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2020
명색이 영화감독이지만 9년 동안 작품이 없는 무늬만 감독인 경태가 최근 몰두하는 일은 영화작업이 아닌 시 쓰기다. 그는 과거에 함께 살았던 연인 다운을 그리워하고 있고, 최근 시 작업조차 여의치 않자 다운을 다시 만나면 시가 쓰일 거라는 희망을 품는다. 여행을 가려고 집을 나섰던 경태는 돌연 걸음을 돌려 다운을 만나러 간다. 그러나 그것조차 당당하게 다운의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닌, 다운의 집 앞에 캠핑용 텐트를 치고 그곳에 머무름으로써 다운을 당황하게 만든다.
경태가 과거의 연인인 다운에게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은 그의 행동과 말을 통해서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러나 다운은 경태와 함께했던 과거를 싫어하지는 않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픈 생각도 없다. 경태는 시 쓰기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다스려보려고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가 않다.

웹툰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는 다운의 상황 또한 여의치 않다.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난 과거의 연인이 반갑지 않다. 9년간 작품 하나 없었던 경태만큼은 아니지만, 다운의 창작 활동도 캄캄하기는 마찬가지다. 다운의 웹툰은 사실 본인의 창작물이라기보다 회사의 요구에 맞춰서 작업하는 공장제 같다. 창작열이 높고 감수성이 풍부한 다운은 이런 현실이 고달프고 답답하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경태와 다운의 처지는 사뭇 비슷하다.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공감했지만,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쳐 헤어지게 되었다. 이는 현실의 많은 연인이 헤어지는 과정과 흡사하다. 현실은 드라마와 달라서 사랑만으로 극복할 수 없다. 나와 비슷한 상대를 좋아했지만, 나와 비슷하기 때문에 이별하는 것이다. 다운과 경태는 그렇게 헤어졌고 아직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미련 때문에 혼란스러워한다.

두 사람이 함께했던 기간은 결코 짧지 않다. 아마도 결혼을 생각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두 사람 중 한쪽의 일이 더 잘 풀리기만 했어도 결과는 달랐을 것 같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운과 경태는 이별을 했다. 다시 만난 두 사람이 부딪치는 모습에서는 서로에게 품었던 환상과 모순이 드러난다. 한번 헤어진 연인이 재결합해도 결과가 좋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서 드러난다.

<시, 나리오>에서는 영화감독이지만 시를 쓰는 경태와 작가이지만 자신의 작품을 하지 못하는 다운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고 극복해 나가는 모습이 그려진다. 이별의 상처는 단시간에 치유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딱지가 앉는다.

전체적으로 소소하고 서정적인 분위기의 일상 영화다. 극적인 요소가 적어 로맨스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 등장인물의 수도 적고 특별한 사건이 발생함으로서 그들의 삶을 뒤흔들지도 않는다. 하지만 변화가 미미하기 때문에 현실적이다. 온통 화려하고 극적인 이야기만 가득한 극장가에 이런 작품이 있어야 강약이 맞지 않을까. 차분하고 잔잔한 감성을 좋아하는 관객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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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 로맨스, 드라마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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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HMJ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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