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시그널
The Signal, 2014
인간이 알고 있는 물리적 지식을 뛰어넘는 최첨단 과학 문명 기술을 가진 외계인이 있다면, 그들이 타고다니는 우주선은 왜 가끔 멍청하게도 인간의 카메라에 찍히는 걸까? 그 뛰어난 기술로 인간의 육안이나 카메라의 센서에 잡히지 않도록 좀 제대로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겠나. 이런 의문을 나름 갖고 있으면서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부정을 합리적 의심으로 치부하려는 개인적 소망은 가끔 무너지고 마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이런 <더 시그널> 같은 SF 영화들을 볼 때가 그렇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 혹은 존경심에서 인간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상상력, 호기심으로 만든 외계인들의 외형 등은 수십년간 SF 영화에서 보아온 주제이지 않은가. 어느 한 순간 지구에 내려와 내가 외계인이다, 라고 존재를 드러내더라도 별로 놀랍지도 않을 것 같은데, 외계인 납치설, 외계인은 지구 속에 있다는 지구공동설, 스텔스 전투기 같은 기술은 인간이 만들 수 없었는데 외계의 기술을 빌려왔다는 외계인 합작설 등등 무한한 설들을 듣다보면 어느 순간 최면이 걸린다.
한편, 외계인은 지구 인간들에게 별로 말을 걸고 싶지 않다는 의견에 십분 동의한 적이 있다. 우리가 서울대공원에 가서 끽끽거리며 돌아다니는 원숭이들에게 말을 걸고 싶지 않은 것처럼, 우리에 갖힌 그들의 빨강 엉덩이나 보면서 웃는 것처럼, 외계인들이 보는 지구 인간들은 그들의 수준에서 볼 때 서울대공원의 원숭이와 비슷하다는 의견 말이다.
하지만 지구 인간들의 문명은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고 기술은 점점 위대해져서 그들의 존재의 단서를 획득하는 순간이 곧 온다면, 그럴 가능성이 높아져 존재가 발각될 시간이 다가온다면 그들이 취해야할 태도나 입장은 둘로 나뉠 것이다. 인간에게 호의를 배풀 것인가, 아니면 더 이상의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도록 응징할 것인가.

이 영화 <더 시그널>은 그런 선택의 입장을 아마도 외계인의 시선에서 살펴볼 때 재밌고 긴장되게 즐길 수 있는 영화일 것이다.물론 이 의견도 영화를 끝까지 보고 난 후의 결론이지 모르고 보기 시작한 관객은 조금은 답답하고 계속되는 의문과 의구심에 짜증까지 날 수 있다.
여행을 떠난 세 친구 닉, 조나, 헤일리는 어느 신호를 따라 낯선 장소에 도착한다. 그 신호는 MIT를 해킹한 것으로 유명해서 천재로 불리는 노매드가 보낸 것으로 알고 그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 하지만 신호를 따라 찾아간 그곳은 낯설고 기괴한 경험을 하게 하는, 마치 거대한 무대 위에서 누군가에 의하여 조정되는 느낌을 받는 위험한 장소일 뿐이다.
흘려진 신호를 알아채고 그 신호를 따라간 세 사람의 능력을 보듯이 젊은 그들은 그 장소를 탈출하기 위해서 애쓰고 결국 주어진 상황을 살피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파악하여 탈출하지만 지도와 다른 마을의 구조, 위치, 어느 순간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상황을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지고 결국 헤어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것처럼 그 신호를 따라오지 말았어야 한다는 뒤늦은 자각을 하게 된다.
어느날 잠을 자다가 갑자기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는 사람들의 증언이 있다. 밤길 운전을 하다가 또한 눈부신 불빛이 나타나 순식간에 정신을 잃고 보니 외계인에 의하여 신체 실험을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인간보다 더 뛰어난 과학기술이 있다고 그렇게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할 만큼 인간을 실험대상으로 삼는 외계인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인간이 흰쥐를 대상으로 신약을 실험하고 개발하는 것처럼 인간의 신체를 이용해서 신기술을 만드는 의도라면 지구인들은 모두 하나로 뭉쳐서 궐기하여 이 잔인한 외계 생명체에게 도전하고 반기를 들어야 한다. 인간을 도구로 삼는, 용서할 수 없는 외계인들은 지구인에게 상당한 위협을 가하는 존재로 보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 인간들은 우리끼리도 서로 죽이고 싸우는 현실에서 단지 외계인들을 대척할 수 있을까? 우리 인간들 자체도 서로 믿지 못하는데 말이다. 이런 철학적 질문과 사색을 뒤로 하고서도 <더 시그널>을 보고나면 섬뜩한 기운을 맞보게 되고 장면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한번도 답답한 우주복을 벗지 않는, 사람 얼굴을 한 데이먼(로렌스 피시번)의 진정한 모습을 봤을 때, 팔목에 새겨진 숫자들 등은 만들어진 현실의 <매트릭스>나 지금 누군가 나를 관찰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공상을 하게 하는 <트루먼 쑈>를 자연스럽게 생각나게 하기 때문이다.
세 주인공들의 겪는 기괴한 경험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한 스토리이지만 결말을 향해서 뚝뚝 끊기는 불편한 발걸음으로 향해가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한순한 펼쳐지는 결말에 관객은 해석을 해야하는 숙제를 떠안게 된다. 그런 다소 불편함을 상쇄해주는 선물은 바로 이 영화의 감독이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으로서 색다른 영화 장면을 많이 보여주어 독특한 색상과 느리지만 현란한 모션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준다는 데 있다.
각자 다른 방에 갇혀 있지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은 갇힌 방이 빨강색 조명이 되었을 때라는 설정은 지금 상황에 위급하기도 하지만 건너편의 친구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바로 빨강 경고등처럼 위급한 바로 ‘지금’이라는 설정, 협곡을 달리고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는 마을 분위기와 경치 등은 광고와 뮤직비디오를 만든 감독의 경험과 감각이 그대로 들어나는 빼어난 산출물이다.
잘 생긴 피어스 브로스넌이 강아지 몸을 가지게 된 <화성 침공>처럼 실험 소와의 유기적 생체 실험 장면이 나타날까 내심 긴장을 주었던 실험실 장면은 재치 있는 감독의 위트이자 외계 실험의 부정적 시각을 나타낸 직설적 화법으로도 읽힌다. 매력적인 헐리우드 남자 배우로 인기 많은 브렌튼 스웨이츠와 깜찍한 올리비아 쿡의 열연도 이 낯설고 신선한 SF 스릴러 영화의 비주얼에 한 축을 이루기에 보는 내내 긴장감과 의문과 신선한 장면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SF 매니아가 아니더라도 스릴러 매니아라면 놓치지 말아야할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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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매니아와 스릴러 매니아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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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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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시그널>은 해커들 간의 치밀한 두뇌게임, 외계 생명체에 의한 감염과 격리된 세계, 그리고 마지막 반전까지 흥미로운 소재들을 차용하고 있지만 이를 유연하게 결합하여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지는 못한다. 결말을 예상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스토리는 극에 스릴감을 더하지만 난무하는 힌트와 속임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함은 어느 순간 피로감을 안기고 만다. 하지만 후반부의 만화적 요소는 어이없지만 웃음을 주는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풍부한 아이디어와 기발한 발상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지 못한 감독의 연출력이 아쉽지만, 이번이 그의 두 번째 연출작임을 고려했을 때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드는 나름의 매력을 지닌 영화다.
2014년 7월 3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young@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