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래티나 데이터>
★★☆ 용두사미로 끝난 일본판 ‘마이너리티 리포트’
2017년 일본. 천재 과학자 카구라(니노미야 카즈나리 분)는 범인을 완벽하게 검거할 목적으로 'DNA 수사 시스템'을 개발한다. 그가 개발한 DNA 수사 시스템은 DNA 속 유전 정보에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는 명제에서 출발한다. 유전 정보만으로 범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현장을 직접 누비며 범인을 잡는 형사 아사마 레이지(토요카와 에츠시 분)는 이 시스템을 신뢰하지 않는다. 더욱이 그는 카구라가 시스템을 위해서 불법으로 국민들의 유전자 샘플을 채취하고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카구라의 동료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카구라는 현장에서 발견된 유전자 샘플을 DNA 수사 시스템으로 분석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시스템은 카구라를 범인으로 지목한다. 결과에 놀란 카구라는 서둘러 도망치고, 아사마 레이지 형사는 그의 뒤를 쫓는다.
12일 개봉한 일본 영화 <플래티나 데이터>는 톰 크루즈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떠오르게 한다. 범인을 검거할 목적으로 제작된 시스템이 주인공을 범인으로 특정 짓고, 주인공은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문제들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 두 영화의 공통적인 콘셉트다. 두 영화 모두 원톱 주연의 묵직한 존재감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데, 단순히 비교하자면 <플래티나 데이터>의 카구라(니노미야 카즈나리 분)가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 앤더튼(톰 크루즈 분)보다 존재감이 약하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배우의 연기력 문제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인물의 설정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톰 크루즈의 영화라도 불러도 무방할 만큼 영화 전체의 무게 중심이 그에게 쏠려있다. 톰 크루즈가 주연한 작품 대부분이 그러한데, 이 영화 역시 톰 크루즈가 얼마나 돋보이느냐가 영화의 오락성과 완성도에 영향을 미친다. 반면 <플래티나 데이터>의 카구라는 주변의 지시와 도움이 익숙한 인물이다. 따라서 인물 자체가 나약하게 그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플래티나 데이터>는 카구라의 부족한 존재감을 채우기 위해 주변 인물을 등장시켰다. DNA 수사 시스템에 대한 이견으로 부딪히다 후반에서는 카구라의 조력자로 변신하는 아시마 레이지 형사, 카구라의 과거와 사건의 진실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하는 카구라의 주치의 미나카미 리에코(스즈키 호나미 분), 천재 수학자 타테시나 사키(미즈하라 키코 분) 등을 배치했다. 영화는 이들 외에도 다양한 인물에게 정량의 임무를 부여함으로써 주인공 카구라와 이야기를 돕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감독의 전략은 절반의 성공에 그친다. 다양한 인물의 등장이 주인공과 이야기를 보조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음에도, 워낙 이야기 자체가 장황하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감독 역시 이야기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형사 아시마 레이지를 해설자로 섭외한다. 그의 해설은 영화 중반의 지루해진 흐름을 다잡는 데 적절한 효과를 발휘하지만, 문제는 그 해설이 점차 과용된다는 데 있다. 몇몇 의구심을 해소하는데 적절히 사용됐던 그의 해설은 갈수록 관객의 상상을 방해하고, 막바지에 다다라서는 영화가 담은 심오한 철학을 강연한다. 결국 영화는 다시 지루해진다.
<플래티나 데이터>가 인상 깊은 블록버스터 영화가 되지 못한 데에는 크게 세 가지 원인이 있다. 첫 번째는 기시감이다. <플래티나 데이터>는 이야기의 콘셉트와 구조가 비슷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극복하지 못했다. 물론 이것은 후자인 <플래티나 데이터>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지적일 수 있지만, 굳이 <마이너리티 리포트>와의 오버랩을 찾지 않더라도 영화 전체에서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의 클리셰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한 번쯤 본 듯한 장면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참신함을 찾기는 어렵다.
두 번째는 이야기의 과잉이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가 어떤 이야기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꼴이 됐다. 처음에는 카구라와 아사마 형사를 대결구도에 놓고 '인간이 완벽하지 않듯, 인간이 만든 시스템 역시 완벽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한 것 같았는데, 뒤에 가서는 시스템이 왜 완벽해지면 안 되는지에 대해 설파한다. 여기에는 특권 계층의 권력 수호 욕망이 끼어든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시스템이 사실은 특권 계층의 죄를 감추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은 국가를 위해서 만든 법이나 정책이 사실은 이것을 만든 사람들만을 위해 쓰일 수 있다는 사회적 메시지로 읽힌다. 의미는 훌륭했지만, '키 메시지' 외에 인물의 과거, 로맨스, 사건의 진실 등이 얽히고설켜 교통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세 번째는 이야기의 속도 조절 실패다. 초반에 속도감 있게 이야기를 밀어붙이며 사건을 넓게 펼쳐 놓을 때까지는 충분히 흥미로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메인 플롯에 서브플롯이 따라 붙고, 주변 캐릭터의 드라마가 끼어들면서 이야기가 가다 서기를 반복했다. 속도감을 바짝 느낄만한 액션신이 없는 것도 아쉽다. 두 번 정도 등장하는 추적신은 예사 그림처럼 익숙해 쾌감을 느낄 수 없다.
관대하게 평가했을 때, <플래니타 데이터>는 적당한 완성도와 재미를 갖춘 작품이다. 소재 자체가 흥미롭고, 배우들의 연기도 썩 괜찮은데다 확실한 메시지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대한 관객의 평가 기준이 다른 장르에 비해 엄격하기 때문이다. 최소한 블록버스터 영화라면 거대 자본이 느껴질 만한 안구 정화용(?) 장면이 필수다. 그러나 <플래티나 데이터>에서는 그런 장면이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DNA 수사 시스템 세트 정도가 블록버스터 느낌을 내고 있을 뿐이다. 관객의 기대치는 이런 데서 무너지는데, 영화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