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야, 2013
1951년 2월 9일~2월 11일 경남 거창군 신원면에서 일어난 '거창 양민 학살사건' 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초하여 스토리를 만들었고 영화 중간에 다큐멘터리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독특한 방식으로 선보인 영화 <청야>는 거창사건의 중심지인 신원면 으로 귀농하게 된 김재수 감독의 작품이다.
<堅壁淸野(견벽청야)>벽을 튼튼히 하고 들을 깨끗이 한다. 성벽을 튼튼히 다지고 주변의 물건들을 다 거둬 버린다는 뜻이며, 전쟁용어로 흔히 쓰이는 말인데 거창사건에 투입된 11사단 9연대 3대대의 작전명이 '작전 제 5호'이고 비공식 작전명이 '견벽청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당시 작전명 속에서 따온 <청야>는 제목의 단아함 과는 달리 신원면 일대의 주민을 공비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기관총으로 집단학살하고 시체에 휘발유를 끼얹어 불태우는 진안한 행동을 하였으며, 그 후 공비 및 통비분자(通匪分子)를 처형했다고 허위보고를 올리기도 하였다.
젊은 세대가 알아야 할 아픈진실을 위해 재능 기부로 참여한 안미나, 김기방
영화 <청야>는 치매에 걸린 이노인(명계남)의 사진앨범 속 낡은 사진 한장으로부터 시작되는데, 우연히 발견한 사진속의 소녀를 찾기 위해 손녀 지윤(안미나)과 방송국 피디인 동석(김기방) 그리고 이노인은 경남 거창 으로 향하게 된다. 극중 손녀 지윤 역을 하게된 안미나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명계남)의 기억을 찾아 거창 으로의 여행중 사건의 숨은 진실을 알게되며 괴로워하고, 슬픔에 겨워 눈물을 흘리게된다. 그녀의 애절하고 구슬픈 연기는 보는이로 하여금 공감대를 형성하기에 충분하였고 거창사건의 슬프고도 가슴아픈 사연을 알리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을거라 생각한다.
배우 안미나는 대 선배들과의 연기라 다소 부담이 될듯도 한데 그들과 호흡을 같이하였고, 어느 누구도 특별하게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며, 영화의 진실성을 강조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인듯 하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명계남)때문에 찾아나선 지윤은 다른 배역들에 비해 힘겨운 장면도 많았고, 복잡한 감정을 연출해야 하는등 그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섬세한 감정연기 까지도 훌륭하게 표현해주었다.
배우 김기방은 <잠복근무>, <과속스캔들>, '뿌리깊은 나무' 등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극중의 존재감을 보여왔고 그와는 전혀 어울릴거 같지않는 조인성과 고교시절 짝꿍으로 지낼만큼 친분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번 영화 <청야>가 김기방에게는 첫 주연작 이었으며 실력파 선배 연기자들과 연기호흡을 맞추었고, 거기에 재능기부까지 하면서 영화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극 중 차동석PD는 다큐멘터리 프로듀서로 거창 사건 다큐를 제작하지만 편성취소를 당하게 되고, 이노인(명계남)과 지윤(안미나)이 거창 사건과 깊은 관계가 있음을 직감한 동석은 이들을 이용하여 거창 사건에 관련된 자료를 얻으려 한다. 영화 속 동석은 역사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인물로 그저 자신의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이노인, 지윤과 함께 하게되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쉽게 풀어나가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동네 이장이 메가폰을 잡고 세상에 외친다!
<청야>를 연출하게 된 김재수 감독은 영화 <애란>에서 조연출, <깜보>에서 조감독. 그리고 <천국의 셋방>, <클럽 버터플라이>에서는 연출을 했었고 <청야>는 귀농을 하게되면서 작품을 기획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귀농을 꿈꿔왔던 김재수 감독은 2009년 집을 구하다가 마련한 곳이 사건의 중심지인 거창 신원면 이었고,이사를 한 날이 6.25전쟁이 발발한 그날이었으며 거창사건은 운명처럼 그에게 다가온듯하다.거창 사건에 대해서는 1980년 소설가 김원일 선생의<겨울골짜기>를 통해서 알게됬지만 그당시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는데 신원면으로 이사하게 된후 사건의 진실을 알게되고 그는 예전에 읽었던 <겨울골짜기>를 다시 꺼내 읽으며 사건의 현장들을 돌아다녀 보게되었다고 한다.
