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시간
Me and Me,2019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의문스럽게 이어지다가 미리 준비해놓은 처음 장면을 다시 마지막에 배치하며 이야기를 닫아버린다. 관객들의 머릿속엔 의문만이 남을 것이고 이제는 누군가가 나타나 이 모든 의문을 풀어주기를 기다릴 것이며, 차라리 감독이 직접 입을 열어주기를 바라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그냥 모른 채로 남겨둔다 할지라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 속에 숨은 의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으니까!

배우 정진영이 연출한 첫 번째 영화 사라진 시간은 어느 시골마을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을 다룬 작품으로 초등학교 교사 김수혁(배수빈)과 그의 아내 윤이영(차수연)의 이야기로 초반을 채워나간다. 그들에겐 남들이 모르는 비밀이 존재하고 이는 마치 신병(무당이 될 사람들이 걸리는 병)과 같은 형태로 이영을 괴롭힌다. 매일 밤마다 귀신들린 사람처럼 다른 존재가 되는 이영의 모습은 그렇다고 신병으로 확신하기에도 애매한 성질을 지니고 있다. 규칙적으로 찾아오는 변화의 시간은 그래서 더욱 기묘하게 느껴진다.

그런 그녀의 비밀을 알게 된 정해균(정해균)의 입은 마을사람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게 만들고 그들의 집은 감옥처럼 변하고야 만다. 물론 감옥은 타의에 의한 구속이 아닌 그들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며 마을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한 최선의 노력이었을 것이다. 다만 그녀가 어떤 식으로 피해를 줄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기에 그렇게까지 하는 것이 오히려 오버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여기서 사고가 발생하면서 그들은 죽고 새로운 주인공 박형구(조진웅)가 등장,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로 박형구가 김수혁이 되면서 벌어지는 더욱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형사의 삶을 사는 형구는 교사의 삶을 살던 수혁의 몸을 빌리며 변신하는 것이 아닌, 형구 그 자체의 몸을 유지한 채로 수혁이 되어버린다. 이는 형구가 인지하는 것과는 달리 타인에 의해 결정된 사항이며 그렇기에 그는 계속 의심하고 또 의심한다. 거울 속의 형구는 분명 이전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 없는 형구의 이미지임에도 사람들은 그를 수혁으로 착각한다. 나라는 존재는 나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마땅하지만 사회 속에서 나는 결국 타인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나라는 존재를 밖에서 바라보는 보편적인 시선들이 곧 나를 결정지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형구는 결과를 수용하지 못한 채 계속해서 떠돌기만 한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믿지 못한 채로 이승을 떠도는 영혼처럼 그는 수혁의 삶도 형구의 삶도 살지 못한다. 그렇기에 우린 몇 가지 가정을 해볼 수 있는데, 하나는 이 모든 것이 꿈이라 생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트루먼 쇼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과가 없는 가정일 뿐 결국 우린 형구가 수혁으로 변한 사실을 믿는 상태로 이야기를 바라봐야만 할 것이다. 카프카의 얼토당토않은 이야기에도 푹 빠져버렸던 것처럼.

어쩌면 정진영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타인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직업, 바로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 인간 정진영의 삶을 살아가는 동시에 타인의 삶을 경험하고, 주변 사람들 모두 그를 인간 정진영이 아닌 이야기 속 캐릭터로 봐줄 때 느꼈던 그 이질감이 어쩌면 이 영화 속 형구가 느끼는 그것과 가장 유사한 감정은 아니었을지. 또한 타인에 의해 평가받는 그들의 모습은 그들 스스로를 의문에 빠트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누구인가! 나라는 존재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으나 레오 까락스가 자신의 페르소나인 배우 드니 라방을 이용해 홀리 모터스에서 다양한 캐릭터들을 연기시켰던 것처럼, 이 영화 역시도 가면을 쓴 인간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던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라는 존재가 결코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우린 항상 의심하고 또 의심해봐야 할 것이다. 나라는 존재를.. 나를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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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존재에 대해 고민해보고자 한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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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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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진영배우: 조진웅, 배수빈, 정해균, 차수연장르: 드라마, 미스터리등급: 15분 이상 관람가시간: 105분개봉: 6월 18일간단평화재 사건을 조사하던 형사가 술에 취해 잠든 후 일어나 보니 지금까지의 인생이 사라졌다? 자기도 모르게 타인이 ‘돼’ 버린 형사는 과거의 기억을 안은 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살아간다. 배우 정진영의 감독 데뷔작 <사라진 시간> 이야기다.영화는 작은 마을에 새로 부임한 교사 부부가 화재로 사망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수사를 담당한 형사 ‘박형구’(조진웅)는 ‘해균’(정해균)을 비롯한 마을 사람이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주민들이 초대한 생일잔치에서 과음하게 된 형구, 다음 날 아침 일어나니 사람들이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형사가 아닌 선생으로의 삶을 마주한 형구는 단란하게 살던 집으로,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로 가족들을 찾아다니나 어디에서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마치 다른 차원의 세상에 떨어진 듯 완벽하게 과거와 단절된다. <사라진 시간>은 정진영 감독이 “기존 문법과 관습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만들고 싶었다”라고 밝힌 바 있듯 초현실인지 상상인지 꿈인지 망상인지 리얼인지 쉽게 예측하기 힘든 전개와 종잡을 수 없는 무드를 자랑한다. 오래전 인기 끝었던 시리즈 ‘환상 특급’이 언뜻 떠오르기도. 조진웅과 정해균의 찰진 연기가 분절된 서사에 접착제로 역할하며 신선함과 무리수 사이 그 중심에 자리 잡게 한다.
2020년 6월 18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