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의 아내
Wife of a Spy,2020

1940년대 일본. 고베에서 무역회사를 경영하는 기업인 슈사쿠와 그의 아내 사토코는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다. 넓은 저택에서 하인들의 보호를 받으며 당시만 해도 구하기 어려웠던 고급 양주를 마시고, 취미로 영화를 찍는 모습은 두 사람이 당시 일본에서도 보기 드물었던 자산가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남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분위기가 감돈다.

사업차 만주로 건너갔던 슈사쿠는 만주에서 보낸 기간 동안, 여행에 가져갔던 카메라로 그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을 기록한다. 일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잔인한 범죄들이 성행하는 모습을 본 슈사쿠는 이것을 막기 위해 연합군의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일본군의 생체 실험 내용이 담긴 노트를 영어로 번역하여 미국으로 건너가 이 사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

한편 이 사실을 알게 된 사토코는 남편을 향한 사랑과 애국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결국 사토코는 슈사쿠가 번역한 노트를 가지고 어린 시절 친구였던 헌병대장을 찾아간다. 그는 사토코가 찾아오기 전부터 반 군국주의적인 성향을 보이던 슈사쿠를 예의주시하고 있었고, 만주에서 돌아온 슈사쿠가 본격적으로 국가의 존속에 위협적인 행동에 나서기 전에 이를 막으려 한다.

슈사쿠가 목격한 참상은 실제로 만주에 있었던 일본의 731부대가 저지른 각종 인체실험이다.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가장 잔인한 만행으로 알려진 731부대 인체실험은 지금껏 여러 영화, 다큐, 드라마로 만들어졌지만 직접적인 가해국가인 일본에서 본격적인 소재로 다룬 적은 드물다. <스파이의 아내> 또한 일본인 감독의 작품이라는 한계가 곳곳에서 엿보인다. 하지만 자국이 저지른 만행을 가능한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고,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인지한다는 점에서 이의가 있다.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이 이전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은 사토코는 처음에 남편의 부정을 의심한다. 심지어 슈사쿠와 만주에서 함께 온 여성 히로코가 사망하자 의심은 더욱 깊어진다. 하지만 슈사쿠가 감추고 있는 비밀은 불륜보다 더욱 크고 무거운 것이었다.

극중 사토코는 자산가의 아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평범한 일본인에 가깝다. 1940년의 평범한 일본인이란 제국주의, 군국주의 사상에 세뇌되어 전쟁에 찬성하고 천황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칠 수 있는 사상의 소유자를 말한다. 때문에 극중에서는 반 군국주의 성향을 보이는 슈사쿠가 범죄자로 묘사되고, 표면적으로 남편을 배신하는 사토코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국민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이것은 극 초반의 구도에 불과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을 바꾼 사토코와 어떻게든 미국으로 건너가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하는 두 사람의 치밀한 심리묘사가 관객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작품의 제목이 <스파이>가 아닌 <스파이의 아내>인 이유는 모든 반전이 밝혀진 후반에 가서야 드러난다. 제정신인 사람이 범죄자가 되는 세상, 미치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던 시대. 이것은 평생 수동적으로 살아왔지만 결국 능동적으로 변화하고, 시대의 거친 풍랑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던 <스파이의 아내>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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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MJ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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