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50>은 친구를 생각나게 하는 영화였습니다. 중학교 시절에 다리에 큰 병이 걸려서 수술을 받고 이년 동안이나 병원에서 지냈고 결국 중학교는 검정고시를 쳐서 고등학교에 들어온 친구였습니다. 이 친구는 항상 밝고 다른 친구들을 잘 이끌고 반장선거에서도 나를 이기고 인기투표와 같던 반장을 차지하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이 친구는 초등학교때 까지만 해도 총망받는 축구 선수를 꿈꾸고 있었고 꼭 축구를 하지 않더라도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이 친구가 이렇게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을 가지기 까지 얼마나 멘탈이 상하고 힘들어 했을지 상상이 안되고 어느정도 공감하고 어느정도는 방관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참 이 친구가 많이 생각나서 영화를 다 보고나서 핸드폰 주소록을 뒤적여서 그 친구에게 이 영화보니까 너 생각이 났다고 바로 톡을 보냈습니다. 알고보니까 이 영화를 추천해준 친구가 바로 그 친구 더군요.
영화 내용 처럼 암이 걸린 자신이 죽을지도 모른다는 확률 게임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좀처럼 별로 없습니다. 그저 확률 가운데에서서 슬래쉬가 되어 한쪽의 뱀과 악마와 좀비들이 있는 50을 보느냐,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빛이 있는 50을 보느냐의 시각을 달리할 수 밖에 없는 정도의 힘이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이차이가 얼마나 사람에게 큰 힘이 되는지 하나의 시각차이가 세상을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되는지는 이 차이를 경험해 본 사람을은 알 것 입니다.
<영화 내용>
영화는 간단한 내용에서 현실감있는 연기로 다가오는 작품입니다. 주인공인 아담(조셉 고든 레빗)은 여자친구도 있고 잡지회사에 다니는 건실한 청년입니다. 그저 그런 평번함 일상을 누리고 즐기며 살아가는 도중 허리의 통증이 심해져 병원을 찾지만 그곳에서 너무나도 무책임하고 인간미 없는 의사에게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습니다. 이 장면에서 의사의 태도에서 혐오감을 느꼈는데 암 선고를 받은 아담이 의사에게 감정적인 호소를 하자 외과의사인지 담당의사인지 아무튼 의사는 좋은 정신과의사가 있다며 자기의 관할이 아니라고 얘기합니다. 암을 선고받은 환자들을 수십명 상대하는 의사들에게는 어쩌면 잡지회사에서 원고를 기제하는 아담과 같은 그저 일상의 한 부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느꼈지만 의사니까 잡지회사 직원이 아닌 의사이기 때문에 그정도의 덕목은 현실에서는 갖춰줘야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아무튼 암을 선고받은 아담은 담담하게 주위사람들에게 자신의 암이야기를 전합니다. 전하는 과정이나 영화를 그려내는 방식에서 참 잘 표현했구나 주제가 어둡지만 해학적으로 잘그려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말의 순간에도 해학을 찾는다면 어딘가에는 해학은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믿고있는 나에게 공감을 주는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친구에게 자신의 암 선고를 얘기하지만 항상 낙천적이고 여자 말고는 별로 생각이 없어보이는 친구인 카일은 생과사의 확률이 50대50이라는 소리를 듣고 절망해있던 친구에게 뭐 괜찮네 라는 소리를 해줍니다. 솔직히 자기 일이 아닐때는 무책임하게 무심코 던질수 있는 높아보이는 확률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각이 절망의 50쪽으로 향해있는 아담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는 못합니다.
사실 영화를 볼 때 영화 후반부까지도 장진 감독의 <아는 여자>처럼 코믹적으로 암을 풀기도 하고 반드시 아담이 암에 결려야지만 영화의 주제를 전달해주는 역할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아담의 암은 거짓이라는 반전이 있을거라고 기대했습니다. 이유는 아담의 희귀병인 암은 이름도 길고 어려운 암같지도 않은 병이고, 자신이 살 확률을 알아본것도 의사가 얘기해준 확률이 아닌 인터넷에서 보니까 그렇다더라(이게 제일 의심이 되었다.)이렇게 인지했기 때문에 너무나도 터무니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기존의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착각했던 사람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솔직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사랑을 반성하며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는 과정을 밟는 주인공을 보면서 <아는 여자>의 정재영과 많이 닮아있다고 느꼈습니다.
