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과 세바스찬
Belle et Sebastien, Belle and Sebastien, 2013
동물과의 교감을 나누는 영화는 예전부터 많았다. 특히 개와의 우정을 나누는 영화는 영화만이 나타낼 수 있는 기능적 특성을 활용하여 충분히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에 벤지, 마음이, 하치, 베토벤 등 유명한 영화 속 개이름들이 익숙하지 않은가. 애니메이션에는 더 많은 개들과의 우정이 나오고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실사영화에서는 개가 주인공일 경우 연기에 한계가 있어 간헐적으로 제작되고 있다.
간헐적으로 제작되어 볼 수 있지만 동물이 나오는 영화는 아이나 어른이나 모두 재밌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다는 점,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영화가 끝난 후 행복한 뿌듯함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동물영화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이 다행이다.
이 영화 <벨과 세바스찬>도 또한 하나의 동화처럼 행복한 마음과 꿈과 이상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영화이다. 알프스를 배경으로 소년 세바스찬과 양치기 개 벨과의 우정은 어린 동심으로 돌아가 어릴 적 뛰어놀던 뒷산에서, 마당에서 이리저리 뛰어놀던 강아지의 추억도 모두 가져다 주기 때문이다. 아파트 세대인 요즘 아이들은 잘 모를 것 같은 배경과 소재이지만 이 꿈 같은 이야기는 그리 낯설지 않게 마음 깊숙하게 들어오는 마력이 있다.
할아버지와 함께 양을 치며 살아가는 어린이 세바스찬. 어느날 마을의 양들과 마을 사람이 습격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국경을 공유한 피레네 알프스 언덕은 종종 늑대도 나타나고 고지대인만큼 동물들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바, 옆 마을에서 양을 헤친 커다란 개가 쫓겨난 상황에서 마을 사람들은 그 개가 벌인 일이라 단정하고 알프스 언덕을 뒤지며 개를 쫓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세바스찬은 드디어 개와 마주하게 되는데 커다란 덩치와는 달리 선한 눈매를 가진 하얀 개는 미쳐서 양들을 헤칠 개가 아님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착하다. 그런 개를 세바스찬은 벨이라 부르고 마을 사람들 몰래 돌보며 친구가 되어 간다. 그래도 마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벨을 찾아 죽이려 사냥총을 들고 쫓아온다.
헐리우드의 영화 공식 중 하나가 바로 어떤 어려움에서도 어린이와 동물은 죽지 않고 살아난다, 라는 것이다. 물론 종종 그 공식은 과격한 액션 영화나 SF에서 깨지곤 한다. 그래서 아무리 잘 만든 영화라고 해도 어린이와 동물이 죽으면 혹독한 비난을 받곤한다. 그런 비난을 피하려 무리수를 두더라도 어린이와 동물은 살려내는 것이 하나의 룰처럼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영화 끝까지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을 관객들은 어느 정도 마음 속에 정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벨은 죽지 않고 살 것이며 세바스찬과의 우정도 알프스를 배경으로 아름답게 계속해서 펼쳐질 것이라는 예상을 충분히 할 수 있다. 사실 미친개라는 설정은 하나의 대상을 만들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약한 양들을 지켜내지 못했다는 현실은 곧 미친 개라는 공공의 적이 필요했고 미친 개를 쫓는 것만이 그 현실을 위안할 수 있는 기재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프스 언덕은 넓고 자연은 풍부하다. 과연 미친 개 하나가 그런 일을 온통 다 저지르고 다니겠는가.
외모 때문에 피해를 보는 경우가 있다. 사람들의 선입견은 매우 중요하고 무서워서 자신의 경험과 인상, 느낌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벨은 개치곤 무척 커다른 덩치를 갖고 있다. 이것 자체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늑대보다 큰 이 덩치는 늑대를 위협할 수 있는 듬직한 우리의 친구가 될 수도 있는 가치가 있다.
잘 씻지 못해 시커먼 벨이 하얀털을 날리며 눈부시게 맑은 모습으로 화면 가득 선보였을 때 아마도 관객들은 그 아름답고 멋진 모습에 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을 것이다. 극장에서 보지 않고 다운로드 받아서 모니터로 보는 관객도 이 새로운 등장에 신데렐라가 멋진 공주가 된 모습을 보았을 때처럼 모니터를 향해 분명 감탄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벨은 그 커다른 덩치로 용기있게 마을의 양들을 늑대로부터 지켜내고 눈속에 파묻힌 사람을 찾아내며 험한 언덕에서 올바른 길을 찾아 사람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늑대에게 공격받아서 다리를 다친 의사를 집까지 데려다 주는 것은 벨이 개 이전에 하나의 사고를 가진 중요한 존재라는 것을 최고로 보여주는 멋진 장면이다. 세바스찬의 머리보다 더 큰 머리크기를 가진 세바스찬의 뇌용량은 세바스찬과 동급이거나 더 위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하지만 동물이라 말을 못해서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고 쫓겨나는 억울함은 같은 눈높이의 동심을 가진 세바스찬이 알아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세바스찬이 없어더라면 그렇게 산속에서 헤매이다 못된 짐승으로 낙인찍혀 죽을 목숨이었을 것을 인과응보라고, 착한 일을 한 결과는 결국 우정이 꽃피우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개 영화들 중에서 그 습성과 자연 속 무리를 가장 잘 표현한 영화로는 <에이트 빌로우>가 있다. 얼마전 안타깝게 타계한 잘 생긴 배우 폴 워커가 나온 영화인데 실제로 영화의 90% 이상은 8마리의 개들이 나오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개 나오는 영화의 최고로 치는 영화이다.
<벨과 세바스찬>이 <언터처블 : 1%의 우정>에 가깝다면 <에이트 빌로우>는 <얼라이브>나 <127시간>에 가깝다. 모든 생명이 다 소중하고 지구의 구성원이기에 영화에서 만나는 인간과 동물의 우정, 생과 사는 하나의 우주이며 인간 세상을 너머선 아름다운 창조의 세상이다. 이런 아름다운 영화들이 많이 나오길 동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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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영화 좋아하는 동심을 가진 분들 모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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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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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과 세바스찬>은 프랑스 유명 동화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하얀 눈이 눈부실 정도로 펼쳐진 알프스의 풍광, 그 속에서 주인에게 상처를 받고 떠돌아다니는 양치기 개와 어른들 몰래 그 개를 보살피는 6살짜리 꼬마의 이야기가 있다. 25년 이상 자연을 연구했던 니콜라스 배니어 감독은 알프스의 사계절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찬찬히 담아 스크린에 옮긴다. 아름다운 절경을 극대화 시킨 스토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전반부는 소년과 양치기 개의 이야기를 다루고, 후반부는 극 초반 배경에 불과했던 제 2차 세계대전 이야기를 다룬다. 이렇다보니 주제는 어린이 모험담에서 역사 드라마로 다소 무겁게 흘러간다. 그러나 두 주제 사이에 생긴 괴리감이 영화 속에 조화롭게 녹아든 이유는 벨과 세바스찬의 우정을 인격적인 시선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를 부연 설명하는 엔딩크레딧까지, <벨과 세바스찬>은 마음이 몽글몽글해질 수밖에 없는 영화다.
2014년 3월 13일 목요일 | 글_조은정 기자 (choeunjung@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