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렛 도넛
Any Day Now , 2012

얼마 전, 아일랜드에서 동성결혼이 국민투표로 완전 합법화 됬다는 기사를 보았다. 세계적으로 성소수자를 위한 관심과 법적 평등이 점점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다. 실제로 이번 리뷰의 영화인 “초콜렛 도넛”의 배경이된 미국 역시 영화 속 배경인 70년대와 다르게 현재 꽤 많은 주에서 동성애 및 동성결혼, 입양까지 인정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성소수자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이 이미 하리수나 홍석천씨 같은 분들을 통해 어느정도는 알려진 상황이다.
“초콜렛 도넛”은 게이커플이 지적장애아동을 입양하고자 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로, 사실상 게이영화라기 보단 이들을 둘러싼 편견과 차별에 대한 이야기이다. 때문에 게이영화 자체의 애정묘사를 싫어하시는 분들에게도 그렇게 불편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기존에 장애인을 다룬 영화들, ‘아이엠 샘’처럼 순수하고, 아름답고, 나름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에서 느꼈던 감동이랑은 꽤 다른 이야기다.

“초콜렛 도넛”의 줄거리는 꽤 단순하다. 게이 커플이 다운증후군이 있는 아이의 부모가 되고자 법적 투쟁을 과정을 그린 영화다. 루디(알란 커밍)는 게이바에서 노래하며 근근히 월세를 내는 게이다. 폴은 무난한 인생을 살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깨닫고 게이로 전향한 뒤 세상을 바꿔보고 싶다는 일념에 10년을 투자가 검사가 된다.
둘은 게이바에서 만나 불 붙듯이 사랑하게 된다. 마르코는 다운증후군이 있는 루디의 옆집 아이로, 마약에 찌든 엄마를 뒀다. 그래서 지적장애가 있음에도 혼자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설상가상으로 마르코의 엄마가 감옥에 투옥되자 평상시 마르코에게 강한 연민을 느끼던 루디가 마르코를 돌봐주게 된다. 하지만 행복도 잠시, 그 과정에 아동복지국에서 마르코를 데려 갈려고 하자 루디는 검사인 폴에게 부탁해 자신들이 마르코를 키울 수 있도록 힘든 법적 투쟁을 시작하게 된다. 결국 판사는 루디와 폴의 요청을 기각하고 마르코는 보육시설로 맡겨지게 되고 얼마 뒤 차가운 주검이 된다.

영화 초반부의 게이 간의 사랑이나 연애장면은 길지 않다. 수위높은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다만 서두에 밝혔듯이 영화는 70년대 미국에서 소수자가 겪는 편견과 차별에 대한 내용이 계속해서 나온다. 나름의 애정을 가지고 마르코를 위해 가정을 마련하고, 또 교육시키며, 일반적인 가정에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준 루디커플이지만 결국 판사는 이들의 요청을 기각해버린다. 영화 중후반부에 걸쳐 있는 재판과정 중 가장 결정적인 기각사유는 결국 이들이 아이에게 미칠 영향력이다. 아이를 위한 환경조성이나 교육, 경제적 지원 등이 준비 되더라도, 마르코가 루디-폴 커플을 보며 성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재판의 내용이 나름 합당한 것처럼 보이지만 루디와 폴은 진심으로 마르코를 위하고 사랑했기에 안타깝다. 또 마르코가 처한 현실이 원래의 무책임한 엄마에게 돌아가든, 보육원에 들어가든 진정한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걸 루디도, 마르코 본인도, 그리고 관객 우리들도 알고 있기에 더욱 안타까운 것 같다. 어쩌면 차별이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영화 내내 루디 커플을 향한 시선이라든지, 또 중간에 따로 고용되는 흑인 변호사를 보면, 영화의 배경인 70년대 미국사회은 이런 사례가 지금보다 더욱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조금 화제를 돌려, 영화 자체를 살펴보면, “초콜렛 도넛”은 전세계 12개의 국제영화제에서 15개 부문을 석권하고 그 중 10번은 관객상을 수상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관객들에게 검증된 영화란 것이다. 아이엠 샘처럼 풋풋한 감동이나 해피엔딩보단 찝찝하고 흐릿하지만 뼈대있는 대사와 신랄한 유머 등을 통해 어두운 면을 적절한 조명으로 잘 비춘 것 같다.
또한 루디 역을 소화한 알란 커밍은 실제 커밍아웃을 한 게이 배우로, 미드 굿 와이프. 엑스맨 2 등 여러 작품을 통해 얼굴을 비쳤으며 특히 이번 영화를 통해 시애틀 국제영화제 등 총 3개 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자배우상을 수상했다. 극 중 알란 커밍은 루디 역을 완벽하게 소화한다. 훌룡하게 연기하기 위해 노력한 느낌이 아니라, 그냥 완벽하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다. 또다른 배우로는 마르코를 연기한 아이작 레이바를 빼둘 수 없다. 그는 실제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인이지만 연기에 재능이 있는 사람으로 특별히 발탁됬다고 한다. 특히 “초콜렛 도넛”의 내용은 감독이 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각색을 했다고 하니, 더 호소력이 있는 것 같다.

사실, 리뷰를 보든, 영화를 직접 보든 결국 영화에 대한 스케일이나 씬, 편집, 각본, 구성 같은 일련의 영화적 요소들은 쉽게 연결이 안된다. 초반부의 혼자 거리를 배회하는 마르코의 모습으로 시작해, 영화 마지막에 다시 거리로 나온 마르코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식의 수미쌍관 구조 말고는 딱히 언급할만한 구성이 없다. 루디가 부르는 노래처럼 나름의 희망 혹은 슬픔을 표현하는 ost곡 I shall be released가 영화 후반부에 흐르듯이, 그저 매끄럽게 각 샷이 흘러간다.
솔직히 말해, 무난하다. 영화 자체의 테크닉이나 복잡한 구성방식이 없다. 기승전결의 ‘결’ 부분에서 관객의 감동 혹은 분노를 이끌어 내지도 않는다. 그저 착찹한 기분만 남는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를 보기보단, 앞서 계속 애기 했듯이, 영화에서 말하는 성 소수자, 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생각해보는 영화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고를 따지기엔 양쪽 모두 꽤나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손을 들어줄 순 없지만, 적어도 몇몇의 경우에 따라서, 평상시 생각하던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으며, 대상이 성소수자든, 장애인이든, 사회적 약자계층의 누구든 할 것 없이 무조건 배타적인 시각으로 바라 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이런 것들을 진지하게 고민해보기에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