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순
Yongsoon , 2017
개인적으로 용순이 캐릭터에 대해서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남자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소년시절을 지나 청년 시절까지 용순이처럼 그렇게 무언가에 매달려본 적이 없는 까닭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학생 용순의 집착과 언어, 절친한 친구들의 존재는 좀 상상 속의 세계가 아닌가.
하지만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난 후 잔잔하게 남는 여운은 길고 깊다. 이어지는 여운으로 상상해보면, 용순이는 체대를 입학하지는 않았을 것 같고, 미래의 남자에 대해서 확고한 개념을 장착했을 것이라 예상된다. 뜨겁게 좋아하고 모든 것을 걸었던 용순이의 십대시절 마지막 부분은 그렇게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면서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행복을 주기도 한다.
학생과 선생님의 열애, 그 금기시 되는 관계의 제약을 영화는 일단 건너뛰고 시작한다. 용순이(이수경)의 입장에서는 이미 체육교사(박근록)는 연인이고 이들의 학교 생활은 그저 학생과 제자 사이이다. 그렇다면 체육교사의 입장에서도 용순이가 연인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체육교사는 먼저 육상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하는 당면 과제가 있고, 그로서 윗사람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아야하며, 교사로서도 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평탄하게 학교 생활을 하도록 지도 업무가 있다. 그러니 용순의 사랑 앞에서 체육교사의 입장은 딱 그 정도의 선이다.
한편, 용순이에게는 친한 친구가 둘 있는데 그 중 하나인 빡큐(김동영)가 체육 선생이 모텔을 가는 것을 보고 용순에게 전한다. 이 때부터 용순의 사랑은 흔들린다. 아직 사춘기가 완전히 지나가지 않은 때, 의심스러운 사랑의 해결에 온 힘을 쏟는 용순의 하루 하루는 군 대항 육상대회를 대비하여 훈련도 해야 하고 선생님을 감시해야 하는 일도 수행 하는 등 정신없이 지나간다. 또하나의 친구 문희는 조력자처럼 용순의 집착을 응원하지만 이 위태로운 상황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 와중에 아빠는 새엄마를 집으로 들이고 몽골에서 온 새엄마에게 용순은 쌓였던 응분을 쏟아내게 된다. 좌충우돌하는 용순은 달리고 달리면서 10대의 마지막을 뜨겁게 보내게 된다. 뜨거운 여름날을 보내는 18세 소녀의 사랑과 성장기는 어떻게 진화될까.
엄마에 대한 그리움, 처한 현실에 대한 극복으로 달리고 달리는 하니처럼 용순은 육상대회 포스터를 우연히 보고서는 달리고 달린다. 그런 용순이를 보면 하니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엄마가 없이 아빠와 살아왔던 어린 시절, 그리고 지금 짝사랑의 흔들리는 마음, 무언가 확실치 않은 10대의 답답함 등으로 복잡다난한 심리적 부산함을 견디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렇게 무겁지도 않게, 심리묘사에 천착하지 않고 날렵하고 유연하게 진행된다. 먼저, 학교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 대해서 당연히 거치게 되는 윤리적 고민을 일단 제껴둔다. 그런 논의는 사실 <용순>에게 필요도 없다. 18세 소녀의 연인이 다만 연상이고 직업이 선생이라는 것 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작정이기 때문이다.
학생 때 선생님을 좋아하게 되는 것은 마치 성장기의 필수 과정처럼 지나가는 행사일 수 있다. 대부분의 짝사랑은 선생님이었다는 어느 통계도 용순의 마음을 이해시켜준다.
오히려 답답한 것은 체육교사이다. 체육교사가 보여주는 이중적이고 현실적인 자세는 교사로서의 지위보다는 직장 생활인으로서의 면면이 더 크다. 그러나 그가 견지하는 용순과의 거리는 한편 영리한 선택이라 보여진다. 선을 넘지 않도록, 이 여름이 올바르게 지나가도록 말이다.
