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보이
The Boy , 2016

그레타는 폭력을 휘두르는 거친 남자친구를 피해 영국으로 넘어와 보모직으로 취직한다.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면서 과거를 추스리고 한적하게 일상 생활을 하고 싶은 그녀가 취업한 곳은 외딴 마을에 있는 거대한 저택.
그곳엔 노부부가 살고 있는데 아들이라고 소개한 건 도자기로 잘 만든 인형. 이름은 브람스.
실제 아들인냥 함께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히고 음악을 들려주고 굿나잇 키스를 하는 이들의 행동이 장난스럽게 보이지만 그레타는 고용주인 이들의 마음을 거스리지 않기 위해 그들이 제시한 일을 따르고 인형을 돌보게 된다. 그들이 제시한 규칙은 열가지.

1. 매일 아침 옷 입히고 밥을 먹여줄 것
2. 같이 놀아줄 것
3. 음악을 크게 들려줄 것
4.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줄 것
5. 얼굴을 가리지 말 것
6. 혼자 두지 말 것
7. 다락에 올라가지 말 것
8. 남자 친구를 사귀지 말 것
9. 외출하지 말 것
10. 굿나잇 키스를 해 줄 것

원본과 내용이 달라도 결과적으로 이 10가지는 영화를 공포로 몰아넣는 기재가 되고, 마치 구미호를 봤다고 말하면 부인인 구미호가 떠나간다는 전설이나, 인어공주인 부인이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면 안된다는 동화처럼 그레타를 이 대저택에서 옴쭉달싹 못하게 하는 족쇄가 된다. 그리고 그 족쇄를 풀려고 어겼을 때 일어날 일에 대한 공포가 바로 말하지 않고 그저 반짝이는 얼굴로 무표정하게 있는 인형에게 투사될 때 점점 영화는 심각해져 간다.
한편 노부부는 여행을 떠나고 대저택에는 그레타와 인형만 덩그러니 남게 되는데, 고용주의 부재는 그레타의 긴장된 마음을 풀어지게 하고 위 규칙에 등한시 하게 된다. 그레타의 옷이나 악세서리, 신발이 없어지는 것은 일도 아니고, 그레타가 보지 않는 곳에서 인형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 공포는 오히려 그레타가 통제 가능한 수준으로 변모해간다. 즉, 규칙을 지키면 인형도 또한 그에 맞게 순응하고 그레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이런 비정상적인 대저택 안에서의 일이 결국 외부의 인물에 의하여 깨지게 되는데, 그레타가 있는 곳을 기어이 알고 찾아온 남자친구 콜은 인형과의 동거가 진행되는 이 상황을 말 그대로 산산조각 내버리는 과격함, 우둔함, 그리고 철저히 마초의 끝을 보여주게 된다.
대체 이 저택의 비밀은 뭘까? 인형은 과연 악령이 깃든 존재일까. 이 모든 것이 무지막지한 외부의 한 남자로부터 깨질 때 그동안의 규칙이나 단정한 집안의 풍경은 피로 물들게 된다.

처키나 애나벨처럼 인형에 깃든 악령에의 공포는 동양이나 서양이나 공통된 의식 세계로 보여진다. 그리고 동양에는 잘 없는 대저택에의 공포는 서양인을이 근원적으로 갖고 있는 집에 대한 공포가 아닐까. 먹고 자고 생활하는 집이라는 공간에 다른 누군가가 함께 살고 있다는 생각은 좁고 낮은 동양의 집 구조에서는 피어나지 못할 개념이다. 게다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어야하는 동양의 집은 누군가 함께 살 수 없는 구조일 수 밖에 없다.
서양의 대저택은 그러나 너무 복잡하고 빈 공간이 많고 결정적으로 너무 크다. 가족은 서너명인데 백여명이 살아도 될 정도로 큰 집은 부담이고 빈공간은 다른 무언가로 채워져야할 것 같은 강박을 준다. 그레타가 다락방으로 올라가 과거의 기록들을 읽고 보는 과정은 그래서 영화의 해결을 위한 장면이 아니라 공포의 근원을 파헤치는 이유가 된다. 인형을 아들로 여기며 살아가는 부부의 생활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인형을 돌보라고 베이비시터를 고용하는 것이 정상적인 일인가.

엑소시스터나 치명적 악령의 재림을 기대했다면 결과는 다소 실망스러울 수 있으나 인형의 실체가 들어나는 마지막 장면까지 도달했을 때 기존 공포영화와는 다른 의외의 개운함을 느껴지게 하는 것은 이 영화만이 가지는 특색이다. 그리고 반전이다. 관객은 온통 인형에 집중해 있었고 인형의 표정을 살펴왔는데 그 존재는 결국 다른 곳에서 찾게 되니 허무하면서도 놀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 영화에서 인형은 움직이지 않으면서도 여러가지 표정을 보이고 있다. 인형이 움직이는 장면은 그레타의 악몽에서이고 인형은 그 자체만으로 공포를 풍길 뿐이다. 영화 메이킹 비하인드를 찾아보니 브람스 인형은 3개로 만들어서 표정이 다 다르게 했다고 하는데 영화를 돌려보면 어떻게 인형의 표정이 다른지 확인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이다. 아니면 이 정보를 미리 알고 본다면 영화를 보면서 브람스 인형의 표정이 변하는 부분도 미리 알 수도 있을 것이니 여튼 이쁘장한 소년 인형의 눈빛과 조명에 따라 바뀌는 얼굴은 처키가 풍기는 위압적 공포와는 차원이 다르다.

오랜만에 뜻밖의 공포 영화 한편이 더워지는 6월 초여름에 찾아왔다. 아직 열대야는 아니지만 한낮의 더위로 지친 여름날 저녁에 깔끔한 이 공포 스릴러 영화가 크게 소리지르지 않는 선에서 즐거운 공포의 재미를 줄 것이다. 또한 공포 영화 매니아는 필관람 영화로 리스트에 넣어도 부족하지 않을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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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영화를 좋아하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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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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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닝> <더 비지트> <파라노말 액티비티> <애나벨>의 공통점. 그것은 바로 밀폐된 집 안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그린 ‘하우스 호러물’이란 것이다. 밀폐된 공간은 공포물 제작자들에게 여러 이점을 준다. 제작비를 줄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주인공에게만 시선이 집중될 수 있도록 하며, 익숙한 공간인 집을 공포의 대상으로 전복시킨다는 게 대표적이다. 이 같은 하우스 호러 장르는 주인공 고립-분위기 조성-공포의 대상 등장(클라이막스)-반전이라는 전형적인 스토리 구조를 띤다. <더 보이>는 하우스 호러의 전형성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전형적인 이야기 구조를 띠며, 적절한 타이밍에 공포의 대상이 등장한다. 다시 말해, <더 보이>는 개성이 전무한 호러영화다. 조명에 따라 달라지는 인형의 표정이나 다이아나 하드캐슬의 다소 인상적이긴 하지만 이들이 영화에 개성을 부여하진 않는다. ‘워킹데드’, ‘뱀파이어 다이어리’ ‘슈퍼내추럴’ 등으로 호러 장르에서 입지를 다져 온 주인공 역의 로렌 코헨의 연기도 밋밋하다. <더 데빌 인사이드>(2012)를 연출한 윌리엄 브렌트 벨 감독의 작품이다.
2016년 5월 12일 목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