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리뷰는 영화 <향수>입니다.
톰 티크베어 감독은 독일감독으로써 이 감독의 영화는 주로 한국에서
개봉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향수는 한국에서 개봉되었습니다.
그래서 집에서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향수란 영화에 대해서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레이션으로 영화는 시작합니다.
그의 이름은 장 밥티스트 그루누이입니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 잊혀졌는데, 그의 역량이 발휘된 분야가
역사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냄새’ 이기 때문이지요.
18세기 프랑스 악취가 진동하는 세상에서 가장 지독하다는 생선 시장에서 그는
하층민으로 태어나서 부모 조차 쓰레기더미에 버려 불쌍하다는 표현조차
어울린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하층민들의 악취는 사람들이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사람답게 대접받지 못하는 냄새이며, 이러한 냄새를 지우고 싶은 하층민들에게
향수를 만든 장 밥티스트는 천민에게 결국 숭배를 받는 절대자로 등극합니다.
하지만 그는 절대로 절대자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자신이 천대받았던
것을 생각하여, 다시는 자신이 천대받지 않고
깨끗한 사람=악취가 나지 않는 사람으로 살고 싶을 뿐 이였습니다.
그는 태어났을때 부터 사람으로 인정받지를 못합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인 냄새를 맡는다는 것과
향기를 만드는 것으로 그는 그의 신분을 뛰어넘습니다.
그는 고아원에 팔리게 되고 별다른 아이들과 다름없이 7프랑에 팔리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사물의 고유한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고유한 냄새를 원했습니다. 사람은 사람마다 각자의 체취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좋은 냄새를 가지고 있고 어떤 사람들은 악취를 풍기기도 합니다.
장 바티스트는 도시로 가게 된 날, 앞으로 자신의 일생을 바꿀 사건이 발생합니다.
바로 자신의 코를 매혹시킨 한 여자죠. 그리고 그는 결국 그 여자를 죽이게 됩니다.
그 여자에게서 어떠한 냄새가 낫길래 그는 죽였던 걸까요? 여자는 아름다웠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름다운 한때(젊음) 이라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그 젊음의 냄새라고 할까요? 그는 그러한 그녀의 젊음의 냄새를
남기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알게 됩니다.
사람은 냄새를 남길 수 없다는 것을요.
그는 향기를 담을 수 있는 향수에 몰두하게 됩니다. 이미 한물 간 향수 제조자
주세페 발디니의 제자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미 장 바티스트는 그의 스승을
뛰어넘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요. 그가 향수를 배운다는 것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요? 향수(Perfume)는 더러운 냄새를 가려주고, 지나갈 때
좋은 향을 다른 사람에게 느끼게 해줍니다. 물론 많은 향수를 뿌리면 역효과가
날수도 있습니다. 장 바티스트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가두고 싶은
향을 가둘 수 있다고 생각하며 향수를 만드는 것을 배울 것입니다.
향수는 사람의 인생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장 바티스트가 말한 향기는 영혼이라는 말은,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죽는 동안에
우리만의 고유의 냄새를 기억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자신의 냄새를
기억할 수 있나요? 없는 것 같습니다. 단지 우리는 향기가 났다가 사라지는
그러한 길지 않고 짧은 인생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멋진 냄새로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삶을 살고 죽는다면 뜻 깊은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 바티스트는 그렇게 배우는 것에 일조를 합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냄새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을 결국 알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냄새를 다른 사람에게 세상에게 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는 고민하고 갈등하며 결국 동굴에서 나와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최고의 향수를 만들기로 합니다. 그렇게 그는 13개의 향수를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사람을 한명 한명씩 죽이며 그 사람의 체모를 긁어내고 만들게 됩니다.
자신만의 냄새를 알지 못한 그는 무표정으로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채
사람들을 죽이며 자신만의 향기를 모으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결국 살인죄로 잡혀가게 됩니다. 그러나 그의 향수를 처형장에서
흘리자마자 모든 사람들은 그를 신의로 추앙합니다. 마지막 13번째 여자의 아버지조차
그의 머리 앞에 조아리지요. 또한 종교, 정치 각 분야의 최고의 거물들도 그의 앞에
조아리게 됩니다. 하층민이나 높은 계급을 가진 사람들도 그의 향수에 매료됩니다.
