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수 로맨스
2020

아홉수라는 것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에 불과하다. 마치 자신의 실패에 핑계를 대기 위해 아홉수와 같은 요소를 끌어다 쓰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놀라운 사실은 이를 믿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것이며 이상하리만치 잘 맞아떨어지는 느낌도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밀을 눈치 챌 수 있는데 우린 평생 좋고 나쁨을 경험하며 살아간다. 아홉수가 아니더라도 나쁜 일은 찾아오며 아홉수에 걸렸어도 좋은 일은 찾아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런 의미를 담은 영화가 아닐까 싶었던 아홉수 로맨스는 일단 문제가 있는 남자들을 적극 활용하며 그녀들이 아홉수에 걸려있음을 조금은 과하게 표현한다. 좋은 남자 만나서 행복한 연애도 하고 결혼까지 꿈꿀 수 있는 결말에 도달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녀들은 모두 연애를 통해 아픔을 경험하고 다시 새로운 시작을 꿈꾸게 된다. 물론 마지막 장면들을 그들이 실패했던 바로 그 연애의 첫 장면으로 옮겨놓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지도 모른다. 비록 실패한 연애라 할지라도 분명히 달콤했던 처음 그 순간은 존재했을 것이니까.

연상연하 커플로 주승(서인권)과의 행복한 미래를 그리려던 보영(강나리)에게 닥친 위기는 좀 더 예쁘고 잘나가는 엔터회사 대표(송유현)의 등장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녀의 존재와는 무관하게 어쩌면 주승은 이미 언제든 갈아탈 준비가 된 철없는 남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철저하게 감춘 채로 보영과 함께 하다 좀 더 나은 동아줄이 내려오자 그것을 덥석 잡아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이후 보영을 다시 찾아온 이 어리석은 아이는 그나마 지찬(서동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인다.

공시생인 그를 8년 이상 뒷바라지 해온 희주(조한나)의 뒤통수를 제대로 친 주제에 끝까지 아닌 척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치졸함을 넘어 끔찍한 수준이었으며 그는 자신이 버려야 할 것을 끝내 버리지 않는다. 물론 여기엔 희주의 안일한 대처가 일을 키운 면도 없진 않다고 볼 수 있다. 지찬의 죄를 알았을 때 구차한 변명을 들어줄 것이 아니라 3자 대면이라도 해서 확실하게 해두는 것이 최선이었음에도 그녀는 그저 믿겠다는 말 한마디로 그의 죄를 사한다. 덕분에 희주의 20대 마지막 연애는 최악으로 끝나버리고 만다.

그에 반해 가희(이다해)와 서연(이새별)은 조금은 다른 의미로 불편한 상황을 맞이한다. 크리스(구윤상)의 경우 가희를 좋아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와의 사이엔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존재한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자유로운 연애관을 가진 서양남자와 보수적인 연애관을 지닌 동양여자의 사랑이야기처럼 그려지고 있어서 그들은 완벽하게 섞이지 못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상대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상대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그들의 관계 역시도 오래 유지될 것으로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서연의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착한남자 스타일의 상혁(양지원)의 문제는 위로가 필요한 힘든 상황 속에서도 늘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며 긍정의 신호만 보내는 것인데, 비록 짜증이 날 순 있을지라도 다른 문제들에 비한다면 귀여운 수준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그의 존재 의미는 마치 아홉수에 대한 반박의 이유처럼 존재한다. 우리 인생에 좋고 나쁨은 불규칙적이긴 해도 반복적으로 찾아오기에 나쁜 일 뒤엔 좋은 일이 찾아올 것이라는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게다가 영화도 그의 말처럼 그렇게 끝을 맺고 있다.

스물아홉 네 여성의 이야기는 아홉수로 풀어내도 좋지만 서른을 맞이한 여성들의 이야기로 그렸어도 딱히 문제는 없었을 것 같다. 어차피 이 영화 역시도 서른을 맞이하기 전 그녀들의 마지막 20대를 다양한 로맨스로 그려내고 있었으니. 인생은 언제나 바이오리듬과 같이 좋고 나쁨을 반복하며 우릴 시험에 빠트리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결국 우리 자신의 선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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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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