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생에 최악의 만남, 우리 인생 최고의 반전
완득이
- 잘 짜여진 원작을 훌륭하게 만드는 법
이한 감독이 대중들에게 알려진 건 ‘연애소설’이었다. 그 영화는 현재 일류 배우가 된 그녀들의, 풋풋한 시절 청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했던 어떤 전설과도 같은 영화다. 내용이나 연출적인 면에서 그런 게 아닌(그렇지만 그 둘다 나쁘진 않았다.) 이은주, 손예진, 문근영 조합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영화기 때문이다. 특히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아련한 그녀의 가장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이 담겨있는, 두고두고 간직하고 싶은 영화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한 감독은 그 후 행보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다 그가 선택한 것이 베스트셀러 원작의 재구성이었다. 바로,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완득이가 그것이다. 사실, 이 방식은 어떤 면에서 보면 더 쉬울 거라 생각하지만 결코 아니다. 원작의 아성을 넘는 작품이 얼마나 많지 않았는가를 생각해 보면 더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소설과 영화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 더 촘촘하고 미세하고 또한 공감이 더 가는 건 인물이 주는 독백식 형식 혹은 묘사들 때문이다. 영화에서 그런 것들은 대부분 생략이 되며, 최대한 압축적 이미지화 시킨다. 서사로 치면 소설과 영화는 가까워 보이지만, 사실 어떻게 보면 영화는 시와 더 가까운 사이라고도 볼 수 있다. 둘은 이미지의 언어기 때문이다. 여하튼, 이런 저런 이유로 소설과 영화를 논의하면 늘 영화가 소설에 미치지 못한다는 편견에 갇히기 싶다. 물론, 어떤 부분은 편견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기도 하지만. 이런 저런 이야기가 길었는데, 본의만 말한다면 이 영화 완득이의 경우는 영화적 장점과 소설적 장점이 고루 갖춰져 있는 웰메이드 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이 영화가 똑똑한 것은, 소설의 인물들의 성격을 최대한 잘 활용해 매우 낯익지만 낯설기도 한 개성 있는 캐릭터를 만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캐스팅은 100점 만점에 101점을 주고 싶다. 반올림 조연으로만 기억 될 뻔한 유아인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으며, 무시무시한 카리스마 악역 위주의 캐릭터만 소화했던 김윤식을 성가시지만 정 많은 아저씨로 만들었다. 그건 자연적 인물의 힘이라기보다는 왠지 실생활에 가까워 보이는 그들의 연기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더 들기도 한다.
- 잘 숙성된 배우들과 힘 있는 캐릭터가 제대로 만났을 때
영화 ‘완득이’는 철저히 캐릭터가 돋보이는 인물 중점의 영화다. 원작이 있는 영화 중 이렇게 인물들이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한 작품도 보기 힘들 것이다. 원작과 비교하면서 캐릭터를 보자면 몇 가지 두드러진 차이점과 공통점이 잘 보인다. 먼저 가장 돋보이는 인물은 김윤식, 똥주. 그는 선생이면서 완득이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전도사이면서 재벌 2세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엄친아 같은 스펙을 가지고 있는 그지만 그가 밉지 않은 것은 누구보다 서민적이고 정이 많으며 개성이 강하다는데 있다. 영화를 보면서 김윤식은 원작 소설을 꽤 많이 읽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는 정말 영화 속에서 원작 그대로의 똥주를 재현하고 있었다. 원작의 묘미는 서사나 완벽한 구성에 있지 않다. 맛깔나는 대사들과 간결한 문체가 이야기를 풍성하고 실제감 있게 만들고 있다. 읽고 있으면 똥주와 완득이 금방이라도 튀어 나올 것처럼 사실적이고 맛있는 대화들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몇 가지 집고 넘어 가야할 부분이 있다. 똥주의 캐릭터를 위한 나머지 다른 인물들의 감정들이 꽤 많이 무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인공 완득이 뿐만 아니라 반 아이들, 선생님, 경찰 등등. 물론 현실에 똥주 같은 마초적인 인물은 존재한다. 하지만 영화에서 때론 그는 이해불가능 할 정도로 다른 사람의 감정을 무시하고 있다. 너무 폭력적이기도 하다. 무자비하게 완득이의 엉덩이를 때리는 첫 장면, 선생님이라는 신분을 가지고도 이웃 남자에게 아무렇지 않게 욕을 빽빽 해대는 장면, 특히 완득이에게 대뜸 ‘네 엄마 필리핀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잔인하기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원작의 묘미를 영화적으로 잘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는 감독의 고민이 느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김윤식에 대해서는 여기까지 말하겠다. 그는 숙성되고 능숙한, 누구나 수긍하는 배우이지 않은가. 아쉬운 것은 나는 그가 꽤 여러 가지 색을 낼 줄 아는 배우라고 생각하는데 감독들은 그를 작품에서 한 가지 이미지로만 활용한다는 것이다. 늘 마초적이고 쿨하며 화끈한 어느 정도 재력, 혹은 권력을 가진 남자의 역할로만 나온다. 그와 함께 악역으로 자주 나오는 김규철 같은 배우 또한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보니 또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 인물을 정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자 자신만의 노하우가 아닐까라는 생각. 하긴, 모든 배우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살면서 하나의 주제만을 가지고 이야기를 쓰는 작가들처럼 배우도 한 인물만 가지고 평생 연구하는 배우들도 있을 것이다.
