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거리
2021

인간은 추억을 간직하고 회상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시간의 흐름에 의해 기억이 잠시 지워진다거나 변질되는 경우는 있지만 완전하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흔적만 남아있다면 그 기억은 언제든 다시금 꺼낼 수 있다. 어쩌면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바로 사진일 것이며, 그 당시 자주 들었던 음악이나 자주 뿌렸던 향수와 같은 것들도 기억을 떠오르게 만드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어떤 노래만 들어도 과거 누군가와 함께 했던 순간의 기억과 그 장소가 어렴풋이 떠오르기도 하는데..

영화의 거리는 좋은 영화를 찍기 위해 그 씬에 어울리는 장소를 소개하는 과정을 통해 영화에 담기는 장소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듯 보이는 로맨스 멜로물이다. 하지만 그 장소의 필요성에 대한 내용은 오히려 과거의 추억 찾기로 뒤바뀌며 지금은 아니지만 과거엔 서로 사랑했던 선화(한선화)와 도영(이완)의 추억이야기로 변화한다. 그들은 과거가 담긴 장소들을 함께 찾아가며 그 속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추억을 곱씹는 행위를 통해 이야기를 계속 진행시킨다. 물론 그렇다고 이 영화가 우리가 생각하는 로맨스 스토리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코믹 멜로가 아닌 탓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아주 차분하게 이별한 남녀의 현재를 그리며 그리 들뜨지 않은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간다. 마치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연인이 너무 갑작스럽게 재회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들의 관계는 서먹하고 불편하다. 그래서 선화의 살기를 띈 말투와 행동들은 더욱 공감이 가고, 반대로 도영의 차분하면서도 뭔가 불만이 섞인 듯 보이는 모습은 약간 궁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선화는 과거의 상처가 아직 덜 아문 것처럼 보이지만 도영은 뭔가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면서..

정리된 듯 정리되지 않은 두 사람의 마음은 오직 영화를 위해 아무렇지 않은 척 유지되지만 도영은 선화의 선택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선화는 계속 새로운 장소로 그들을 안내하고 도영은 그녀의 심기를 건드린다. 이는 결국 선화의 마음에 불을 지르는 계기가 되고 그녀는 그와 헤어졌던 바로 그 장소로 도영을 데려간다. 이별의 장소로 아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이에 도영의 불만은 더욱 커지고 그들은 다시 또 다른 추억의 장소로 이동한다. 그와 그녀가 함께 데이트를 즐겼던 영화관으로.

추억 속에 존재하는 장소는 늘 언제나 그 자리에 동일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풍경도 변하게 만들고 그 곳에 있어야 할 것도 사라지게 만든다. 그들의 추억이 함께하던 영화관은 이제 재개발 공사지역으로 바뀌었고, 텅 빈 공간을 지켜보는 도영과 선화의 마음 역시도 공허함으로 가득했을 것이 틀림없다. 물론 그 마음이 동일한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시절의 추억을 잠시나마 떠올리고 아쉬워하는 모습은 보였던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결과에 대한 충격과 함께..

도영은 끝내 자신이 원하는 장소를 찾지 못하고 선화 역시도 두 손을 들고 만다. 하지만 도영의 욕심은 어쩌면 도영의 마음속에만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선화의 제안에 곧 그 의문이 풀리고 만다. 영화는 개인의 작업이 아닌 단체작업이며 감독이 원하는 것이 무조건 정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에게 추억이 되는 장소가 다른 이들에게도 동일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며, 영화 역시도 다수의 공감을 얻어야만 성공하는 예술이기에 그의 고집이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도영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영화보다 그 장소에 담긴 의미처럼 보이긴 했지만..

과거 내 추억이 존재하던 그 장소를 10년이 지난 뒤에 다시 찾아간 적이 있다. 하지만 그곳은 이미 내가 알던 추억의 장소가 아니었으며 그 날의 기억들은 잘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내 속에 존재하는 기억의 환영만이 그 장소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었을 뿐이다. 도영이 찾던 그 장소 역시도 바로 그러한 장소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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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로맨스 영화 좋아하는 사람.
부산의 경치 좋은 장소들을 알고 싶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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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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