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같다는 것
나이가 들수록 자신만의 틀에 고정되어
코드가 맞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죠.
더욱이 자연스럽게 만난다는 건 더 힘든 일입니다.
이 영화는 어쩌면 환상의 짝일 수 있는 인연이 그 사실도 모른 채
서로에게 자연스레 녹아 드는 과정을 그렸습니다.
실제같이 연기하는 배우들 때문에 더 와 닿습니다.
특히 김태우라는 배우, 정말 매력 있는 배우입니다.
부드럽고 깊이 있는 말투에 가끔 귀여워 보이는 웃음은
영화 안에서 김태우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인 것 같아요.
사랑의 큐피트 역할을 해주는 조연들의 훈훈한 깨알연기도 놓치지 마세요.
“내 사랑 그대 내 품에 안겨 눈을 감아요.
그대 내 품에 안겨 사랑의 꿈 나눠요.”
외로운데 외로운 줄 모르고 삶에 치여 살고 있었던 두 남녀가 운명처럼 강릉에서 만나게 됩니다.
세 번째 우연한 만남에서 유정은 노래방에서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 안겨’라는 노래를 부릅니다.
잔잔한 이 노래처럼 그들은 너무 열정적이지도 않고 너무 차갑지도 않게 서로를 알아갑니다.
내가 고백을 하면, “넌 어떻게 생각할까.”
보조작가(안영미)와 인성이 영화 시나리오를 의논하는 장면에서
남자주인공의 고백에 대한 부분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고백?
유치해 유치해.
그런 고백 말고 좀 참신한 거 없을까?
이 장면 꼭 인성 본인의 걱정 같았던 느낌은 저만 들었던 걸까요?

 |
|
 |
악역 없는 잔잔한 영화를 좋아하는 분, 30대 외로운 분 |
|
| 글: 윤화영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
이 영화를 말하기에 앞서 트뤼포가 말했던 그 유명한 영화를 사랑하는 세 단계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를 두 번 보는 것, 평을 쓰는 것, 그리고 영화를 직접 만드는 것. 영화사 스폰지 대표이자 감독으로 출사표를 던진 조성규, 그가 세 번째 영화 <내가 고백을 하면>으로 다시 찾아왔다. 영화를 두 번, 아니 열 번은 더 보고, 평을 쓰다 수입배급, 제작을 하더니 급기야 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선 무모한 용기, 그 결정체인 전작들 <맛있는 인생>과 <설마 그럴 리가 없어>는 안타깝게도 '무모한'에 방점이 찍혔다. 그리고 설마 또 도전할까 싶었던 그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세 번째 영화를 들고 나섰다. 이번만큼은 전작에서 품었던 불평불만에 대한 보상이 될 것 같다.강릉 예찬은 계속 된다. 3박 4일 동안 부지런히 먹으러 다녔던 맛집 기행(奇行) <맛있는 인생>에 이어 군침 도는 강릉의 식도락은 여전하다. 이번에는 강릉과 서울을 여자와 남자로 치환해 장소를 캐릭터에 실었다. 주말마다 강릉을 찾는 영화 제작자 인성(김태우), 그리고 평일에는 고된 가정방문 간호사로 일하고 주말에는 그 보상이라도 받겠다는 듯 부지런히 서울로 향하는 유정(예지원)이 있다. 주말마다 익숙한 공간을 떠나 낯선 도시의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며 행복의 편린을 쫓는 사람들이다. 매주 잠자리를 찾아 헤매는 고단함은 여러 번의 망설임과 고민 끝에 주말 집 바꾸기로 해결된다. 마치 낸시 마이어스의 <로맨틱 홀리데이>처럼(영화에도 언급된다). 이 이상한 형태의 동거로 남녀는 서로의 취향을, 습관을, 분위기를 익혀간다. 영화는 제목부터 알싸한 로맨스를 기대하게 하지만 사실 그 로맨스가 시작되기 직전에 끝난다.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건 장작을 모으고 좀처럼 타오르지 않는 로맨스라는 연기를 지피는 과정이다. 이 과정 속에서 온갖 근사한 것들이 코스로 하나씩 올려 진다. 유재하의 <그대 내 품에>가 유정의 입을 통해 흐르는 순간이 좋지 않을 수 없다. 흰 눈이 나리는 풍광 사이로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읊조리는 장면이 좋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마지막 장면, 강릉까지 한 달음에 달려가 만나는 낯선 남녀에게서 <봄날은 간다>의 실루엣이 어김없이 드러난다. 이 또한 좋지 않을 수 없다. 영화에는 이렇게 오기가미 나오코의 포스터, 백석 시집, 유재하의 노래가 소품으로 불쑥 불쑥 끼어든다. 이 모든 근사한 것들의 아우라를 빌려 귀여운 반칙을 일삼고 있는 듯하다.극중 별 반개를 준 평론가가 말했듯 자기 반영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내가 고백을 하면>은 전작 <맛있는 인생>의 혹평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강릉이 배경이고 부지런히 먹으러 다니지만 여기에 기분 좋은 웃음이 배어난다. 전작들의 그림자로 인해 품게 될 일종의 선입견을 걷어내는 웃음이다. 영화사 대표 출신 감독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선입견을 휘발시키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결과물이 담보되어야 한다. 조성규 감독은 <내가 고백을 하면>을 통해 첫 걸음마를 뗀 것 같다. 온갖 근사한 취향의 전시장이자 최대공약수를 마련하면서 자기 풍자는 스스로 상처받지 않을 만큼 양념으로 끼얹고 나이브함은 숨김없이 드러낸다. 홍상수 영화의 응석받이 막내 동생 버전을 보는 듯하다. 세상에 만년 루저란 없는 법이다. 영화는 9회말 2아웃의 난조에서 안타 한 방으로 실점을 만회한다. 극중 대사 그대로 충무로가 삼 세 판이라면, 여러모로 다행이다.
2012년 11월 13일 화요일 | 글_양현주 (siwoorain@movi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