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뭉이
My Heart Puppy, 2022
내가 아주 어렸을 적엔 병아리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병아리는 금방 죽는다는 엄마의 말에 고집을 부리던 나는 끝내 포기하고 말았는데, 결국 나와는 다른 선택을 한 동네 친구를 보고 키우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귀여운 병아리는 키우고 싶었지만 죽은 병아리를 보는 것은 두려웠으며, 나와 함께 한 병아리가 죽는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싫었기 때문이다. 내가 애완동물을 키우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않고 있다.
차태현, 유연석 주연의 강아지를 소재로 한 영화 멍뭉이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굉장히 투명해서 오히려 다큐멘터리나 교양프로그램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애완동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민수(유연석)와 그의 반려견 루니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 이 작품은 그들의 관계가 단지 개와 주인이 아닌 가족의 관계로 묶여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애완동물 기르기의 정석이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더욱 들었던 생각은, 누구나 애완동물을 키울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로 어딘가에 버려진 새끼강아지들, 보신탕집으로 향하게 될 운명에 처한 강아지와 안락사를 기다리는 또 다른 강아지까지. 그들의 운명은 본디 그렇게 될 것이 아니었음에도 인간의 욕심과 잘못으로 인해 비참한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고, 이를 안타까워하는 민수와 그보다는 덜하지만 역시나 측은지심이 발동하면 못 말리는 성격의 소유자인 진국(차태현)에 의해 구조되며 새로운 운명을 맞게 된다.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살펴 줄 새로운 주인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영화는 민수와 진국의 애완동물 떠나보내기 프로젝트를 로드무비 형식으로 담아내고, 그 안에서 몇 개의 사건과 마주하며 애완견들이 겪게 되는 최악의 결과에 대해 생각하도록 만든다. 다만 여기서 드는 가장 큰 아쉬움은 그 사건들이 이야기의 흥미를 크게 유발할만한 내용까진 아니라는 점이며, 이를 표현하는 방식 또한 너무 단순해서 영화다운 재미를 느끼긴 쉽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유기견 센터에서 선미(김지영)는 오직 대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기에 공익영상 인터뷰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아마도 이 영화에서 대사가 아닌 행동으로 사건을 진행한 대표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보신탕집을 운운하며 강아지를 괴롭히던 할아버지가 제일 먼저 떠오를 것이다. 선미가 전하던 선택받지 못한 믹스견들의 안락사 이야기보다 보신탕으로 협박하던 그 할아버지의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느껴졌던 이유도 우리 눈에 그 장면이 직접적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메시지들이 인상적이지 못하다는 것은 아니며, 단지 표현하는 방식에 따라 더 돋보이게 만들 수도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유기견들의 천국에 도착해 아민(김유정)을 만나지만 그 안에서 깨달은 것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 역시 인간과 인간의 관계와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애완견을 버리는 행위를 가족과 연결 지어 설명하자 민수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그가 어머니를 떠나보내던 그 순간의 좌절과 상실.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하며 비어있던 부분을 채워준 루니라는 존재의 소중함은 결국 진정한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그의 삶에 루니가 어떤 의미였는지 떠올리게 만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물론 가족처럼 함께한다는 의미는 매우 훌륭하지만, 이 역시 여러 조건이 갖춰졌을 때 만족스러울 것이다. 애완동물을 키울 수 있는 공간적인 여유(가능하다면 정원이 딸린 집이라면)와 충분히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까지. 여기에 좋은 이웃을 두는 것도 중요한 일인데, 무엇보다도 끝까지 키울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면 일찌감치 포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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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로드무비 형식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
애견인의 마음을 느끼고자 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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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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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주환배우: 유연석, 차태현장르: 드라마등급: 전체 관람가시간: 112분개봉: 3월 1일간단평동생 같은 반려견 ‘루니’와 단둘이 사는 ‘민수’(유연석). 3년 동안 사귄 여자친구(정인선)와 드디어 결혼하기로 하지만, 곧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여친이 개 침에 반응하는 희귀 알레르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 그간 루니와 함께 만날 때마다 약을 먹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민수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루니를 입양 보내기로 결심, 사촌형 ‘진국’(차태현)에게 SOS를 친다. 영화 <청년경찰>(2017), <사자>(2019)의 김주환 감독이 ‘두 인간과 여러 멍뭉이’가 동행하는 로드무비 <멍뭉이>로 관객을 찾는다. 가족 ‘같은’ 반려견을 새로운 가족을 위해 떠나보내기로 결심한 주인공 민수가 결국 진정한 가족이란 언제나 함께하는 것이 당위라는 사실을 깨닫는 여정을 명랑한 터치로 그린 작품. 만듦새가 촘촘하지는 않지만, 유치하면서도 소소한 웃음과 그 안에 스며든 메시지는 그 어떤 캠페인보다 강력하고 설득력 있다. 두 형제는 개들의 이상향 같은 제주도 어느 집을 찾아가는 길 위에서 새로운 인연을 하나둘 맺게 된다. 한적한 국도 한 편에 밀봉된 박스 안에 유기된 네 믹스견, 유기동물보호소의 안락사 직전의 개 그리고 보신탕집에 팔려 갈 예정인 민박집 개 등 제주도에 가까워질수록 민수네 패밀리는 그 인원이 점차 늘어만 간다. ‘반려동물은 가족’이라는 주제를 나침반 삼아 충실하게 직진하는 영화로 무엇보다 ‘자연스러움’이 그 미덕이다. 나이든 청년인 두 형제 유연석, 차태현의 티격태격 호흡과 ‘루니’와 ‘레이’를 비롯해 등장하는 개들 본연의 행동과 반응 등 극적으로 이야기를 꾸미거나 무리하게 욱여넣으려는 시도가 없는 점이 편안한 관람을 이끈다. 다만, 본격적인 여정에 오르는 건 중반부부터라 예열이 좀 긴 듯한 인상이다.
2023년 3월 2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 eunyoung.park@movis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