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당신의 이야기
Waiting For Rain,2020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을 활용한 다양한 스낵 컬처가 유행하는 지금 이 시기에 루즈한 컨텐츠는 죄악이나 다름없다. 10분에서 15분가량의 영상이 스마트 폰으로 소화하기엔 가장 적당하며 그 이상의 시간을 소비하는 것은 낭비라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고정 시청자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주말드라마나 자극적인 소재를 활용해 연속적으로 임팩트를 주는 펜트하우스와 같은 드라마를 제외한다면 방송시청률은 이제 더 이상 그들이 원하는 만큼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을 빠르게 받아들이고 변화하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일까?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대표적인 영화 러브레터의 감성이 느껴지는 작품, 혹은 고 최진실 주연의 멜로 영화 편지나 2000년대 초반에 나온 동감 혹은 시월애가 생각나는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영화 속에서 결코 대면하지 않는 두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며 묘한 재미를 주고 있다. 그들이 주고받는 손편지는 그래서 그 시절의 감성을 자극하며 더욱 애틋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는데, 그 만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이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심지어 그들이 주고받았던 편지의 메시지가 그렇게 의미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누군가에겐 실패자처럼 보이는, 어쩌면 본인 스스로도 점점 그렇게 받아들이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삶을 살고 있는 영호(강하늘)는 하나의 소소한 기억을 소중히 간직한 채 살아간다. 학창시절 운동회에서 달리기를 하다 넘어진 뒤 수돗가에서 만난 강소연(이설)이라는 소녀와의 추억! 그녀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을 평생 간직하며 살아가는 영호의 모습은 아마도 첫사랑의 흔적을 가슴 한 곳에 고이 간직한 모든 남자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완벽한 사랑을 만날지라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은..

그래서 수진(강소라)의 위치가 매우 애매하게 느껴졌고 그녀와 영호의 거리감은 보는 이들을 더욱 답답하게 만들고 있다. 과거의 (연인도 아닌) 사람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추억조차 없기에)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는 과거로부터 이어진 소연의 영호와, 현재의 (연인처럼 보이는) 여인과 직접 마주하며 추억을 (연속적으로) 쌓아가는 과거에서 분리된 수진의 영호 사이엔 엄청난 괴리감마저 느껴진다. 이는 곧 수진을 대하는 영호의 태도에서도 드러나고 수진을 상상하는 영호의 표정에서도 느껴진다. 그의 머릿속엔 오직 소연의 존재만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와 연락을 주고받는 소연은 진짜 소연이 아닌 그녀의 대리인이자 그녀의 동생인 소희(천우희)다.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로 죽음을 향해 빠르게 달려가는 중인 소연을 대신해 소희가 편지를 써서 답을 한 것이고, 추억조차 없는 그와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갔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은 아무것도 아닌 그들의 연은 결코 이어지지 않고 심지어 한 차례 만남이 이뤄질 뻔했던 그 순간조차 장난 같은 운명에 의해 어긋나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그들 둘의 실체간의 만남을 보여주지 않은 것은 더욱 아쉬울 수밖에는 없다.

영화는 영호가 만난 그 시절의 소녀가 사실은 소연이 아닌 소희였음을 마지막에 밝히며 영호의 추억 속 그림을 완성시킨다. 비록 그녀의 이름이 소연이 아닌 소희일지라도 그가 기억하는 수돗가의 추억 속엔 소희가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계속 비밀스러움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마주하는 장면조차 포기한 채 신비감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마지막에 차가 들어오는 장면은 결국 그들이 만나게 될 것을 암시하지만, 그것이 기다리는 영호 앞에 어린 소연의 모습을 한 소희가 직접 서는 장면만큼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누군가에겐 아련하고 풋풋한 기억을 떠올릴만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지루하고 따분한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만 놓고 본다면 아쉬움도 많이 느껴질 만한 작품이었다고 생각되지만, 개인적인 취향에 의해 나름 괜찮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비가 내리던 그 밤, 교회 앞에서 첫 키스를 나누던 그때 그 소년 소녀의 추억도 아련히 떠오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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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강하늘, 천우희의 팬이라면..
잔잔한 감성멜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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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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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조진모배우: 강하늘, 천우희, 강소라장르: 드라마등급: 전체 관람가시간: 117분 개봉: 4월 28일 간단평이렇다 할 목적 없이 삼수 생활 중인 ‘영호’(강하늘)은 문득 떠오른 초등학교 동창 ‘소연’에게 편지를 보낸다. 아파 누워 있는 언니에게 도착한 편지를 받은 ‘소희’(천우희)는 자신이 대신 답장을 쓰기로 한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는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한 주인공이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익숙한 설정 안에서도 충분히 개성을 살린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 좋은 사례로 남을 작품이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내온 강하늘과 천우희 사이에 당연히 존재해야 할 여백이 살아 있는데, 그 빈 공간이 헐렁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각자의 일상으로 꼼꼼히 채워 넣었다. 조진모 감독의 따뜻한 시선이 두 인물의 삶을 관찰하고, 유성협 작가가 써낸 ‘대사의 맛’이 인물의 색깔과 장면의 공기를 잘 전달해낸다. 최근 들어 잘 느껴보지 못했던 신선한 문장과 비유가 귀를 사로잡는다. 화면에 담긴 강하늘, 천우희의 표정과 연기 역시 꽤 생동감 있는 편이다. 자칫하면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이야기 구조 안에서 강하늘과 특별한 관계로 출연하는 강소라 역할이 어떤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측면도 있다.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만 조금 더 짧게 조절했다면 더 좋았으리라는 아쉬움도 남지만, 코로나19로 극장 갈 일이 더없이 귀해진 요즘 큰 망설임 없이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2021년 5월 3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