똥주의 김윤식이 원작 그대로를 잘 보여주었다면 완득이, 유아인은 완전 반대다. 개인적으로 원작의 완득이보다 영화의 완득이가 더 설득력 있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설득력이란 때론 폭력성이 갑자기 튀어 나오지만 아빠의 폭력이나 똥주의 질책에도 꿋꿋하게 인내하고 있다는 설득력이다. 원작에서는 이 부분이 불만이었다. 원작의 완득이는 영화보다 더 능동적이고 자기표현도 정확하게 할 줄 아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면 뭔가 서사에 어긋난다. 불안감이 생긴다. 언젠가는 똥주의 일방적인 폭력들에 완득이가 ‘친구’의 유호성이 되어 학교 창을 부수어 버릴 것 같고, ‘말죽거리 잔혹사’의 권상우처럼 ‘대한민국 학교 좆까라 그래!’라고 외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캐릭터는 자신의 캐릭터를 살리지 못하고 끝내 순응하고 화해하고 맥없이 끝나고 만다.
영화에서는 이 부분을 고쳤다. 영화 속 완득이는 자신의 속을 잘 표현하지 않으며 수동적이고 인내할 줄 아는 청소년이다. 그렇기에 담임의 놀림과 질책도 견디어 내고 아빠의 폭력도 참아 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것 같기도 한다. 분명 완득이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변한 게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는 설정 자체가 철든 아이였던 것이니까. 논리적으로 서사를 만났을 때는 이 부분이 좀 더 보완되었다고 생각되지만 우리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통해 뭔가를 얻어가야 한다. 그것은 인물이 성장했을 때 가능하다. 감독이 설정한 성격인지 영화를 찍다가 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완득이의 캐릭터는 분명 양날의 검처럼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있다.
유아인의 연기는 훌륭했다. 그건 내 전제가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반올림에서 유아인을 보고 잠깐 뜨고 질 거라고 생각 했다. 그리 눈에 띄는 연기를 보여 준 것도 아니고 비중 있는 역할도 아니었다. (최근 유아인의 행보는 과히 독보적이지만, 그를 그렇게 만든 건 분명 이 영화 ‘완득이’가 한몫했다.) 하지만 그는 완득이로 자신을 증명했다. 김윤식의 캐릭터는 생각보다 어려운 역할이 아닐 수도 있다. 누가 봐도 분명하게 드러나는 개성이 있으며 머리로 그려지는 이미지가 있다. 그렇지만 완득이는 아니다. 연출가가 새로운 이미지를 창조했기에 원작에서도 도움을 얻기 힘들었을 것이며 그렇다고 강한 이미지도 아니다. 꾹꾹 속으로 참아내는 내면 연기와 한 번씩 울컥하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들. 특히 똥주를 향해 원망과 떨림이 가득한 목소리로 ‘도대체 선생님 저한테 왜 그러세요!’라고 소리를 질렀을 때는 나도 모르고 아! 하고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런 연기를 할 줄 아는 배우였다니!
마지막으로 완득이 유아인과 똥주 김윤식 외 혁주, 윤하, 옆집 아저씨, 그 아저씨의 여자 동생 등 모든 캐릭터가 잘 짜여 있고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원작에 없는 똥주와 주인집 동생의 러브라인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다만 가장 중요한 완득이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격과 설정들이 너무 빤하고 밍밍한 게 아닌가 싶다. 꼭 곱추로 표현을 해야 했을까, 꼭 춤이 어야 했을 까, 엄마와 아빠의 이별이 너무 황당하지는 않은가 등등. 지엽적인 부분을 살리느라 정작 중요한 핵심을 간과해버린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럼에도 영화 완득이에게 박수쳐주고 싶은 부분은 배우들의 살아있는 연기와 캐릭터, 다문화 가정 주인공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보여 주었다는데 있다.
- 구성의 방식
원작을 상당히 잘 재현한 드라마다. 이렇게 원작을 제대로 표현한 영화도 찾기 힘들 것이다. 게다가 원작 자체가 워낙 뛰어난 정합성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었기에, 이야기가 주는 힘이 꽤 느껴진다. 기승전결로 완득이의 비밀이 풀리면서 갖게 되는 성장 소설 형식이다. 원작을 그대로 따라갔기에, 구성은 꽤나 교과서적이면서 힘이 있다. 결국 그것은 500만 관객을 넘는 흥행을 이어가게 된 것이다.
- 이 영화의 한 컷
교회에 갔는데, 웬 남자가 완득이에게 하는 말 - "자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