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여름밤
Moving On,2019

몇 년 전, 심장이 미친 듯이 두근거리는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적이 있다. 몸이 아팠던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가야 할 상황도 아니었다. 그저 뭔가가 계속 내 몸을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을 뿐이다. 신기한 것은 그날 나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날 새벽,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다. 나중에 어머니는 우스갯소리로 할머니가 우리와 작별인사를 하려고 그랬던 것이라고 했다. 그날의 경험은 내게 아주 특별했고 충격적이었다.

남매의 여름밤이 올해 최고의 한국영화라는 말이 있어서 보게 되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의 좋고 나쁨에 대한 평가는 전혀 아니며 이는 오직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아무도 모른다를 내가 본 최고의 영화들 중 하나로 손꼽고 있음에도 다시는 찾아보지 않는 것처럼 이것은 결국 내 개인의 문제일 뿐 영화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영화들은 다른 누군가에겐 강력히 추천할만한 작품이라 생각한다. 그저 내 감정이 나약해서 좋아하지 못할 뿐.

이 영화는 이별에 관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물론 그것은 아주 사소한 헤어짐 또는 사랑의 반대말에 해당되는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지는 않으며 오히려 시간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보다 가깝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소멸하고 사라지는 것은 또 다른 새로운 것으로 대체된다. 나이 든 노인이 죽고 어린 아이가 태어나는 자연의 섭리처럼. 그렇게 이 영화는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죽음과 마주하는 남매의 모습을 통해 서로 다른 성장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슬픔을 인지하는 소녀와 어쩌면 그 시간을 아무렇지 않게 넘긴 것인지도 모르는 소년의 모습을 통해서.

그렇기에 손녀 옥주(최정문)와 손자 동주(박승준)의 동일한 경험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아빠(양흥주)와 이혼한 엄마를 대하는 모습을 통해 더욱 자세히 그려지고 있는데, 옥주에게 엄마는 마치 자신들을 버리고 떠난 여자. 그래서 다시는 만나면 안 되는 사람처럼 그려지고 있고 동주에겐 자신을 낳아준 엄마이자 계속 연락하고 만나도 되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동주는 엄마와 편하게 만나고 선물도 받지만 옥주는 끝내 엄마를 만나지 못한다. 그저 이상한 꿈을 통해 만나고 동주의 입을 통해서만 전해들을 뿐이다.

물론 여기엔 옥주가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을 시기이기에 그런 결과가 발생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아직은 어려서 잘 모르는 동주는 제아무리 의젓해보여도 어린 아이일 뿐이며, 옥주는 여러 가지를 걱정하고 고민할 줄 아는 나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차라리 그녀가 그런 것에 무딘 나이(무딘 성격)였다면 또 모르겠지만, 누구나 반드시 경험해야만 할 방지턱을 그녀는 제대로 실감하면서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아버지의 짝퉁 신발과 남자친구의 관계마저 복잡하게 꼬이면서 그녀는 더욱 심란해져만 간다.

게다가 할아버지의 재산(집)을 노리는 것처럼 보이는 아빠의 행동에 옥주는 분노한다. 그들이 할아버지의 집에 오게 된 이유가 마치 요양원으로 할아버지를 내쫓으려는 계획의 일환이었던 것처럼 생각되었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의 집을 누군가 보러 온 것이 마치 아빠가 할아버지의 것을 빼앗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현실세계를 충분히 경험하고 어른이 되었다면 이 역시 다르게 받아들여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성장통을 겪는 옥주에게 그런 과정들은 그저 악당의 행동처럼 비춰졌을지도 모른다.
대다수의 인간들이 과거에 경험해봤을 부모, 어른들에 대한 불신과 경멸 같은 감정들은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 옥주가 그러하듯, 언젠가 좀 더 성장한 동주가 그러하듯.

내가 아주 어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그래서인지 그것은 내게 어떤 성장의 흔적으로 자리하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하지만 할머니의 죽음은 내게 아주 커다란 충격이었다. 죽음을 인지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나이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무서운 일이다. 우리가 성장한다는 것은 곧 우리 역시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들을 알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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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고 깊이 있는 영화를 원한다면.
가족관련 영화를 보고싶은 분들에게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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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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