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을 죽인 사람은 우리 반에 있습니다'
영화 <고백>의 원작은 일본의 추리작가 미나토 가나에의 동명소설 <고백>이다. 작가의 데뷔작으로, 출간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또한 영화화된 <고백>또한 원작의 음습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는 호평을 받는다.아직도 일본 영화는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지나치게 단조롭거나 야단스레 비현실적이라는 선입견이 남아있는 모양이다. 하긴, 특정한 목적이 없는 한 취향이 아닌 영화를 보고 있는 건 고문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고백>만큼은 원작의 탄탄함을 바탕으로 감독의 뛰어난 연출이 더해져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영화다.
다만 2차 제작된 영상물의 경우, 짧은 킬링타임 안에 많은 내용을 담아내야 하기에 요약되는 장면이 많다. 그러나 특히 소설의 경우 불필요한 장면은 존재하지 않기에 결과적으로 관객이 등장인물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심리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 영화 <고백>의 경우도 원작소설이 다소 특이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기에 원작을 보지 않은 관객의 경우에 허점이생길 수 있다. 이런 경우 이해를 돕는 팁을 한 가지 제안하자면, 다수의 인물 중 가장 중심인물이 되는 주인공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라고 하고 싶다. <고백>에서는 중학교 여교사이며 딸을 잃고 복수의 화신이 되는 ‘유코’가 되겠다. 제3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철저히 주인공에게 감정을 이입해라. 그러면 적어도 시시각각 바뀌는 시점에 휘둘리다 결말도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다.

① 모리구치 유코
그녀는 전형적인 ‘이유 있는 복수’의 주인공이다. 그녀에게 딸 마나미는 두 번 다시 가질 수 없고,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딸이다. 그녀는 범인 A,B가 어떤 아이들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는다. 용서도 할 수 없다. 내 딸을 죽인 사람이 우리 반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는 유코의 목소리는 담담하다. 그래서 더 깊은 분노가 느껴지고, 더 무섭다. 유코가 딸을 잃은 슬픔을 이겨낸 것은 아니다. 다만 슬픔을 잊어버릴 정도로 분노가 큰 것이다.
② 와타나베 슈야
“내가 한 일이라고 떠벌려도 좋아.” 카멜레온 같은 인물이다. 철없는 치기로 잘못된 선택을 한 아이,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천재, 엄마를 그리워하는 어린 소년. 특정한 이미지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연을 가졌다. 칭찬받고 싶었을 뿐이라며 시무룩하게 이야기하다가도 제 기준에 어긋나면 가차없이 돌변한다. 그에게는 욕망이 있다.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망. 그냥 아들이 아니라 훌륭한 아들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하지만 슈야는 어린 마음에 미처 모르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아들이란 굳이 남들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사랑스럽다는 걸 말이다.

③ 미즈키
극중 철저히 관찰자의 입장에 있는 인물이다. 그녀는 자기 안에 어두운 면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 어둠을 바깥으로 드러낼 용기는 없다. 다만 그 어두움을 강하게 내뿜는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를 투영한다. 거기서 대리만족을 얻는 미즈키는 어떻게 보면 가장 평범하고 현실적인 인물이다. 흥미와 동경은 있지만, 당사자가 되기에는 부족한. 좋게 말하면 이성적이고 나쁘게 표현하면 용기가 없다. 그런데 자신이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건의 중심인물이 되어 있고, 고수하던 제3자의 자리에서 벗어나게 된다. 하지만 역할이 바뀌었음에도 내면은 그대로다.
