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터
FIGHTER,2020

인간은 결코 홀로 살아갈 수 없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이에겐 생존의 가능성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부모의 손길, 혹은 그 누구의 손길이라도 닿아야만 아이는 인생을 시작할 수 있다. 길에 버려진 채로 울어대는 태아가 스스로의 힘으로 음식을 찾아먹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며 이는 무인도에 버려진 어른들의 생존확률보다 극히 낮을 수밖엔 없다. 무인도에서 홀로 살아가는 아무개는 나무껍질이라도 입에 넣은 채로 얼마동안 버틸 수는 있을 테니까. 그렇지만 아무개의 시간도 그리 길다고 장담할 순 없을 것이다.

인간은 한없이 나약한 존재다. 그래서 무리를 지으며 살아가려 하고 낯선 타인들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나 혼자 사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들조차 주변을 둘러보면 자신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적어도 우린 자급자족을 하는 그 시절의 인간이 아니기에 보다 많은 편의에 의해 안정된 삶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설령 돈이 없다 할지라도 국가의 도움을 받아 최소한의 생존은 보장받는다. 만일 모든 개인 간에 투쟁이 발생할 경우 사람들은 급격히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자급자족이 불가능한 현실 패턴은 우릴 더욱 곤경에 처하게 만들 것이다.

진아(임성미)가 느끼는 삶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우린 결코 확신할 수 없다. 그녀가 느끼는 감정의 불안은 단지 낯선 환경에서 찾아오는 외로움 때문인지 아니면 고독한 자신을 발견한 탓인지. 물론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이승연)를 찾으며 하나의 힌트는 발견할 수 있지만 이 역시도 완벽한 조각은 아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가족이지만 그 가족의 형태는 오래 전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 가족의 모습인지, 아니면 그녀가 새롭게 꿈꾸고 있는 가족의 형태인지 확실하지 않다. 지금은 그저 존재를 알 수 있는 어머니가 필요한 것이고 그것으로 그녀의 고독이 어느 정도 해소될 것이라 믿고 있는 듯하다.

복싱은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활력으로 다가온다. 스포츠의 의미에서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를 논하는 것보다 그녀에게 생의 의지를 제공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바로 그것인데, 이 또한 그녀의 빈 구멍을 완벽히 채워주지는 못한다. 문제의 시작은 그녀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에서 비롯되는데 하나는 청소나 하는 여자가 복싱에 관심을 갖는 것을 비웃는 시선, 그리고 또 하나는 북한 사람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만들어 낸 시선 때문이다. 이는 복서인 윤서(김윤서)와 트레이너인 태수(백서빈)의 발언에서 발발하며 그들과의 갈등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진아를 향한 태수의 감정은 적어도 애정에서 시작하는 것은 아니었다고 본다. 이는 부동산 매니저(이문빈)의 관심과도 달랐으며 형태 또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래서 처음부터 좋아했다는 말은 뭔가 어색한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매니저는 결국 자신의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며 악인으로 전락했고 태수는 그녀의 곁에 남아 그녀를 차지하게 된다. 그렇기에 태수의 감정은 진심으로 그녀를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봐도 충분하다. 처음부터 좋아했다는 그의 말이 진실이든 혹은 거짓이든 그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어쩌다 라이벌로 자리하게 된 윤서와의 관계는 조금은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누가 봐도 복싱을 못할 것처럼 보이는 윤서를 상대로 진아가 이기고 승승장구할 것이라 예상한 이들은 그 결과를 의아하게 생각할 것이며, 진아의 폭주로 인한 어머니의 부상 그리고 그 가족과의 불화는 복싱 결과 자체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이는 마치 스포츠가 인생보다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인다. 복싱을 통한 승패여부는 그저 그녀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하나의 과정처럼 보일 뿐이다.

이 영화를 보며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려진다. 물론 각자의 삶이 모두 다른 것처럼 이 역시 다르게 그려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놓치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간절함이 그 영화에 있었다면, 이 영화에는 삶을 위한 최소한의 희망이 담겨져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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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삶, 소외, 고독의 문제에 관심있는 사람.
복싱을 소재로 한 영화를 좋아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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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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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윤재호배우: 임성미, 백서빈, 오광록장르: 드라마등급: 12세 관람가시간: 104분 개봉: 3월 18일 간단평돈을 벌기 위해 식당 일과 체육관 청소를 병행하던 탈북인 ‘진아’(임성미)는 복싱이라는 새로운 관심사를 찾고, 체육관에서 일하는 코치(백서빈)와 관장(오광록)의 도움을 받아 선수 훈련을 시작한다. 십수 년 전 먼저 탈북해 다른 가정을 이룬 엄마, 여전히 북에 남아 있는 위태로운 아빠, 홀로 지내는 자기 처지를 알고 지분거리는 부동산 중개인 등 ‘진아’ 곁에 놓인 조건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하지만 링 위의 ‘파이터’가 되기로 그는 잽 하나에 울분을 날려 보내고, 또 다른 잽 하나로 삶의 의지를 확인하며 남한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독기어린 표정과 공허한 눈빛을 오가며 ‘진아’라는 캐릭터에 또렷한 숨결을 불어넣은 임성미가 작품 분위기를 독보적으로 끌어올리는 가운데, 다큐멘터리 <마담B>, 극영화 <뷰티풀 데이즈>에 이어 탈북인을 소재로 다시 한번 영화를 만든 윤재호 감독의 어떤 태도가 ‘자기 삶과 싸우는 인간의 삶’에 관한 진실한 메시지를 던진다. ‘진아’와 복싱 코치 사이에 깃든 달달한 로맨스를 비롯해 전작에서는 느끼기 어려웠던 약간의 유머와 여유까지 감지되는 반가운 작품이다.
2021년 3월 22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 (got.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