아빠가 데리고 온 새엄마는 영화에서 또다른 중심축을 만든다. 꽁꽁 닫아진 용순이의 마음처럼 용순이의 방은 비밀의 공간이자 공유할 수 없는 용순이의 심리이다. 그 방을 열고 들어가는 인물이 바로 새엄마이다. 용순이에게는 사랑보다는 엄마가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죽기 직전 자신의 사랑을 찾아 떠났는데 용순이는 자신의 짝사랑을 그래서 집착과 원한으로 대하는 심리의 혼선을 겪는 것일 수도 있다.
대신 용순이에게 소중한 친구 빡큐와 문희는 학창시절 하나쯤이 있었던 꼭 그런 현실적인 친구들이다. 특히 빡큐역을 한 김동영은 영화 속에서 웃음을 주기도 하지만 스토리를 엮고 반전시키는데 큰 조연을 한다. 이미 <위대한 소원>에서 안재홍, 류덕환과 조합을 이뤘던 남준이 역을 그대로 이어서 빡큐로 또한번 등극한 모습이다. <위대한 소원>에서도 그렇게 상남자 흉내를 어설프게 내면서 친구의 우정을 차곡차곡 쌓았던 관록이 그대로 배여있다.
머리를 질끈 묶고 교복을 입은 용순이는 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고생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용순역의 이수경의 마스크가 이질적이지 않은 것도 매력이지만 10대의 고민과 저돌적인 행동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연기가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기 때문이다. 청소년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의 예쁘게 포장된 모습은 전혀 볼 수 없고 오직 본인의 연애에 대해서 투정하고 집착하고 심지어 집에 와서 온갖 신경질을 부리는 모습은 이수경의 다음 영화를 예상케 하는 재미를 준다.
<위대한 소원>의 김동영처럼 <응답하라 1988>에서 노을의 까칠한 여자친구로 선보인 적이 있던 이수경의 그 캐릭터가 용순이로 발전되었다면 <특별시민>의 변아름은 최민식의 딸로서 그 이전에 이미 10대 캐릭터는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영화의 마무리는 저돌적이다. 용순의 선택에 대해서 조금 의아할 수 있지만 영화 전체를 돌아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으리라 수긍이 된다. 그리고 용순이의 마지막 선택은 이 영화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공유하게 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지금 뜨거운 여름이 한창인 때, 용순이의 여름을 함께 하다보면 지난 추억도 새록새록 돋아날 것이고 땀흘리며 뛰는 용순이를 저절로 응원하게 될 것이다.
용순이에게 체육 교사가 하던 말을 따라하면서 말이다.
“고개 들어~!”
영화를 보면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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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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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남자를 쫓아 집을 나간 엄마를 기억하는 꼬마 ‘용순’. 3개월 후,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엄마의 애인을 만난다. 그의 ‘죽기 전 딸을 너무나 그리워했노라’ 는 말에 천진하게 ‘그럴 리가요’ 라고 대꾸한다. 아빠와 단둘이 남겨진 세상, 그 누구도 필요 없을 거 같았다. 하지만 꼬마는 자라 언제부터인지 아빠와는 서먹해지고 친구가 소중한 사춘기를 지나 마침내 첫사랑에 빠졌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날보다 더 뜨거운 사랑을 향해 육상부 소녀 ‘용순’은 치열하게 질주한다. ‘용순’ 의 사랑과 우정, 그리고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는 순하지만 심심하지 않다. 영화는 간결한 대사와 절제된 연출로 어린이도 어른도 아닌 그들의 세계를 파릇파릇 정갈히 담는다. 11살 소녀들의 리얼한 세계를 그렸던 <우리들>(2016)에 이은 아토ATO의 신작으로 섬세한 감정묘사는 여전하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신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제 21회 부산국제영화제(2016) 대명컬처웨이브상을 수상했다.
2017년 5월 31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 eunyoung.park@movist.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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