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1994

<중경삼림>은 내가 접한 왕가위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첫 번째 만났던 작품은 왕가위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었던 <아비정전>. 장국영의 모성애를 자극하는 슬픈 감성이 주를 이뤘던 <아비정전>. 왕가위 감독을 많이 만나보진 못했지만 왕가위 감독의 대표작 두 편을 보니 얼핏 그만의 스타일을 알게 된 것 같다.
왕가위 감독의 작품은 단 두 편만으로도 그의 스타일을 가늠할 수 있을 만큼 그만의 독특한 색채가 짙은 작가주의 감독이다. 천편일률적인 스토리가 아닌 기발한 스토리. 어딘가 슬픔의 감성이 짙게 배어있는 캐릭터. 왕가위 감독의 오른팔인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의 영상미. 1990년대 초 왕가위 감독의 작품이 크게 흥행하면서 왕가위 감독의 촬영기법이 한국에도 유행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뿌여리만큼 신비한 색채를 사용하며 핸드헬드 촬영기법으로 감각적인 영상미를 자랑한다.
그의 영화에서 영상미와 함께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바로 음악이다.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맘보 춤을 출 때 삽입했던 곡 Los Indios Tabajaras의 Maria Elena가 탁월했듯이 중경삼림에서의 음악은 두말할 것 없이 훌륭하다. Mamas&Papas의 California dreams는 한국에서 중경상림이 개봉 한 이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례적으로 해체 했던 그룹이 그룹 원 한명을 보충해서까지 한국에서 콘서트를 개최 할 만큼 그 당시 중경상림의 OST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왕가위 감독의 3개 대표작인 아비정전, 중경삼림, 화양연화 이 중 두 개를 봤으니 남은 하나도 보고 느끼고 싶다.

중경삼림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이 영화는 옴니버스 형식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가 러브 액츄얼리,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으로 지금은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20년 전인 그 당시에는 다소 낯설었던 형식이었다. 중경삼림은 두 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영화다.
이 두 에피소드의 공통점을 꼽자면, 물론 둘 다 사랑이야기다. 남자 주인공이 사랑에 상처받은 이들이며 둘 다 직업이 경찰이다. 특이하게도 이 남자 주인공들의 이름이 타인에게 불리어지지 않는다. 이름을 소개하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 누구에게도 그들의 이름이 불리어지지는 않는다. 또한 이 둘은 모두 특이한 습관들이 있다. 경찰 223은 자신의 생일에 맞춰 파인애플 통조림을 강박적으로 사 모으는 사람이고 경찰 633은 자신의 물건들과 이야기 나누는 습관이 있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두 번째 에피소드 중 선호하는 에피소드가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 대하여 열렬한 환호를 보낸다. 그 이유는 분량에서부터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에피소드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길이가 두배 이다. 두 번째 에피소드의 분량이 길다보니 더욱 몰입감이 커지는 것이 아닐까. 또한 두 번째 에피소드는 첫 번째 에피소드보다 더 친절한 배경과 캐릭터 설명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두 번째 에피소드의 분위기가 더욱 재기발랄하며 왕가위 감독 작품 속 몇 안 되는 깔끔한 결말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노랑머리 마약 밀매상인 여주인공과 경찰 223의 사랑이야기이다. 사실 상 이 둘이 만나 서로 사랑을 나눈다거나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이 있기는 커녕 둘이 같이 나온 씬 마저 5분이 될까 한다. 그럼에도 감독은 이 둘에게 사랑이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인상 깊은 씬이 첫 씬이다. 경찰 223은 정신없이 쫓기다 노랑머리 마약 밀매상과 부딪친다. 순식간에 0.1초의 찰나였지만 이 둘은 부딪쳤고 이 때 내레이션이 나온다.

“57시간 후 나는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영화는 57시간 후의 그들의 모습보다는 각자의 57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더욱 치중하여 관객에게 보여준다. 경찰 223은 자신의 생일인 5월 1일까지 유통기한인 사랑하던 여인이 좋아했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 모으기 시작한다. 그리고 5월 1일까지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린다. 그러나 그녀는 돌아오지 않는다. 그동안 모았던 수십 개의 파인애플 통조림을 한 번에 먹어치운 후 그는 자신을 기억조차 못하는 초등학교 동창에게까지 전화를 걸며 자신의 허기진 외로움을 달래려 하지만 달래지지 않아 결국 바에 간다.
그는 가장 먼저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리고 노랑머리 밀매상 그녀가 들어온다. 그렇게 둘은 만났고 그는 연신 “파인애플을 좋아하세요?”라고 말을 건네지만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 뿐이다. 항상 선글라스에 레인코트를 입고 다니는 그녀는 자기 자신을 꽁꽁 싸맨다. 이는 그녀의 내면 또한 타인에게 전혀 드러내고 싶지 않은 심리를 대변하는 것 같다. 이 후 둘은 둘만의 공간에 있지만 같은 공간에 있을 뿐 둘은 서로 각자의 시간을 보낸 후 둘은 끝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유통기한이라는 것이다. 통조림에게만 유통기한이 있는 것이 아니고 감정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진다. 사랑, 우정, 동정, 연민이란 감정에도 유통기한이 있을까. 영화를 보면서 이 감정의 유통기한이 끝나면 또 다른 감정이 시작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 아닌 의문을 품었다.

두 번 째 에피소드는 경찰 633의 이야기이다. 이 둘의 에피소드는 음식점 가게라는 같은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두 에피소드 사이에 연결감을 준다. 자신의 여자 친구를 위해 매일 샐러드를 사가는 경찰 633.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이후 블랙커피만 마시는 남자다. 오지랖 넓은 음식점 사장은 자신의 조카 아미가 어떠냐고 묻고 무심하던 그. 그러던 어느 날 경찰 633의 여자 친구가 음식점의 편지를 맡기고 그 속에는 경찰 633의 집 열쇠가 들어있었다. 그 열쇠로 아미는 제 집 마냥 경찰 633의 집을 드나들고 물건들을 하나 둘 씩 바꾼다.
아미는 캘리포니아를 막연히 꿈꾸며 California dreams라는 노래를 듣는 순수함과 엉뚱함을 지닌 여자다. 아미가 바꾼 물건들을 경찰 633은 알아채지 못 한다. 경찰 633에게는 앞서 말한 것 같이 특이한 습관이 있는데 자신의 물건과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이는 오로지 자신의 감정을 사물에게 대입하여 이야기 나눈다. 꽉 자지 않은 물수건을 보며 눈물을 흘린다는 등 자신의 이별 후 감정들을 비누, 물수건, 인형 등에게 대입 해 자신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애를 쓴다. 아미가 경찰 633의 집을 드나들던 날 중 경찰 633의 집에서 마주하게 되고 비로소 이 둘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사랑이란 시작점에서 마주하게 된다.
아미는 약속장소에 나오지 않고 그대로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일 년 뒤 이 둘은 아미가 일하던 가게 상점에서 다시 만난다. 일 년 뒤 경찰 633은 경찰이 아닌 그 음식점의 주인이 되었고 아미는 경찰 633의 전 여자친구의 직업이었던 스튜어디스가 되어 나타나고 이 둘은 또 다시 일 년 전 서있던 사랑의 시작점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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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오래 남는 영화를 보고싶은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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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김이슬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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