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죽었다
We Will Be Ok , 2014

내일 지구가 멸망하면 당신의 선택은? 영화배우를 꿈꾸는 상석은 친구들과 함께 소위 ‘대박’을 터뜨릴 작품을 찍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세상일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만은 않는 법. 모든 게 서툴고 어색한 현장 분위기 속에서 영화를 생각만큼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는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한 촬영감독과 여배우가 떠나면서 상석의 영화 제작은 무산될 위기를 맞는다.
상석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를 새로 써 내려가고, 신비로운 분위기의 여인 이화를 만나면서 자신의 삶과 목표를 다시 한 번 돌아본다. 독립영화 <그들이 죽었다>는 이 시대의 모든 힘겨운 청춘들과 그들의 꿈을 그리고 있다.

영화인지, 현실인지 경계가 모호하다. 감독이 작품 속에서 표현하는 것은 감독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힘겨워하는 이 세대 모든 청춘들의 이야기다. 괜찮다고, 다 잘 될 거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겉으로는 웃지만 누구나 마음속으로는 불안함을 느끼기 마련이다. 입시, 취업난, 열정페이, 부모의 재력으로까지 이어지는 요즘 세상살이 앞에서 젊은 청춘들은 힘들고 또 의지할 데 없이 외로워한다. <그들이 죽었다>는 평화로운 분위기와 담담한 대사로 관객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나씩 툭툭 던진다.

모든 게 처음에는 달콤하다. 꿈이 있고 목표가 있다. 상석은 자신의 영화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상영되고, 큰 상을 받고, 영화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거라고 믿는다. 그건 세상을 잘 모르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객기이자 부러운 천진함이다.
하지만 상석과 그 친구들이 세상의 냉정함을 깨닫게 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모든 게 처음이고, 또 미숙한 멤버들은 영화 제작의 기초조차 제대로 모른다. 가진 건 열정뿐이라는 상황 속에서 꿈에 그리던 영화는 조금씩 멀어져만 간다.

목표를 포기해야 할 것 같을 때, 상석은 새로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야기이자 세상 모든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새로운 시나리오는 멋과 재미를 가장했던 저번 작품보다 훨씬 진솔했다. 그게 <그들이 죽었다>만이 갖는 색다른 매력이다.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구성이 돋보이지는 않지만, 진심으로 관객에게 어필하고 싶다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물론 이런 부분이 매 작품에서 성공하는 건 아니다. 젊은 감독의 진심이 담긴 시도이기에 관객들은 반응하고, 또 공감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단조로움 속에 보여주는 의미가 시선을 사로잡고 자기 자신의 삶을 한번 되돌아보게 만든다.

영화는 보여지는 것이다. 보여지는 것들은 사람을 바꾼다. 사람들이 변하면 세상이 달라진다. <그들이 죽었다>는 분명 대형극장에서 수천만의 관객을 끌어 모은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아니다. 그러나 거물급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용한 공감대가 존재한다. 인물의 대사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고, 숨소리와 표정변화 하나에 어깨가 움찔움찔한다.
앞으로의 스토리를 점치는 게 아니라 지금 상황을 어떻게든 이겨냈으면, 하고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살면서 힘든 일을 겪는다. 그 힘든 일이 때로는 피할 수 없는 벽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겨내지 못한다고 해서 절망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우리는 슈퍼맨이 아니고 정의의 히어로도 아니다. 피할 땐 피하고, 참아야 할 땐 참아야 하는 범인들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마음이 편하다. 괜찮다. 실패는 부끄러운 게 아니다. 그런 마음을 차분하게 다독거려 주는 듯한 작품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단조롭고 차분하다. 한없이 조용해서 어딘지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열정은 있다. 지금 당장은 빛나지 않는 것이더라도, 그건 분명히 자기만의 색채를 지닌 꿈이다. 누군가 알아봐주지 않아도 괜찮다. 지금은 작아도, 언젠가는 크게 자라서 빛이 날 테니까. <그들이 죽었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글쎄. 종말론은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되풀이되어 왔다. 그때마다 새로운 결심과 다짐을 반복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만이 최선이다. 마지막 하루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지 말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돌아보고, 그대로 살아가라.

조용하게 시작하여 폭발적인 에너지를 끌어내는 작품이다. 관객은 언제나 영화 속 주인공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응원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영화 속 주인공과 스스로가 겹쳐지며, 마음 한구석이 쿡 찔리는 것 같은 뭉클함이 밀려온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슬픔이다.
단조로운 일상 드라마라기에는 무겁고, 청춘들의 꿈과 희망을 다룬 성장물이라기에는 현실성이 짙다. 딱히 어떤 장르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색다른 분위기로 다가올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일상에 지쳐서 힘들 때, 혹은 실패를 겪어서 슬플 때 찾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 독립영화는 미숙하고 어설프다는 편견이 깨어진다. 물론 다듬어지지 않은 촬영기법, 프로의 작품보다 어색한 분위기가 곳곳에 녹아들어 있지만 그 조금의 요소들이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솔직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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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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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hmj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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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단역 배우 출신 감독 백재호의 연출 데뷔작 <그들이 죽었다>는 주인공 상석이 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데 좌절하고 직접 영화를 만들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자전적인 성향이 강한 <그들이 죽었다>는 백재호 감독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듯한 여러가지 갈등의 디테일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독립영화 현장을 한 번이라도 경험한 이들이라면, 혹은 절망 끝에서 희망을 발견하려 애쓴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고 먹먹해지는 순간들을 빚어낸다. 특히 주인공 상석이 유서를 남기고 흐느끼는 순간은 무기력한 청춘의 마음을 정확하게 조준하고 강타한다. 영화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 선 청춘들의 이야기답게,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답게, 현실과 판타지의 영역을 아찔하게 넘나들며 아슬아슬한 균형을 유지한다. 이는 여타 영화라면 만족스럽지 않았을 법한 영화의 대범한 마무리 방식을 이내 수긍하게 만드는 묘한 힘을 발휘한다. 배우들의 능수능란한 연기나 영상의 때깔이 영화 감상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라면 <그들이 죽었다>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은 거칠고 어설퍼도 진심이 묻어나는 인물들의 치열한 고민을, 그리고 그 고민 끝에 얻은 삶에 대한 긍정을 공유할 마음이 있다면 <그들이 죽었다>는 웬만한 상업영화 이상의 값어치를 할 것이다.
| 글_최정인 기자 ( jeongin@movis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