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다이어리
Non-fiction Diary, 2013

2014년 4월 16일, 아이들이 바다속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은 후 한국 사회는 안전에 대해서 마치 멀리 떨어졌다가 다시 만난 가족인냥 부르고 만지고 노래불렀다. 2014년 10월 18일, 판교 환풍구에 올랐던 사람들은 추락했고 왜 위험한 환풍구에 올라갔냐고 탓하는 목소리보다 야외 공연에 대한 시설 안전 점검의 미숙한 부분에 대해서 다시 또 잃어버린 가족처럼 부둥켜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태풍이나 해일 같은 천재지변에 의한 죽음은 하늘을 원망할 수 밖에 없지만 인간에 의한 인재는 사는 동안 같은 하늘 아래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원통하고 분해할 수 밖에 없다. 살아 있는 가족이라면 그 슬픔을 비견할 무엇도 찾을 수 없고 살아도 산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닌 삶을 살게 된다.
<논픽션 다이어리>는 딱 20년 전으로 돌아가 1994년의 안전과 만난다. 과연 그 안전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금의 안전과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같을까?
영화 표지에 나와 있는 포승줄로 묶인 젊은이들, 이들은 연쇄살인을 저지른 악인들로서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들을 단지 돈이 있을 것 같다는 이유로 죽였다. 돈 있고 빽 있는 자들의 돈을 빼앗고 죽인다, 는 단순하지만 잔인 무도한 법칙을 세우고 정말 실행에 옮겼다. 이 살인마들은 당시 한국 사회의 순진한 자본주의에 대한 일반 시민의 맨얼굴을 정면으로 보게 하였다.
의적이긴 커녕 여성을 성폭행하고 같은 조직원을 찾아내 살해한 범죄인으로서 자신들이 마치 한국 사회의 정의로운 양심수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실제로는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살인마들일 뿐이다. 20대의 젊은이들이 아직 사회에 대해서 그만큼 살아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 사회와 인간과 이 세상에 대해서 분노하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살인마가 된 이유가 뭘까.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해서 죄책감도 느끼지 못할 만큼 건조해진 이들의 감정에 대해서 당시 사회는 어떤 태도를 취했을까.

연쇄살인이란 범죄유형은 서구의 거대한 국토를 가진 나라에서 외진 밤에 일어나는 사이코패스의 살인 행각으로 생각되어 왔지만, 인간이 악을 접할 때 그것은 동양과 서양을 구분하지 않는 인간의 한 성향일 뿐이라는 개념이 한국에서 발생된 이후의 연쇄살인을 보면 알 수 있다.
유영철 정남규 강호순 등의 이어지는 연쇄살인마들은 지존파들이 말한 어설픈 정의는 커녕 마치 재미를 위해서 인간을 죽인 것으로 보여지며 이것이 우리 한국 사회의 동네 어귀, 이웃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것에 더 경악할 수 밖에 없다.
성범죄자들을 온라인으로 신상명세를 공개하는 법이 통과되어 시행되는 지금 2014년의 모습은 그런 경악에 대한 온전한 대처법이자 우리 동네, 우리 사회, 우리 옆집이라는 공간의 간극에 대한 공포를 좀더 알아보고 살고 싶은 안전성에 대한 대책이다. 공포의 근원은, 무지에 의한 것이라는 설에서 찾아보면 우리 이웃이 아동성범죄자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를 해소해줄 방법이 바로 성범죄자 공개이며 그들의 거주지를 파악하는 것만으로도 일단 우리 집 주변의 안전을 어느정도 확보했다는 안심을 들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 안심과 안도가 내 가족의 안전을 담보하는가도 이제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지경이다.
영화 속에서 말해지는 인터뷰와 당시 사건 담당 경찰, 그리고 이면의 이야기가 이렇게 영화라는 포맷으로 포장되어 보여지지만 그분들의 증언은 어떤 부분에서 몸서리 치게 만드는 현실이기도 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사건 내면에 숨겨진 상처를 더 벌려서 피를 흘리게 하는 아픈 수술이기도 하다.

그런 공포와 안타까움을 이어갈 때쯤 찬바람이 부는 10월의 이른 아침에 우리가 매일 보는 한강의 다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아야 했다. 마치 칼로 케이크를 썬 것처럼 사람과 차가 지나다니는 교량이 뚝 끊어진 모습은 비현실적이지만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에서 일어난 현실이다.
등교하던 버스 안의 아이들은 추락했고 또한번 한국은 슬픔에 빠졌다. 지존파가 사회에 대한 불만을 가진 자들이 모인 것이라면 안전을 뒤로한 시설물 관리의 실책은 또다른 지존파라 할 수 있다. 아이들은 한강에 떨어졌고 지존파에게 죽은 사람들은 슬프게 살해당했다. 그리고 1995년 6월에 500명이 죽은 사건, 상품백화점이 무너졌다.
연이은 비보에 대한민국은 슬퍼했지만 이 일들이 우리 사회가 감추어왔던 안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를 뒤로한 결과라는 것이 더 슬프고 마음 아픈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기에 관련자들은 역시 감옥에 갔고 대그룹은 해체되었으며 대한민국 정부는 안전을 최우선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영화 속 출연자 중 한분인 전 서초경찰서 강력계 반장님의 이야기는 이 일들을 하나로 꿰뚫는 명제를 남긴다. 사람을 죽인 지존파와 위험을 무시한 상품백화점 운영회사는 결과적으로 같은 종류라는 것. 사람이 죽은 방법은 다르지만 소중한 생명이 희생된 결과로 본다면, 이 둘의 결국 같은 악행을 저지른 결과로 보여지기에 누가 더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촌철살인 같은 사견일 수 있으나 영화의 맥락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안전을 말하는 부분이 20년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겪고난 후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이야기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의 이야기도 한가지로 귀결된다. 지금 유가족은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고 슬퍼하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 슬픔에 대해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바꾸지 않으면 누구든 그 슬픔이 언제 어느 때 찾아올지 모르며 그 때서야 안전을 말한다면 그 땐 또 역시 늦었다는 뜻이다. 대형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게 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은 약속이기도 하고 반성이기도 하다. 약속과 반성 모두를 지킬 때 희생된 분들의 넋은 적게나마 위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약속과 반성에 대해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때 과연 지금 시행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돌아보는 2014년이 될 수 있다. 돌아가신 분들의 삼가 명복을 빌며…
 |
|
|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