김재수 감독은 벼농사와 고추농사를 지으며 신원면 수동마을 이장을 맡아 지내게 되었고 틈틈이 기획안을 만드는데 만족하던 중 거창군에서 군비1억2천만원 을 지원해준다는 약속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영화 제작에 나설 수 있었고, 그곳의 기업과 기관단체가 지원에 나서면서 영화 제작을 마무리 하게되었다.열악한 제작환경 때문 이었는지 극의 전개과정이 다소 매끄럽지 못하게 진행되기도 했지만 부족한 부분을 다큐멘터리 와 애니메이션 을 통해서 충분히 전달할수 있었다.
단체의 후원으로 총 2억2천만원의 예산으로 제작된<청야>에 출연한 중견배우들은 오랜만에 영화에 돌아온 감독의 열정과 취지에 공감하게되며 재능기부로 조건없이 참여하게 되었고 체세대스타 안미나, 김기방, 백승현도 재능기부에 동참하게 되면서 젊은 세대들의 연기력으로 영화에 신선함을 불어넣어 주었다.
'▲ 거창양민학살 추모공원을 찾아 헌화하고 참배하는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
'거창 양민학살 사건'에 대하여 보상이 아닌 배상을!
남과북의 이념분쟁으로 인한 한국전쟁은 수많은 민간인들 학살하게 되었는데 대표적인 사건들로는 '제주 4.3사건', '여수 순천사건', '노근리 양민학살사건', '거창 양민학살사건', '산청 함양 양민 학살사건'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정도로 많은 사건으로 인해 양민들은 희생되었고 그들의 아픔과 피해는 고스란히 후손들에게도 대물림되며 지금도 상처받고 살아가고 있다.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자행한 육군 11사단 9연대는 1951년 '견벽청야'라는 작전에 따라 공비와 내통했다는 이유로 경남 거창군 신원면 지역의 양민 을 마을 뒤 산골짜기에서 학살하게 된다. 당시 이사건이 거론되자 국회조사단이 현지에 파견되지만 이승만 정권은 계엄 민사부장<김종원>을 시켜 국회조사단 에게 기총소사를 퍼부으며 그들의 조사자체를 무산시키려고 하였다.그러나 들끓는 여론에 밀려 결국은 관계자 3명을 사형등 사법조치 하면서 마무리 지으려 했으나, 몇 개월 후 이들은 모두 사면 받고 복권하게 되었다.
박정희 군사정부 시절에는 '거창 양민학살 사건'의 주민성분 조사에 참여했던 신원면장 박영복씨를 타살하고 유족과 유족회 간부18명을 반국가 단체 조직 혐의로 구속하기도 하였다. 유족들은 1988년이 되어서야 희생자 위령 궐기대회를 할수있었고 위령비도 세우게 되며 1996년에는 국회에서 '명예회복에 대한 특별조치법'을 통과 시켰다.
'▲ 거창사건 추모공원 내부전경'
특별조치법 제정과 보상 관련 논란
2004년 3월 실질적인 보상과 관련된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됐지만 사건이 계류중이고 6.25전쟁과 관련 배상법안이 통과하게 되면 국가재정에 큰 부담이 된다는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하게된다.이 법안은 17대,18대 국회에서도 제출됐다가 임기만료 폐기되게 되고 2012년 출범한 제 19대 국회에서 통과하게 될지는 아직도 알수가 없다.
한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창원지법 진주지원은"국가는 유족들에게 40만원씩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으나,항소심에서 부산고법은 국가가 배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잊혀저가는 거창 사건에 대하여 영화를 통해 다시금 회상하고 생각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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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사건'에 대해 궁금하신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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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KANG ME JU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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