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Anchor,2022

최근 완도에서 벌어진 일가족 실종-사망사건은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켰지만 자살자의 살인 또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자살은 곧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를 원하지 않은(혹은 원했다고 확신할 수 없는) 아이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결코 자살이라 할 수 없으며, 제아무리 자신이 나은 자식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목숨을 빼앗은 행위는 무조건 살인으로 규정해야 마땅할 것이다. 홀로 남겨질 아픔에 대한 걱정 역시도 그들의 이기적인 판단이 만들어 낸 잘못된 선택이었을 뿐이다.

스릴러 영화임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보게 된 앵커라는 제목의 영화는 초반부터 습하고도 음침한 느낌을 풍기며 어떤 사건이 반드시 벌어지게 될 것임을 미리 깔고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우연히 목격하게 된 그리고 이혜영이라는 단어는 그녀의 존재가 이 영화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관객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단순히 특별출연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그렇게 크레딧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영화는 유독 그 포인트가 눈에 잘 들어왔던 것 같다. 마치 일부러 그녀의 정체를 드러내고 싶었던 것처럼.

그렇게 영화의 분위기는 계속 그 상태를 유지한 채 뭔가 위험한 사건이 벌어지게 될 것임을 암시하는데, 여기서 걸려오는 한통의 전화는 이 영화의 주요 사건의 시작인 동시에 주인공에게 벌어질(이미 벌어진) 사건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미혼모의 사망 사건)으로 그려진다. 게다가 이 사건 이외의 또 다른 자살 사건 역시도 이와 전혀 다르지 않은 형태의 것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하나의 틀 안에 담을 수 있는 동일한 성질의 것임이 밝혀지며 영화는 오직 하나의 사건만을 계속 강조하고 있다.

누군가에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존재였던 정세라(천우희)는 그녀가 지니고 있는 일종의 히스테릭에 가까운 질병이 해리성 인격 장애임을 깨닫게 되며 모든 사건은 해결되지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왜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 그녀는 왜 하필 그녀의 엄마 이소정(이혜영)의 인격을 갖게 되었는지를 파헤치는 것에 있다. 물론 영화의 재미를 위해 그 비밀은 꼼꼼히 숨기고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 사이에 진실들을 하나씩 꺼내며 노력한 흔적은 있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메시지다. 영화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썩은 사과를 깎는 이소정을 보며 불완전한 어머니의 존재를 느끼게 되고 심지어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까지도 하게 만들지만, 남편의 등장과 그의 대사를 통해 그녀는 적어도 최근까지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최인호(신하균)의 등장과 함께 툭 튀어 나온 해리성 장애에 관한 이야기는 그간 숨겨왔던 비밀을 너무 쉽게 까발려버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지만, 아직 그런 유형의 영화를 자주 접하지 않은 이들에겐 적당한 복선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 히치콕의 사이코도 함께 연상되면서.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세라의 욕망은 소정에 의해 만들어진 전이된 욕망이었으며 그녀의 지나친 욕심, 과오가 빚어낸 재앙이었던 것이다. 성공하고자 하는 욕망은 곧 실패에 대한 책임을 자신의 딸에게로 떠넘기며 그녀와 함께 자살을 시도하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세라에게로 이어지고 소정의 완전한 죽음을 통해 뱃속의 아이를 잃게 되는 결과로까지 이어진다. 그렇게 영화는 세라의 이야기를 유사한 사건에 빗대어 그려내고 그 안에서 계속 머무르게 만든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는 무한루프의 지옥과도 같은 세상.

일가족 자살 사건이 벌어지면 대부분은 사회를 탓하게 된다. 무조건 틀린 것은 아니겠지만 모든 자살에는 각자의 이유가 있고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이를 하나의 기준에 빗대어 판단하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그 안에 존재하는 살인에 대한 문제는 반드시 공론화해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본인이 선택하지도 않은 죽음을 자살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묶을 이유는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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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릴러 장르에 지루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
해리성 인격장애를 소재로 한 영화에 관심이 있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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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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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정지연배우: 천우희, 신하균, 이혜영장르: 스릴러등급: 15세 이상 관람가시간: 111분개봉: 4월 20일간단평메인 뉴스 진행자이자 방송국 간판 앵커인 ‘세라’(천우희). 뭇 아나운서들이 부러워할 표본 같은 커리어를 자랑하지만, 오늘의 성공이 장밋빛 내일을 담보하는 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신경전과 경쟁 속에서 어딘가 불안정하고 신경질적인 면모를 언뜻언뜻 드러내던 그는 생방송 5분 전에 자신을 지목한 제보전화를 받는다. 세라가 제보자 모녀의 죽음을 발견한 최초의 목격자가 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다룬 <앵커>는 모처럼 만나는 심리 스릴러다. 성공한 사람의 내면에 도사린 불안과 왜곡된 감정을 여성을 중심축으로 삼아 스릴 있게 풀어낸다. ‘애정과 집착’이라는 건강하지 못한 모녀 관계를 추동력 삼아 뻗어가는 영화는 그 근간의 정서로 여성에게 특히 무겁게 부과되는 출산과 양육의 문제를 주목한다. 딸(천우희), 엄마(이혜영), 최면치료를 하는 정신과 의사(신하균)의 단출한 인물 구성과 소재에서 오는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서스펜스의 강약과 고저 조율에 성공,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사운드와 이혜영의 ‘얼굴’ 자체가 서스펜스를 끌어올리는 주효한 포인트다. 단편 <소년병>(2013), <감기>(2014) 등의 정지연 감독이 손수 각본을 쓰고 연출한 장편 데뷔작이다.
2022년 4월 20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