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The King s Letters,2019

조선왕조 오백 년을 넘어 한반도 반만년의 역사를 통틀어 수없이 많은 위인과 의인들이 존재 했었다. 그런 인물들에 대해 감히 순위를 메길 수는 없지만 단지 현대의 언어로 표현하여 선호도 혹은 인지도 정도의 불경스런 단어를 적용시키면, 틀림없이 다섯 손가락 혹은 세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인물이 세종대왕 일 것이다.

조선왕조 4대임금. 과학기술을 비롯하여 온갖 학문의 발달과 장영실, 집현전 등으로 나타낼 수 있는 적재적소의 인재등용.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낮은 문맹률을 가지게끔 한 한글의 창시자. 추가로 고기덕후...
그야말로 대왕이라는 칭호조차 부족하다시피한 만능이자 사기적인 캐릭터 세종대왕. 세조의 왕위찬탈이나 연산군과 폐비 윤씨, 장희빈 같은 드라마틱한 스토리의 주인공이 아니라 너무도 완벽한 캐릭터의 세종대왕 이다 보니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중점을 둔 작품이 앞서 몇 차례 있었다
물론 한석규 주연의 뿌리깊은 나무와 김상경 주연의 대왕세종 같은 대하사극도 훌륭했지만, 송강호 주연의 본 작품도 일단 배우자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믿고 보는 배우 송강호와 개성 있는 연기의 박해일. 거기에 살인의 추억에서 한차례 호흡을 맞춘 고(故)전미선까지. 여름 휴가 시즌에 맞춘 일정과 티켓파워 확실한 배우들. 한글창제라는 소재까지 삼위일체가 되어 천만 관객동원까지 예상되던 작품이었지만 현재 스코어는 약 95만명(8월말 관객기준/IPTV 시청 제외).
95만명이 작은 숫자는 아니지만 앞서 말한 흥행요소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대폭망 이라는 단어밖에 떠오르질 않는다.
왜?
물론 여름시즌을 겨냥한 헐리웃과 국내의 여러 작품과 경쟁이 붙기는 했지만, 경쟁이 없는 일정이 1년중 과연 얼마나 될지를 생각하면 변명에 가깝다.

대체 무엇이 영화를 망하게 한 원인이 되었을까?! 영화가 그 정도로 재미가 없었을까? 불행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개봉 전 감독의 말 한마디가 관객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그 첫 번째일 것이다. 가뜩이나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을 통한 역사왜곡으로 민감한 대한민국에서 그 내부에서조차 역사왜곡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니 곱게 보아줄 리 만무하다. 한글 창제에 대한 감독의 생각은 여러 한글 창제설 중 하나를 영화하 했다. 라고 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자막을 넣고 싶지 않았다라고 뒤따르는 말이 치명적이다.
영화는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장르에 있어 퓨전사극이 아닌 다음에야 충분한 고증을 거쳐 만들어야 하는 것이 역사물의 기본이다.

훈민정음 창제에 대하여,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학계의 정설은 세종대왕의 창제물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집현전 학자들과 공동창제나 신미라는 승려가 창제했다는 가설이 존재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일부 페미니스트가 주장하는 정의공주 창제설도 숟가락을 올리려 한다. 이렇듯 정설을 대신한 가설을 뿌리 삼아 펼쳐지는 본 영화에서의 줄기와 가지를 살펴봐도 썩 인식이 바뀔 거 같지는 않다.
영화는 일본의 승려들이 팔만대장경을 받아가기 위해 생떼를 쓰는 것으로 시작된다. 예나 지금이나......

선대 왕께서 약속하신 부분이라 마냥 거절하기도 부담스러운 이 문제를 세종대왕은 소헌왕후(전미선 역할)의 조언으로 신미스님(박해일 역할)을 통하여 해결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인연이 되어, 새로운 문자를 만들다 벽에 부딪힌 고충을 토로하고 산스크리스트어 전문가인 신미와 함께 일을 추진하기로 한다. 하지만 거의 모든 작업은 신미스님이 다 진행하고 극중 세종대왕이 보여주는 모습은 신하들의 반발을 달래고, 눈병을 치료하며 소헌왕후와 작은 시간을 보내는 게 대부분일 정도다.

아무리 숭유억불정책의 조선초기지만 왕 앞에서 신미스님의 말도 안 되는 행동들이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답시고 정말 인간적인 면모만 보여준 세종대왕. 요리로 비유하자면 값비싼 재료들을 가지고 레시피도 없이 대강 고추장 잔뜩 넣어 재료들 본연의 맛을 모두 잃어버린 경우라 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아쉽다.

좋은 배우와 훌륭한 소재를 너무 쉽사리 써버린 것 같아 영화를 보고 나서도 내내 아쉬움이 남는다.
본 영화의 흥행참패 요소를 따지자면 감독의 입방정이 50%, 신미스님에 너무 치중된 가설이 40%, 무기력한 모습의 세종대왕이 10% 정도의 지분을 가질 것이며 추후 다양한 역사의 분석과 가설의 검증, 영화적 상상력의 발현에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는 것이 더 두렵다.

끝으로 극중 수양대군의 등에 엎혀 마지막 눈을 감는 전미선씨의 모습과 표정이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되어버린 사실에 가슴이 시린다.
故 전미선씨의 명복을 빕니다.
리뷰어의 총평
- 한글 창제설에 대한 새로운 시각 그러나 썩 유쾌하지는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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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다양한 가능성을 영화로 확인하고 싶은 사람
故 전미선 배우의 마지막 작품이 보고 싶은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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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청포도에이드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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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유지를 위해 문자와 지식의 독점이 필요했을 터. 권력을 지닌 양반층이 한글 창제를 반대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나랏말싸미>는 유학자로 대표되는 신하들의 반대를 무릎쓰고 훈민정음 창제에 박차를 가했던 세종의 마지막 8년을 조명한다. 영화 서두에서 밝혔듯 승려가 한글 창제에 개입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여러 한글 창제설 중의 하나이다. 진위를 떠나 우리 말과 글을 만들고자 한 세종의 애민의 마음은 영화 곳곳에 여실히 묻어난다. 전통음악과 예스러운 풍경과 문자가 지닌 아름다움의 어우러짐이 준수하고 비장함과 말랑말랑함 사이 균형이 조화로운 편. 적당한 무게감 유지와 한글이라는 위대한 발명품의 가치를 환기하는 참신한 접근은 영화의 장점이다. 그동안 수없이 변주돼 온 세종대왕에 송강호만의 색을 입힌 것도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로 ‘소헌 왕후’를 연기한 전미선과 호흡 맞춰 위대한 군주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한다. 단 서사의 구체성과 밀도는 떨어지는 모양새로 픽션임을 염두에 둘 것, 정통 사극으로 접근한다면 당황할 수 있다.<황산벌>(2003), <평양성>(2011) 등의 제작과 기획, <사도>(2016) 각본 등 그간 30년 넘게 영화계에 몸담으면서 사극 작업에 일가견을 보인 조철현 감독의 연출 데뷔작이다.
2019년 7월 23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