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경궁 홍씨
(DnC Live)
조선 왕조 500년 역사 속 비단 기구한 운명을 겪은 비극적인 여인이 혜경궁 홍씨 하나 뿐은 아닐 것이다. 일본 군인들의 손아귀에 죽임을 당해야 했던 명성황후, 병자호란으로 인해 7년간의 볼모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고향에서 남편을 잃어야 했던 강빈, 폐서인이 되어 궁에서 쫓겨났었던 인현왕후까지... 세상 사람들 모두의 삶을 들여다보면 각각의 사연과 슬픔이 있지만, 아마도 혜경궁 홍씨의 삶의 슬픔은 우리가 가늠하지 못할 것 같다.
잘 알다시피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부인이며, 많은 업적을 세운 정조의 생모이다. 그녀가 쓴 <한중록>도 유명한데, 일생 팔십여 년 중 칠십여 년을 궁중에서 살아간 그녀의 삶을 재현한 연극 한 편이 있다. 연극 <혜경궁 홍씨>를 영화로 재구성해 개봉한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그녀의 팍팍한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영화의 시작은 정조가 수원 화성 행차에서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열어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날 밤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의 혼령을 마주하고, 기억에 묻어두었던 아주 오래전 그 날로 돌아가게 된다.
그녀는 1735년 태어났다. 부친인 홍봉한은 그녀가 태어나기 전 검은 용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고 한다. 그러니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집안이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라왔다. 그리고 그렇게 사랑받던 노론 집안의 어린 여자아이는 조선의 세자빈이 된다. 그녀 나이 10살이었다고 한다.
그녀와 동갑이었던 남편 사도세자는 영조의 두 번째 왕자였다. 영조의 첫 아들인 효장세자는 9세로 요절하고 둘째였던 사도세자가 세자 책봉을 받게 된다. 처음에는 재능이 넘치는 아들을 사랑했던 영조지만, 영조와 사도세자의 생각은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영조 38년 윤5월 13일, 사도 세자가 처벌되던 날의 기록을 보면 ‘세자의 천품과 자질이 탁월해 임금이 매우 사랑했는데, 10여 세 뒤부터 점차 학문에 태만하게 되었고, 대리청정한 뒤부터 질병이 생겨 천성을 잃었다’고 지적한다.
내정되다 시피 세자빈이 된 혜경궁 홍씨는 집안에서와 마찬가지로 궁궐에서도 귀여움을 독차지 했다고 한다. 심성 곧고 예의 바른 그녀는 시어머니인 선희궁과 시누이들인 옹주들과 함께 어울리며 평화로운 나날을 지낸다. 하지만 사람이 좋다고 자리도 편한건 아니듯이 하루아침에 잠자리가 바뀌고 낯선 사람들 틈에서 규율에 얽매여 살아야 했던 10살의 어린아이는 매사가 긴장이고, 어려웠을 것이다.
최근의 많은 연구들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다른식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일간에서는 사도세자가 정신적인 문제가 있어 안 좋은 행동을 많이 해서 죄를 받았다고 하지만, 한편에서는 아버지인 영조와의 의견 대립이 큰 문제였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다들 알다시피 생모가 무수리라는 점은 영조의 가장 큰 약점이었고, 형이었던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문 또한 그가 죽을 때까지 영조를 따라다녔다. 그리고 영조는 자식마저도 자신을 형을 죽인 살인자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된다. 그러면서 이들 부자 사이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간다.
한없이 어려운 시아버지와 이해할 수 없는 남편 사이에서 세자빈이었던 홍씨는 어쩔 줄 몰라한다. 그러던 와중 친정어머니도 세상을 떠나고 세자 편을 들어주었던 대비와 왕비마저 승하하자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를 가로막고 말려줄 사람이 없어지게 된다. 결국 부자 사이의 불화는 점점 가속도를 붙여가며 악화되기에 이른다. 영조와의 불화로 인해 사도 세자의 상태는 점점 나빠지고 마침내 내시 김한채를 밀고자로 의심해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는 일이 생기고 만다.
힘없는 세자빈은 그런 남편을 지켜보기만 해야했다. 평소에는 멀쩡해보이지만 발작만 오면 전혀 다른 사람을 변하는 그를 지켜보던 그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마침내 세자의 생모인 선희궁은 세자의 행태를 모두 영조에게 밝히고 세자빈 홍씨는 자신의 가문인 노론의 쪽에 서서 아들을 지키기 위해 남편을 버리게 된다. 그리고 영조 38년 윤5월 13일, 영조는 세자를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뒤조에 가두었다. 그리고 사도세자는 9일만에 세상을 떠나게 된다.
세자가 폐서인됨에 따라 세자빈의 위치도 달라졌다. 그녀는 궁호를 받고, 어린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살얼음 걷는 듯한 그녀의 궁궐 생활이 펼쳐진다. 시아버지 영조의 성품을 잘 알고있던 혜경궁 홍씨는 영조에게 원망과 비난 대신 고맙다는 인사를 했고, 그런 그녀의 태도에 영조는 감격해 칭찬했다고 한다.
온갖 어려움과 슬픔 속에서도 아들을 잘 지켜온 그녀는 결국 1776년 3월 드디어 아들을 왕위에 앉히게 된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혜빈 홍씨를 혜경궁 홍씨로 높이고 효를 다했다고 한다. 정조 사후에도 15년 동안 더 생을 살다간 그녀, 혜경궁 홍씨. 그녀의 마음에 어떤 이야기와 얼마나 큰 슬픔이 남아 있을까. 그녀의 삶을 한편의 영화를 통해 되새겨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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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역사의 속살을 드러낸 여인의 기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