④ 시모무라 유카
말하자면 천상 여자. 자식을 끔찍이 생각하고 아끼는 엄마. 집안에서도 항상 우아한 모습을 유지하고, 차와 쿠키를 굽는 여자다운 여자. 그래서 자기가 계획한 이상적인 가족이 무너지는 걸 견디지 못한다. 그녀는 언뜻 피해자처럼 보이지만 가해자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녀는 자기의 욕심을 자식에게 강요했다. 자상하게 웃으며 용기를 주지만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갈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에게 부담이 될 뿐이다. 부모님의 기대치에 부응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게 만든다. 그녀는 분명 사건의 희생자지만 딱히 동정심을 들지 않는다. 희망이 있을 때는 괜찮다고 위로하며 방관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자포자기. 나약하고 무책임하다. 그녀의 나약함은 복수의 화신이 된 유코와 대비되어 더 도드라지고 만다.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려낸 연출력이 뛰어나고, 지루함이 덜하며 심리묘사가 효과적인 영화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도 여운이 남는다. 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어두운 색채가 아쉽다. 몇몇 장면에만 명암대비를 크게 했더라면 그 차가운 분위기가 더 강조되지 않았을까 싶다. 오랫동안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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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물을 좋아하시는 분들
원작소설 <고백>을 재미있게 읽으신 분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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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MINGKI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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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추리소설 <고백>은 아이를 잃게 된 미혼모 선생 유코가 학생들이 모인 교실의 종업식 자리에서 밝히는 충격적 고백을 통해 시작되는 이야기다. 독백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일인칭 시점의 서술로 일관되는 소설의 구어체는 유코의 시점에서 출발해서 그녀의 고백 속 사건과 관련된 세 명의 학생과 한 명의 학부모의 시점을 갈아탄 뒤, 다시 유코의 시점으로 갈무리된다. 충격적인 진실을 담고 있는 내용에 비해 비교적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는 소설의 화법은 사건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이전에 이성적으로 이해하고 해부하도록 유도한다. 동시에 단지 교훈적인 메시지에 접근하기 보다는 복수극이라는 장르적 목적에 충실한 결말이 인상적인 작품이다.나카시마 테츠야의 <고백>은 원작과 마찬가지로 다섯 인물의 시점을 통해 사건의 양상을 중계하며 결말부를 제외하면 내러티브의 흐름 또한 동일하다. 하지만 유려한 이미지와 이펙트가 강한 락 넘버로 치장된 영화는 건조한 톤의 문체로 일관된 원작과 다른 범위의 감상적 접근을 유도한다. 영화는 보다 인위적인 연출적 과장이 두드러지는 방식으로 완성됐다. 미끈하게 정돈된 이미지가 유려하게 흐르는 <고백>의 영상은 유코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진실에 다다라 비로소 그것이 이 영화의 분위기와 이질적인 포장에 가까운 결과물이자 위장에 가까운 고의적 연출이라는 진실에 접근한다. 활기찬 교실의 풍경 밑바닥에 끔찍한 진실이 침전돼 있다는 사실은 곧 그 교실의 안팎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병리적 현상으로 이어지고, 그 모든 과정은 세련된 영상으로 포장된다. 이는 일종의 위장이다. 진실을 폭탄처럼 안고 있는 아이들은 그 불안감 속에 스스로 잠식되고 도피하듯 공격성을 발휘하다 이내 쉽게 폭발의 위협에 꺾이고 만다. 이는 개인주의의 확산과 극단적인 무관심, 공격적인 보호 본능과 충동적인 공격성 등, 다양한 병리 현상을 겪고 있는 현대 일본 사회의 평온한 외형에 대한 은유적인 진단에 가깝다. 관심의 결여가 만들어낸 작은 괴물들이 자라서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고 삶을 유린한 뒤, 사회 전체에 거대한 해악의 룰을 완성한다. <고백>은 이 모든 현대 사회의 병리 현상을 한 학급에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압축하고 확대해나간다. 그리고 그 끔찍한 충격의 강도를 놀랍도록 생생한 현실감으로 구현해낸다. 종종 인위적으로 조장된 위악적인 영상이 감상의 흐름을 막아서는 경우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 냉소적인 영화는 결국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에 접근하는데 성공했다 말해도 좋은 결과물이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부조리의 지옥 속에서 자란 아이들은 그 기준조차 깨닫지 못한 악마로 길들여지고, 또 다른 지옥을 함께 만들어간다. <고백>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어느 누구라도 쉽게 지나칠 수 없을, 동시에 결코 낯설지 않은, 소름 끼치는 경고이자 진단이다. 당신의 아이는 안전한가? 그 전에 당신은 안전한 사람인가? 스스로 장담할 수 있는가? 괴물은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그 괴물은 결국 당신의 무관심까지 집어삼킬 게다.
2011년 4월 1일 금요일 | 글_민용준 (mingun@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