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만 버티면 (집으로...) 개구쟁이 7살. 엄청 연상녀와 귀(?)막힌 동거를 시작한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먼지 풀풀 날리는 시골길을 한참 걸어, 엄마와 7살 상우가 할머니의 집으로 가고 있다. 형편이 어려워진 상우 엄마는 잠시 상우를 외할머니 댁에 맡기기로 한다. 말도 못하고 글도 못 읽는 외할머니가 혼자 살고 계신 시골 외딴집에 남겨진 상우. 전자오락기와 롤러블레이드의 세상에서 살아온 아이답게 빳데리도 팔지 않는 시골가게와 사방이 돌 투성이인 시골집 마당과 깜깜한 뒷간은 생애 최초의 시련이다.
하지만, 영악한 도시 아이답게 상우는 자신의 욕구불만을 외할머니에게 드러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외할머니가 그렇듯 짓궂은 상우를 외할머니는 단 한번도 나무라지 않는다. 같이 보낸 시간이 늘어날수록 상우의 할머니 괴롭히기도 늘어만 간다. 빳데리를 사기 위해 잠든 외할머니의 머리에서 은비녀를 훔치고, 양말을 꿰매는 외할머니 옆에서 방구들이 꺼져라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그러던 어느 날,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은 상우는 온갖 손짓발짓으로 외할머니에게 닭을 설명하는 데 성공한다. 드디어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는가 싶지만, 할머니가 장에서 사온 닭으로 요리한 것은 “물에 빠트린” 닭. 백숙이었다. 7살 소년과 77세 외할머니의 기막힌 동거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께 이 영화를 바칩니다}
* 출연진의 다른영화 :
집으로
The Way Home, 2002
아름다운 대사들로 사랑의 변화와 연애의 의미를 생각해볼수 있었던 <미술관옆 동물원>을 연출한 이정향 감독은 월드컵의 주기를 따르기라도 하듯 4년만에 영화<집으로>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된다.1998년 개봉작<미술관옆 동물원>으로 다음해 거의 모든 영화제의 상을 석권 해버리고,당시 떠오르는 스타 "심은하"가 스타의 반열에 확실히 자리메김 하게된 계기가 되기도 했으며,신인배우 였던 "이성재"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키게 된 작품이기도 하였다.
여성특유의 섬세한 감각으로 화려한 데뷔를 한 이정향 감독은 자신의 고향인 충북 영동의 작은 마을로 안내하여 외할머니와 손자의 가슴따뜻한 사랑이야기로 또 한번의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대사 한마디 없이 몸짓과 수화로만 대화가 가능한 외할머니 역할의 "김을분"할머니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마을에 실제로 거주하시던 분으로 처음해보는 연기이지만 우리들의 할머니의 모습 그대로를 재연하는 자연스러운 연기로 할머니를 추억하는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수수하지만 진한 감동을 안겨주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자신의 일처럼 공감되는 "산골마을 입촌기"
힘든 생활탓인지 엄마(동효희)와 아들(유승호)의 기차여행은 행복해 보이질 않는다.처음접해볼 시골생활의 두려움과 외할머니에 대한 궁금증은 아들 상호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엄마의 대답은 건성으로 대답하는것이 전부,잠간의 대화속에 알아낼수 있었던건 외할머니가 벙어리라는 것과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는것이다.그나마 기차가 주는 편안함은 잠간의 안락함을 맛볼수있는 시간이었고 버스로 갈아타고 굽이굽이 경사진길을 시골버스 안에서 견뎌야하는 고통은, 도시의 편안함에 익숙해져있는 상호에게는 지독한 고문이기도 하다.
어릴적 한달에 한두번은 겪어야 했던 시골버스의 경험들은 창밖의 한가한 농촌풍경과는 달리 보따리 짐들로 인해 복잡했고,동네 어르신들의 잡다한 인생사들은 버스가 품어내는 굉음과도 견줄만한 엄청난 소음이었던 걸로 기억된다.지금도 시골 어딘가에 가면 존재하고있을 시골버스의 풍경은 아련한 그 시절의 기억들을 회상하며 미소짓게 하지만,영화속 상호의 입장에서 본다면 분명 내가 경험했던 그 아찔한 기억들과도 닮아있는 고통스러운 시간일것이다.
장바구니를 탈출한 장닭의 화려한 날개짓,아주머니들의 요란한 웃음소리,좁은공간에서 어쩔수없이 경험해야 하는 불쾌한 접촉들은 앞으로 상호가 경험해야할 험난한 산골생활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19살 어린나이에 돈 한푼없이 무작정 가출한 엄마는 미운 7살, 철부지 아들과 함께 할머니를 찾아오지만 어느새 허리가 굽은 할머니는 어떤 원망도 타박도 하지않은채 묵묵히 받아들이고,그저 딸이 하루라도 당신곁에서 자고 가기만을 원할뿐이다.
