유라, 소진까지 멤버 전원이 연기를 하고 있는데.
당분간 걸스데이의 재결합은 어렵지 않나 싶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와 속도로 잘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연기하는 멤버들을 보는 게 아직 익숙하지 않지만 새로운 행보를 응원하고 있다.
늘 멤버들과 함께하다 혼자서 활동하는 건 어떤가.
새 옷을 사면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나. 처음 연기할 때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런데 새 옷이 헌 옷이 되어가는 것처럼 혼자 생활도, 연기자라는 타이틀도 점점 익숙해지는 것 같다. 그래도 가끔 예전 생각을 하면 멤버들이 그립고 어쩔 땐 심심하기도 하다. 가수 활동을 할 땐 스케줄도 빡빡하고 멤버가 여럿이니 굉장히 복작복작했다. 늘 시끄러웠고 외로울 틈이 없었다. (웃음) 걸스데이 때는 각자 맡은 포지션이 있어서, 내가 책임져야 할 부분이 적었다는 걸 본격적으로 배우 일을 시작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멤버들에게 고맙고 미안하더라.
드라마 <미녀 공심이>, <절대 그이>와 영화 <아빠를 빌려드립니다>, <좋은 말> 등 필모그래피가 꽤 쌓였지만 아직도 ‘방민아’ 하면 걸스데이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아이돌 출신 배우’라는 것에 색안경을 끼고 작품을 보거나 편견을 가지는 분들이 일부 있다. 거기에 대한 부담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편견을 깰 수도 없고 깨고 싶지도 않다. 물론 처음엔 인식을 바꾸고 싶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만한 능력이 나한테 없더라. 그래서 내 생각만이라도 먼저 바꾸자고 결심했다. 편견을 깨는 대신 안고 가는 거다. 어차피 걸스데이가 없었다면 나도 없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니 오히려 후련하더라. ‘강이’, ’소영’, ‘아람’이 늘 함께했던 것처럼 걸스데이도 나에게 그랬다. 소중하고 따뜻한 기억이다. 계속해서 걸스데이가 많이 회자됐으면 좋겠고,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우리도 다시 뭉쳐서 인사드리고 싶다.
올 초에는 첫 뮤지컬 <그날들>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뮤지컬이라는 영역이 너무 궁금했다. 내가 노래도 하고 연기도 하니 부족함 없이 해낼 자신감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정말 달랐다. (웃음) 나름대로 공연을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하던 연기나 노래와는 완전히 다르더라. 더 열심히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차기작은?
아직 계획된 건 없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당분간은 누군가를 웃게 할 수 있는 연기를 하고 싶다. 뮤지컬도 하고 싶고. 언제든지 달려갈 테니 불러만 달라. (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한 행복은.
강아지들과 소파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넷플릭스를 볼 때. (웃음) 요즘은 배달이 워낙 잘 돼서 아이스크림도 배달이 다 되더라.
사진제공_국외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