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위대하게>의 장철수 감독이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 출신이라는 것은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기덕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작품은 <사마리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해안선> 인데 세 편 모두 김기덕 영화 중에서 호평을 받은 작품들이다. 중간에 로맨스 영화 <신부 수업>이란 영화의 조감독도 했지만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이라는 하드코어적인 스릴러를 보면 낫으로 응징하고 배 안에서의 피비린내 나는 장면에서 김기덕 감독의 펄펄 살아움직이는 <피에타>의 공장 골목이 저절로 떠오른다.
그리고 이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웹툰 원작의 수작이라는 데에서 그간의 하드코어를 지우는 작업을 했나? 하는 의문이 들게끔 영화는 웹툰 등장 인물에 충실하고 화면 구성도 정교하게 들어맞는다. 이미 기본 원작이 탄탄하기에 이제 들여다볼 것은 원작의 인물을 어떻게 설정하는가, 하는 부담이 클 것인데 영화는 아주 잘, 그것도 마치 영화가 원작이고 웹툰이 후속 메이킹 버전인 것처럼 보일 만큼 매칭이 잘 된다.

‘바보’라는 존재
원류환(김수현) 2만대 1의 경쟁을 뚫고 남파되어 간첩활동을 하게 된 북한 남파특수공작 5446부대의 엘리트. 하지만 남한에서의 활동 역할을 달동네 바보. 동네에 하나씩은 있다는, 동네의 길잡이이자 동네의 마스코트 바보. 바보는 동네 사람들에게 크나큰 해를 끼치지도 않고 그저 자신만의 세상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가. 동네 바보가 지나가면 불러서 같이 밥을 먹이거나 농사일도 시키면서 참을 주었다.
참으로 막걸리를 먹은 바보는 쉽게 취해서 고추를 내놓고 마을 중앙 느티나무 평상에서 잠을 자다가 동네 어르신에게 빗자루로 두들겨 맞거나 동네 사람들 화풀이 대상으로 괜히 얻어맞기도 했다. 그래도 바보는 웃으면서 다음날 어슬렁 거리며 동네를 돌아다니고 돌팔매를 하는 아이들과 어울려 냇가에서 고기도 잡고 무거운 나무나 바위를 옮겨주기도 했다.
하지만 만약 동네 바보가 북한에서 내려온, 남파 간첩이라면, 그 명령 또한 우습지만 그 명령대로 움직이는 원류환의 모습은 ‘간첩’이라는 직업군의 특수성에 비추어볼 때 바보 역할은 하나의 ‘전설’로 가는 길임을 깨닫게 된다.

‘바보의 부모’라는 존재
바보가 된다는 것은 위에 말한 바 대로 자기만의 세상에서 산다는 것. 원류환의 세상은 오직 어머니의 세상이며 어머니에게 가기 위한 길이다. 바보를 낳은 어머니, 그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본 적 있는가. 동네가 모두 키우지만 동네가 모두 미워하거나 귀찮아 한다. 하지만 그 동네에는 분명 바보를 낳은 부모가 있고 부모의 가슴은 바보가 죽을 때에야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부모는 참척을 보는 슬픔을 겪기 전 먼저 죽는 것이 낫지만 바보의 부모는 참척을 보아야 못내 자신의 생을 마감할 수 있다. 부모마저 떠나버린 바보의 인생은 비루하고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바보도 부모가 있으면 적어도 굶지는 않는다.
항상 드럽게 옷을 입고 더럽게 하루를 지내겠지만 빨래를 해줄 부모가 있다면 다시 옷을 갈아입을 수 있고 바보라고 해도 생일이 있기에 그 생일을 기억해 미역국을 차려주는 부모의 덕분에 매년 한 술 깨끗한 생일상을 받아 먹을 수도 있다.
부모가 없을 때 바보의 부모는 그 동네 사람이다.
어린아이도 바보의 부모가 되고 심지어 동네 강아지도 자신의 밥그릇을 바보에게 빼앗기며 부모가 된다. 개밥을 줏어먹으며 사는 동네 바보를 불러서 개밥만은 뺏어먹지 말라고 호통치며 한 상 밥을 차려 내주는 동네 이장 할아버지의 모습을 어느 영화에서 본 기억이 있다. 바보의 부모는 그렇게 바보의 모든 세상이며 하늘이며 마지막 남은 세상과의 끈이다.
바보 원류환의 끈
당에서 내려온 명령 - '자결하라'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자결인가. 그토록 어머니만을 생각한 원류환은 세상과의 끈을 끊으라는 당의 명령을 받을 수가 없다. 동네 바보가 진정 바보라고 해도 북에 있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결코 바보가 아니게 하는, 바보일 수 없는 최고의 이유이지 않는가. 하지만 당에서 잘 보살펴줄 것이라 믿은 어머니가 수용소 갇혀있다는 건 더 이상 바보일 수 없는 이유가 되고 바보로 있을 이유가 없다.
동네 사람들이 키운 바보는 바보이기 이전에 동네 주민이고 대한민국의 국민이며 남북한의 동포이다. 자결하라, 명령한 당은 더 이상 당이 아니고 바보를 바보로 생각하지 않은 배신의 존재이다. 따라서 이제 바보를 벗어난 바보의 선택은 한가지. 지금까지의 바보가 어떻게 바보가 아니게 되는지의 과정을 보여주며 바보의 선택이 얼마나 강력한지 알게 하는 것이다.

