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떠나라
The Big Scene,2005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풀어나가고 상황을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다른 생각들을 스크린에 담아내던 영화감독 장진은 1995년 <기막힌 사내들>로 감독 데뷔한 이후 발표하는 작품들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고수하며 장진 매니아층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소개할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는 장진 스러운 발상들을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준 영화로, 살인사건 용의자를 심문하는 베테랑 검사의 모습부터 수사하는 과정까지를 모두 TV를 통해서 생중계 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부터 시작한다.

영화의 장르는 미스터리 코미디물로 수사극 형태를 띄고 있지만 기존 수사극의 전개방식 과는 전혀 다른 형식을 하고 있다. 미스터리 스릴러에 블랙코미디가 조금씩 섞여 있고 치고받는 액션은 등장하지 않지만 고도의 심리전을 펼쳐놓으며 액션 못지않게 재미있는 색다른 장르의 영화가 탄생한 것이다. 이전 한 번도 시도한 적이 없는 수사극에 도전하는 장진 감독을 든든하게 지원해주는 배우들의 면면도 강렬하다. <신라의 달밤>이나 <광복절 특사> 같은 코미디물은 물론이고 사극 스릴러 <혈의 누> 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소화해낸 차승원은 최연기 검사 역할을 맡아 강한 남성미를 물씬 풍기고, 영화 <우리 형>에서 다정하고 해맑은 모습을 보여주던 신하균은 속내를 알 수 없는 용의자 영훈으로 변신하여 최연기 검사의 거친 심문과 TV로 생중계 된다는 부담 속에서도 한 치 물러서지 않고 받아치는 날카로운 모습을 선보인다.

강남의 특급 호텔에서 미모의 카피라이터 정유정(김지수)이 날카로운 흉기에 9군데나 찔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자 방송사 에서는 범죄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취지아래 전문가들을 패널로 섭외하여 생방송으로 수사 쇼를 진행한다. 범행 현장에서 검거된 용의자 김영훈을 전설의 검사 최연기가 취조하는 과정들은 TV를 통해 전국에 생방송 되고 있었다. 분당 시청률이 70%넘고 생방송으로 진행된다는 부담감 때문에 최검사는 쉴 새 없이 다그치지만 용의자 영훈은 침착하게 대응하며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보인다. 거젓말 탐지기를 이용 해봐도 소용이 없자 사건 당일 정유정이 묵었던 1207호실에 다녀간 8명의 용의자들을 불러들인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는 사건이 나기 전 옆방에 투숙했던 한무숙과 김창화 커플로 한무숙은 아버지와 불륜관계에 있던 정유정과 몹시 안 좋은 관계였던 것으로 드러나면서 집요한 추궁이 시작된다. 드러나지 않았던 또 한 명의 용의자는 호텔내 모든 CCTV의 시야각을 파악할 수 있는 인물로 범행 추정시간에 12층 CCTV에 녹화된 영상을 삭제하고 다른 CCTV에도 자신의 모습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치밀함을 보였다. PM 8:00경 지배인의 지시로 정유정에게 물을 가져다 준 벨보이는 정유정이 그날따라 팁을 주지 않았다고 불평을 토로하였고, 사망 추정시간과 가장 근접한 PM 9:50분경 에는 맹인 안마사가 일본 관광객의 안마 서비스를 위해 호텔에 왔다가 실수로 정유정의 객실을 방문하여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한다.

쉽게 해결될 것만 같았던 정유정 살인사건은 또 다른 용의자들이 등장하며 점점 미궁속으로 빠져들고 그녀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부터는 더욱 혼란스러워 진다. 사람을 죽였지만 살인이 아닌 경우도 있고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살인이 될 수도 있다는 윤반장의 말처럼 정유정은 불륜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모진 비난을 혼자 짊어 진채 고통을 당해야만 했고, 사랑하던 사람의 죽음까지 겹치면서 그 상처는 심하게 파헤쳐지고 있었다. 유력한 용의자 김영훈은 어릴 적 입양 되 가족이 된 정유정의 남동생으로 그 역시도 정유정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날카로운 비수를 들이대며 그녀를 사지(死地)로 몰아넣었다. 맹인 안마사가 들었다는 장유정의 울음소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륜을 저지른 자신에게 던지는 한탄 섞인 자조이자, 죽음을 목전에 두고 살아왔던 삶에 돌이켜보며 흘린 회한의 눈물 이었을지도 모른다.

능력을 인정받아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그녀였지만 불행하게도 유부남 한동수 사장과 사랑에 빠지면서 모든 사람들은 돈에 눈이 멀었다며 진실한 사랑을 왜곡해 받아들였고 그녀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정유정의 죽음은 타인에 의한 것 이라기보다는 잔인한 세상으로 부터 탈출하기 위한 본인의 선택 이었다. 최연기 검사가 현장에서 수거한 약봉지와 동료검사 성준이 가지고 있던 정유정의 여권, 울음소리를 들었다는 맹인 안마사의 진술 이 세 가지만 가지고도 정유정의 죽음에 관한 의문점은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세상은 평온하게 쉬고자 했던 그녀를 가만 놔두지 않고 시체를 향해 난도질을 했으며 방송사는 오로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하였다. 내부고발자로 낙인 찍혀 있던 검사 성준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해야만 했고 누나 정유정의 죽음에 통곡하던 동생 김영훈은 회심의 미소 지으며 탐욕스러운 악마의 본성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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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 감독 특유의 풍자와 유머가 곁들어진 미스터리 수사극
반전영화를 좋아하시는 분들께 강추하는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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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KANG ME JU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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