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기나이트
BOOGIE NIGHTS,2022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주는 불편함은 인간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지만 그것이 모두에게 직관적으로 통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내가 그러했던 것처럼 부끄러움을 느낄 때도 있다. 과거 좋아했던 이성과 다툴 때 나의 행동과 태도, 그리고 어떤 사건에 휘말린 나의 모습에서 발생했던 온갖 추잡한 상황들이 떠오르며 영상이 흐르고 있을 때! 이를 보는 나 자신은 바로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록 나는 그와 동일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물건을 가진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지금은 엄청난 거장이 된 폴 토마스 앤더슨의 초기작) 부기나이트와는 관련이 없는 한국영화 부기나이트는 한 남자가 여자를 꼬시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만난 다양한 여성들과 위험한 상황에 빠지게 되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는 작품으로 늦은 밤 먹이를 찾아 거리를 어슬렁거려본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묘하게 공감할 수 있을만한 내용들을 종말론과 연결 지어 이야기하고 있다. 마치 이 여자와 잘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에 취한 채로..

그래서 핵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무조건적으로 믿으려는 유빈(최귀화)의 스탠스는 그저 무식하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내일이 없다고 믿는 그의 신념은 단순히 종말의 확정성에 자신을 내던지는 것이 아닌, 마치 종교에 빠진 사람처럼 진정 그런 상황에 흠뻑 취할 때 나올 수 있는 무적인 상태에서 행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말하면서도 진짜 죽음 앞에서는 겁을 먹고 도망친다. 연주(이시원)와 유라(장혜원)에게서 도망칠 때도, 심지어 낯선 이들에게서 도망칠 때도 그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경아와의 멋진 하룻밤을 꿈꾸던 그가 갑자기 유라에게 넘어간 것은 단순히 상황이 찾아왔기에 그러했던 것이며, 그녀의 몸에 난 이상한 두드러기와 같은 흔적들을 발견하고 도망친 것 또한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연스런 행위에 불과하다. 결국 그는 순간적인 감정 변화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임에도 철저히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상황이 그렇게 변화하고 있을 뿐이고, 변화된 상황에 맞게 대처하고 움직였을 뿐이다. 그래서 친구들을 따돌린 그의 행동 또한 그렇게 비난받을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먼저 따돌린 것은 2명의 여성을 만나기 위해 유빈을 택시에 태워 보낸 친구들이며, 단지 그들의 파트너가 그들이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매우 심각했던 탓에 유빈에게 분노를 표출하게 된 것 뿐이다. 결과적으로 경아와 유라, 그리고 친구들 사이에서 난감해진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도망뿐이고 또 다른 출구에서 만난 수경(박환희)은 그에게 그리움을 전하는 대상으로 다가온다. 과거 어린 시절 추억을 함께 한 아름다운 여성. 그렇지만 그녀는 다잡은 물고기처럼 여겨졌는지 그는 또 다시 다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렇게 돌고 돌아 처음 만났던 연주에게로 도달한 유빈은 그녀야말로 마지막 밤을 함께 할 여인이라고 잠시나마 생각하지만 상황은 결코 그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진정으로 죽음을 바라는 연주야말로 유빈이 가장 버겁게 생각하는 대상이며 그의 허울 좋은 기세는 연주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진다. 결국 모든 것을 벗어던진 유빈은 수경 앞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고백하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현실이라고 확신할 순 없다. 이미 현실은 그가 도망친, 혹은 그녀가 떠난 순간까지였을 수도 있으니..

술에 취하고 이성과 함께하는 쾌락의 시간이 끝나고 나면 곧 현자의 시간이 찾아온다. 그것은 마치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처럼 고독하면서도 차분한, 혹은 우울한 느낌마저 준다. 이 영화가 전하는 매력은 바로 그런 경험에서 출발하며, 밤의 시간이 전하는 이상한 경험을 갖지 못한 이들에겐 이 영화가 매우 유치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의 경험은 이보다 더 유치하고 부끄러운 것들로 가득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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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밤의 시간을 경험해본 적 있는 사람.
매력 넘치는 배우들의 연기가 보고 싶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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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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