하지만 상호 아빠와 헤어진지 오래된 엄마는 홀로 상호를 키우며 힘겹게 살아왔고,그나마 운영하던 가게마저 빚에 쪼달려 다른사람에게 넘겨진 상태...그런 그녀에게 단 하루의 시간도 허락되지 않으며, 할머니의 소박한 소망인 딸과의 하룻밤마저도 거절할수 밖에없는 힘겨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막차를 타고 떠나가는 딸의 모습에 할머니의 마음은 미어지고 안스럽다.시골버스가 남기고간 먼지의 흔적들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아득히 멀어져가는 버스를 바라보며 뒤돌아 보지도 않는 딸을 향해 한없이 손을 흔들어준다.
모든걸 포용하는 "미안해"
외할머니와 상호의 나이차이 만큼 서로 다른 생활방식은 곳곳에서 극단적인 차이점을 보이게되고 이들의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과자와 탄산음료에만 익숙해져있는 상호에게 할머니의 거친손으로 찢어주는 김치는 할머니의 따뜻한 정(情)이 담겨진 행동 이지만,상호가 받아들이기에는 부담스러운 행동이 아닐수없다.다락방에서 꺼내주는 오색과자는 그동안 아껴둔듯 소중하게 보관되어있고, 마땅히 먹을거리가 없는 오지의 마을에서 상호에게 줄수있는 유일한 먹거리 이기도 하다.하지만 쵸코릿과 달콤한 과자에만 익숙해져있는 상호에게 낮설은 오색과자가 눈에 들어올리가 없다.
자신이 살아왔던 세계와는 너무다른 시골생활은 모든게 맘에들지 않고, 할머니의 행동 하나하나가 불만인 상호..도시에서 경험했던 다른 할머니들의 세련된 모습과 비교되는 외할머니의 굽은 허리와 초라한 행색은 상호의 도를넘는 건방진 행동으로 표현된다.이럴때마다 할머니는 가슴을 쓰다듬는 행동을 하며 미안한 표정을 하곤하는데,이 행동은 수화로 "미안하다"는 말이며 상호가 있는동안 수없이 반복되는 할머니의 유일한 감정표현이며,말을 하지못하는 할머니의 사랑과 용서,이해,포용 모든것이 담겨져있는 사랑의 표현이기도 하다. 외할머니라는 그 따뜻하고 포근한 이름
"사랑한다"라는 수화의 표현을 알지 못해서일까? 알고있다고 한들 사랑의 표현이 서투른 할머니에게 최고의 사랑표현은 "미안해"이것 뿐이었을것이다.게임기의 밧데리가 떨어져 사달라고 할때도,켄터키 치킨을 요구하는 상호에게 물에 빠트린 닭(백숙)을 해주자 밥상을 걷어차는 철부지에게도, 할머니는 언제나 그렇듯이 가슴을 어루만지며 "미안해"라고 하며 조용하고도 지극한 사랑을 보여준다.굳이 말못하는 할머니를 등장시켜 손자와의 사랑을 그려내려 했던 의도에 대한 궁금증은 친할머니라는 그 따뜻하고 포근한 존재가 주는 위대한 사랑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풀리기도 한다.
할머니에게 무례함을 범하는 상호의 행동은 많은 이들이 경험했던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들과도 무관하지 않으며,나또한 밥상에 떨어진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불만스러웠고,지금은 어디에서도 맛볼수없는 외할머니의 청국장냄새가 그리도 싫었는지 투정부렸던 기억들이, 지금은 볼수없는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이기도 하다.이제는 받은 사랑을 되돌려 줘야하지만 정작 받아야할 당신은 받을게 아무것도 없다는듯, 되돌아올수 없는 머나먼 길을 떠나버리셨다.
이별 그리고 ..집으로...
놀이라고 해봐야 가지고온 게임기와 인라인스케이트가 전부이고, 그것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무료한 시간들을 보내지만,순박한 동네아이들과도 서서히 동화되어가고,외할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은 철부지 상호의 투박한 감정마저 순수하게 변화시키는 마력을 발휘하게 된다.하지만 엄마가 오시면 떠나야만 하는 상호..이제 남겨진 시간들은 야속하게 빨리 지나가며 홀로 남겨질 할머니에 대한 걱정으로 글을 알려주게 되고,바늘귀를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할머니를 위해 바늘마다 실을 꿰어놓기도 한다.
몸이 아프면 "아프다" 보고싶으면 "보고싶다"이렇게 라도 편지를 쓰라는 상호, 한글을 모르는 할머니에게 "아프다""보고싶다 이 두단어 조차 힘들지만 상호는 기억하게 만들고 행여 잊어버릴까바 몇번을 연습시키는 정성을 솓기도 한다.할머니의 유일한 표현수단인 "미안해" 와 "보고싶다""아프다"는 손주 상호와의 따뜻한 교감의 언어이며 서로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고 사랑을 전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