향수는 엄청난 효과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허무에 빠진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자신에게 향수를 뿌립니다.
이때 저는 자신이 태어났던 곳이 악취가 났기 때문에 그것을 정화하려는 것으로
끝나는 구나 라는 생각을 함에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다가온 후 그는 결국
사라지게 됩니다. 그는 과연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그에게 향수란
그를 사람들이 인정하게 만드는 요소 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향기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즉, 사람들은 완성품에만 몰두하게 된 것이지요. 그는 최고의 향수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그가 시작하고 끝난 그러한 완성품만을 중요시 합니다.
그 중간 과정은 생략을 하고 말이지요. 즉 허무한 삶이 된 것이지요.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나게 됩니다.
인간에게 후각과 향기라는 것을 땔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향수라는 매혹적인 소재는 이 영화를 좀 더 재미있게 만듭니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150분이나 됩니다.하지만 영화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
살인이라는 긴장감과 그가 만드는 향수라는 아름다움 그리고 본질적인 인간의 마음이
영화로써 잘 표현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꼭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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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티크베어의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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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용혁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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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향수 강대국으로 클 수 있었던 이유는 목욕을 금기시 했던 당시 사회풍토 때문이었다. 씻지 못한 몸의 체취를 갖가지 향기로 치장하기 바빴던 18세기 파리, 악취로 가득 찬 생선시장에서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벤 위쇼)는 타고난 본능으로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나간다. 그가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자란 고아원과 노동력을 착취당한 가죽 공장에서 버틸 수 있었던 건 초인적인 후각덕분이었다. ‘냄새’를 통해 세상을 배워 나간 그르누이는 거리에서 한 여인의 체취에 매료돼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데 그 때부터 여자의 향기에 집착하게 된 그르누이는 조향사인 주세페 발디니(더스틴 호프먼) 의 밑에서 향수의 제조방법을 배우게 된다. 본능에 이끌려 향수를 완성해 나가던 그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향수를 만들기까지 희생된 여인은 모두 13명. 머리카락과 피부에 남아있는 체취를 몇 방울의 향수로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잔인하지만 탐미적으로 그려진다. 거리의 여자부터 수녀, 쌍둥이 자매와 귀족의 딸까지 다양한 부류의 체취를 농축시킨 그의 향수는 단 한 방울만으로도 상대방을 매료시키는 힘을 발휘하고, 교수대로 향하는 그르누이의 생명까지 구한다. 전설 속에 내려오는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향을 재현하고자 했던 한 남자의 욕망은 우발적 살인과 필요에 의한 죽음을 반복하지만 결코 거북하거나 불편하지 않다. 스크린 속에 보여지는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와 섣부른 군중심리만이 관객들의 심장박동을 빠르게 할 뿐이다. 향수의 농도에 따라 달라지는 향기의 지속성처럼 점차 진한 욕망의 향기에 취하게 만드는 영화 <향수: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는 보는 것만으로도 향기가 느껴지는 영화로 완성돼 15년 동안 판권을 팔지 않았던 원작자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다. 소설 ‘향수’의 파격적인 결말 또한 유럽 최고의 무용단이 참여해 아름다운 군무(群舞)로 표현돼 장르를 뛰어넘는 예술성을 선보인다. 베스트 셀러를 소재로 한 영화가 가진 독자들의 지나친 충성도조차도 단번에 매료시킬 <향수…>는 ‘추하고 더럽게’ 그려진 소설 속 그르누이가 원작과 달리 가냘프고 선이 유약한 남자로 그려졌다는 것 빼고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조차 길지 않게 느껴진다. 벤 위쇼가 자신의 향수를 완성시킬 로라 (레이첼 허드우드)를 바라보는 눈빛연기는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치명적 외모를 지닌 그녀의 아름다운만큼이나 강렬하고 더스틴 호프먼의 출연은 잠깐이지만 영화의 무게감을 더한다. 영화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인 <향수…>는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영화적 상상력이 원작의 명성을 어떻게 이어나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선례다.
2007년 3월 22일 목요일 | 글_이희승 기자 ( may@movis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