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오브 갓
Son of God, 2014

대본 : 4복음서
마태복음은 유대교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에서 탄생했듯이 유대교 전통을 지닌 이들을 위한 시각의 공관복음이다. 마가복음(마르코복음)은 사도 베드로의 비서이자 사도 바오로(바울)와 함께 선교 여행까지 했던 마가(마르코)가 저술한 복음서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증언이다.
루카복음(누가복음)은 의사이자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 출신으로 가난한 공동체 출신의 루카가 편집한 공관복음으로 예수와 제자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의 큰 흐름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영화에 가장 근접한 사건들, 그리고 일화들의 소개가 나오는 사도 요한이 저술했다는 공관복음과 시선이 다른 요한복음은 요한계 공동체의 전통 안에서 앞의 공관복음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기적, 예수의 일화들을 다루며 보다 더 예수의 수난과 부활부분을 심층적으로 보도한다.
식상한 예수 이야기
앞에서 필자가 길게 설명한 그리스도교(기독교)의 4복음서가 바로 이 영화의 대본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갈릴리에서 활동한 예수의 기적(표징)들을 통해 왜? 예수의 신분이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신)에게서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과 동격인가?를 이어가며 나머지 반, 후반부는 배척받고 수난받는 신의 아들로서 그의 숭고한 희생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 우리가 객관적인 시각에서 이 영화의 시선에는 이미 신으로서의 자격을 부여하는 신앙공동체의 신격화된 예수가 있다는 것을 간과하면 안된다. 다시 말해, 이미 예수를 추종하는 신앙공동체에서 예수의 제자들까지 저 세상으로 간 이후에 그들의 신앙을 증언할 예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기에 다분히 신앙적이 냄새가 풀풀 난다는 것이다.
만약, 필자가 예수를 내 삶의 메시아, 신으로 받아들여 추종한다면 이 영화를 통해 드러나는 그 신념과 정확히 들어 맞는 예수 이야기에 감동하고 그의 지독한 수난 장면에서 눈물범벅이 될 테지만 그 반대라면 이게 무슨 맹랑하고 그저 그런 이야기인가? 할 수도 있다. 이 영화가 교회나 성당에서 상영되고 기독교 신자들이 본다면 하늘을 우러러 큰 감동에 대한 감사기도를 드리겠지만 비신자가 본다면 그 시대 위대한 인물의 영웅화된 일대기를 보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디테일이 영화 대본인 성경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 말은 영화의 대본인 성경에 가연성이 있어 보이는 살을 붙인 것인데, 이런 시도는 이미 예수의 일대기를 영화로 한 모든 영화들 <나자렛 예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네티비티 스토리> 등에서 시도한 것이기에 그리 놀랍지는 않지만 성경에 이름만 언급된 인물들의 활약들은 - 빌라도의 아내 클라우디아, 수시로 등장하는 말코스, 역시 이따금 등장하는 바라빠 - 조금은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도 일화의 대부분은 성경의 대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정확히 요한 복음의 로고스 찬가로 시작하여 4 복음서가 각지 증언하는 예수 부활 이야기를 끝으로 2시간 20분의 런닝타임을 채운다.
예수는 누구인가?
위대한 스승(랍비), 비폭력 혁명가, 중개자 없는 하느님 나라의 선포, 치유자, 정치적 희생양, 마술사, 기적을 일으키는 자, 사기꾼, 술꾼, 먹보 등등 그를 바라보는 시각은 과히 다분히 신원확인에 대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역사의 예수가 어땠는지 알길이 없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신화화되고 윤색된 예수를 만날수 밖에 없다.
그의 실재여부는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지만 그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가 가진 이 이야기들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영화에서 전개되는 예수의 언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 유대 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를 둘러싼 시대 상황을 이해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 사실, 이런 것들에 대한 이해 없이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고 해석하고 신념화하여 오류를 범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우선 예수를 신앙의 대상에서 바라본다면 그는 인류를 구원할 신의 계획안에서 스스로 희생제물(대속제물)이 되어 신과 같은 동격(본질이 같은)인 성자(하느님의 아들)로서 그를 통해 세상에 구원이 시작되고 완성된다는 관점이다. 물론 이 기독교 사상의 핵심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 나라 이스라엘의 구속사와 더불어 신이 이 백성과 맺은 계약,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통해 드러난 신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설정이 된다.
그런데 그게 그걸 믿지 않는 이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길에서 연신 예수 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 점이다. 그들의 언어는 거의 폭언에 가까우니까! 둘째, 보다 인간학적 접근에서 바라보는 탈신화한 【인간 예수】이다. 그의 이야기에 기적과 같은 신화적 요소를 제거해 본다면 그는 인격의 완성에 이른 성인에 가깝다. 항상 억압받는 민초들 안에서 진정한 행복과 하느님을 설파하며 그들의 상처를 어루만져 준다.
그는 자신에 대해 왕으로 추대함도, 맹목적인 따름도 그리고 무엇보다 위선을 거부한다. 그가 왜? 갈릴리 호숫가에서 예루살렘으로 긴 여정을 떠났는가? 왜? 그는 죽음의 소굴로 자청해서 여정을 떠났는가? 단지 신의 계획 안에서 죽으러 간 것인가? 그것을 통해 신의 섭리를 이루어 인간을 구원했는가? 그러나 그 날로부터 21세기 지난 지금도 인간을 그렇고 그렇게 지지고 볶고 사는 이 세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영화를 보고 난 감흥은 확연히 갈릴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관객의 마음이 흔히 말하는 성령을 통해 거듭나서 더 신앙이 강해져서 세상에 열심히 예수를 전하든, 아니면 한 위대한 성인의 이야기를 통해 자기희생이라는 위해한 메시지를 알아들어 자신도 그를 닮아가든, 아니면 그냥 2000년 전 희생된 한 인간의 이야기가 신격화의 작업을 거쳐 다시 대본으로 태어난 것으로 받아들이든. 늘 이런 종교 영화를 보면서 왜? 치열한 삶의 살다간 시대의 또 다른 영웅 【간디】가 남긴 말이 떠오르는 걸까?
"당신들이 믿는 예수는 가져가고, 성경속의 예수는 두고 가시오. 나는 기독교를 존중하고 예수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은 존경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들은 말로만 숭배를 하지 예수를 닮으려고도 따라 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