기존의 사랑이 었던 아담의 집에 엊혀살던 레이첼이 바람을 핀다는 사실을 카일이 알려주고, 냉정하게 거절하지 못했던 지난 날의 자신과 달리 죽음을 앞둔 아담은 냉정하게 레이첼을 내쳐버립니다. 그리고 인간미 없던 의사에게 소개 받은 정신과의사인 케이티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 둘이서 마주 할 때부터 정신과의사가 이렇게 예쁜사람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아 새로운 사랑이 시작 되는 구나라는 쉬운 예측이 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세번째손님인 아담을 다루는 케이티는 참 어수룩했고 자신의 업무의 무게감을 느끼지 못한채 그저 연구의 일부라고 여기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환자가 정신적으로 힘들어 할 때 글로만 배웠떤 터치(Touch)를 하지만 너무도 어색해서 아담은 거부감이 든다고 얘기합니다. 아담은 죽음이라는 상대와 처음으로 먀주하고 었었고, 케이티는 글이 아닌 사람을 대하고 마주하는 실질적인 일로 들어가는 초년생으로서의 감정으로 서로를 대합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암에 걸린 다음의 삶은 변환점을 맞게 됩니다. 대부분의 암 환자들은 비관을 하고, 삶의 의지가 꺽이게 되고 고통으로 삶을 포기하게 되는 데요. 아담에게는 카일이라는 친구가 있습니다. 비록 시도 때도 없이 친구의 암을 무기로 여성들의 동정심을 사서 꼬실 생각을 하는 바람둥이 친구더라도 말이다. 너무 직선적이고 꾸밈이 없어 우리나라 같으면 큰 봉변을 당할 가능성도 있는 친구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친구 덕분에 아담은 웃을 수 있었고 억지로라도 여자들을 대할 때 공감할 수 없는 코미디가 아니라 자신의 얘기를 하고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얘기해서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렇듯 무심하게 현실감을 드러내면서 진행합니다. 여느 영화라면 암에 걸린 주인공은 부잣집 도련님이라서 버킷 리스트를 작성해서 스카이 다이빙을하고 여러 여자들과 잠자리도 같이하고 펑펑 돈을 쓰면서 범죄도 저지르는 어떻게 보면 현실감 없는 얘기들을 해버립니다. 물론 영화라는 매체가 그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면서 암환자들에게 새로운 욕망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수행할 수 도 있습니다.(여기서 말하는 영화는 <버킷 리스트>, <노킹 온 헤븐스 도어>)

그러나 50대 50은 평범한 일상을 사는 주인공으로서 잠시의 일탈을 꿈꿔서 마리화나를 하고 친구랑 암을 핑계로 여자들이나 꼬시러 다니고 사실은 죽는것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24시간이라는 시간은 어떻게보면 참 보내야만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영화내내 의지하는 상징처럼 존재했던 운전이라는 소재를 도전하는 소소한 일탈아닌 독립을 향해 달립니다. 운전왜 하지 않냐는 케이티의 질문에 사망 확률이 너무 높아서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아담. 그러나 사망률을 보기보다 평소에 느껴지는 편안함이나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들을 보지 못한채 부정적이라는 시각에 갇혀서 운전을 하지 않은 주인공은 마지막으로 죽기전에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도전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설정들로 인해 다소 비 현실적이다라고 말할수도 있다고 보입니다. 엄청나게 많은 치료비로 인한 경제적인 문제는 물론이고, 암과 함께 수반이 되는 극심한 고통으로 인해 정신이 피폐 해지는 문제로 다른 것을 돌아보기 힘들어지는 것이 현실일겁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점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이 있을수 있다"라는 점과 "암에 걸려도 보통 사람들과 같이 살수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면 감동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함께 하실수 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앞서 언급을 했지만 영화는 현실적인 고통을 보여주어 주인공에게 연민의 눈길를 보내는 대신,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웃음을 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어 암환자의 고통과는 다소 멀어지는 경향이 있는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