바보와 간첩
남파된 간첩의 활동상을 보면 간첩이란 남한에서 활동하는 극악한 바보라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는 남한에서의 생활고 때문에 간첩이라기 보다는 고단한 한국인으로 살아갈 뿐인 <간첩>(2012)도 있다. 잘 훈련된 남파공작원도 당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배신자 처분을 받는 간첩도 있었다. <의형제>(2010). 좀더 멀리 1999년작 <간첩 리철진>을 보자. 생긴 것도 바보 같은 리철진은 택시 강도단에게 북에서 가지고 온 가방을 털리고 빈털터리가 되어 남한에서의 고난을 예고한다. 가져온 것을 모두 강도에게 빼앗겨 버린 대남 공작부 요원이라니! 하나같이 바보가 되는 북한 간첩들의 공통점은 남한에서의 캐릭터가 어떻게 그렇게 어린아이가 되는 걸까?
북한과 다른 경제환경, 낯선 문화 환경은 엘리트 공작 요원이 쉽게 바보가 되는 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그 바보가 남한에 적응하고 남한 사람과 똑같이 되는 날 더 이상 바보가 아니게 된다. 원류환의 탈바보 과정은 그래서 역동적이고 끝내 가슴 속 감동을 남겨주는 정신 차린 바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감상하는 여러가지 방법중에서 ‘바보’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것은 바보가 바보가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언제쯤 번데기가 나방이 될까?를 생가하는 기대감에서이다.
그 기대감이 과연 충족될지는 실제 관람을 통해 알아볼 일이다.
 |
|
 |
김수현 팬
그리고 잘 버무려진 코미디와 액션과 드라마를 제대로 보고 싶은 관객 |
|
|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
개성 넘치는 캐릭터를 강조한 에피소드와 최정예 엘리트 요원들의 화려한 액션.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내세운 이 두 볼거리는 영화의 러닝타임을 빽빽하게 메운다. 단발적이지만 웃음은 끊이지 않고, 상당 수준의 잘 빠진 액션 또한 가득하다. 하지만 마냥 만족할 수만은 없다. 최정예 요원과 동네 바보(가수지망생, 얌전한 학생)의 극단을 넘나들지만 캐릭터들은 각각의 특성을 드러낼 때 그 반전의 매력을 담보하지 못하고 오직 극단의 매력을 표출하는데 그치고 만다. 코미디, 유사 가족 드라마, 동료애를 가장한 로맨스, 액션 등이 제각각의 목표를 향해 돌진하고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만 점철되지 못하고 과잉으로 귀결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무언가의 부재. 장르의 쾌감뿐만 아니라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로 인해 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던 장철수 감독의 전작을 떠올려보면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2013년 5월 31일 금요일 | 글_서정환 기자 (ppalma@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