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보이
Modern Boy , 2008

사랑을 위해 시대와 맞선
암울한 사회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을 하는 운동가들과 일제에 굽실거리는 친일파들의 팽팽한 신경전 가운데 암울한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더욱 더 화려하고 퇴폐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존재했다. 양립하는 이념처럼 양립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방황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모던 보이>를 만나보자.

일제 강점기였던 1920년대 중반에서부터 1930년대 중반의 대한민국에는 새로운 소비문화가 생겨났다. 경성의 대중들이 향유하던 소비문화는 점차 변화를 겪어서 서구적인 스타일과 접목되어 새로운 유행이 불기 시작한 것이다. 1920년대 초를 기점으로 남촌에는 조지아 백화점, 미나카이 백화점, 히라다 백화점 들이 세워지면서 근대적인 소비문화가 확산되었고, 경성은 새로운 스타일의 중심이 되어갔다.
‘모던 걸’, ‘모던 보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27년경이었다. 이들은 퇴폐적인 삶을 향유하는 개인들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 현상의 하나로 해석되며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받아들여졌다. 모던 걸과 모던 보이의 등장으로 젊은 세대들을 새로운 의상, 언어, 헤어 스타일 등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었고 더 앞서서 새로운 유행을 선도해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새로운 시대의 한 가운데 한명의 청년이 있다. 1937년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는 1급 서기완인 이해명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친일파인 아버지의 그늘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며 살아가는 인물이다. 어느 날 단짝 친구인 신스케와 함께 놀러간 비밀 클럽에서 우연히 아름다운 여인 조난실을 만나 첫 눈에 반하게 된다. 결국 이해명은 온갖 방법을 통해 그녀와 연애를 시작하게 되지만, 그녀가 싸준 도시락이 총독부에서 폭발하게 되면서 인생이 뒤바뀌게 된다.

특히 주의 깊게 봐야 할 인물은 바로 조난실역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여배우라고 할 수 있는 김혜수가 연기한 조난실은 비밀을 간직한 매력 넘치는 여성이다. 가벼운 듯 깊이 있고, 차가운 듯 하지만 열정적인 양극성의 매력을 모두 가진 캐릭터인 조난실은 김혜수의 매력을 한껏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김혜수는 조난실을 연기하기 위해 일본어, 영어, 한국어로 노래를 직접 불렀으며 영화 속 장면을 위해 스윙댄스를 소화하기도 했다. 그녀가 연기하는 조난실역은 오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비밀스러운 여성 캐릭터라고 생각된다.
영화를 보다보면 2007년에 방영된 드라마 <경성 스캔들>이 많이 떠오른다. 영화 속 주인공 이해명과 같이 멋모른 채 살아가던 남자주인공 선우완이 독립운동을 하는 여성 나여경을 만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이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드라마 <경성 스캔들>에도 조난실과 같이 미스터리하고 매력적인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바로 한고은이 연기한 차송주이다. 여러모로 조난실과 버금가는 비밀스러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해명은 사건 후 난실을 찾아서 경성을 헤매게 되지만 결국 그가 알아낸 것은 난실은 이름도 여러 개, 직업도 여러 개 더 나아가 남자도 여러 명인 여인이라는 사실이었다. 자신을 압박해오는 위기 속에서도 해명은 난실을 향한 열망을 죽일 수 없다는 현실을 깨닫게 된다. 휘몰아쳐오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흘러가는 현실 속에서 해명의 삶은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되는 것일까?
영화를 연출한 정지우 감독은 어두운 사회 현실 속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추구하던 모던 보이가 열정을 다해 사랑하는 여자를 쫓기 위해 마주하는 갈등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감독은 모던 보이가 시대의 현실과 맞닥뜨리고 여러 사건을 통해 겪게 되는 그의 변화를 영화를 통해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결국 영화는 ‘시대와 개인 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영화의 스토리를 통해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셈이 된다.

해명역의 박해일이 말한 것처럼 영화는 즐겁게 보고 나면 감동과 여운이 남고, 영화적인 재미에도 충실하지만 관객들에게 던지는 의미 있는 질문을 담는데도 소홀이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관객들에게도 감독이 던지는 질문이 그대로 전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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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여운이 남는 영화를 찾는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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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현아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저작권자 ⓒ 원하는 모든것 파일조 filejo.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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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대나 사람들은 자기만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낸다. 시대의 변화와 풍파에 순응을 하거나 그것들에 저항을 하거나. 아니면 그냥 시대를 무시한 채 도를 닦거나. 그리고 이런 삶의 방식은 암울한 시대일수록 더욱더 극명하게 표출된다. 그런데 여기, <모던보이>안의 이 남자는 시대 따윈 상관없어 보인다. 그래서 대한의 국민이라는 타이틀이 가장 힘들었을 일제 강점기라도 별 다른 맘고생 없이 잘 먹고 잘 입고, 결과적으로 잘 산다. 자신의 전부를 걸게 될 어떤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해명(박해일)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인임에도 조선총독부 1급 서기관으로 일하며 상위 1%안의 부유한 생활을 하는 모던보이다. 좋은 차와 내다 팔면 목돈 제대로 될 것 같은 고가의 장신구들. 그리고 명랑한 1:9 신식 웨이브 헤어스타일로 치장한 미소에 뻑가며 안기는 아름다운 모던 걸들을 소유한 낭만의 화신. 이러한 모든 것을 가진 모던보이가 어느 날 절친한 일본인 검사 신스케(김남길)와 찾아간 모던 구락부에서 본 난실(김혜수)에게 빠져 버린다. 결국 비루한 거짓말과 찬란한 구애로 그녀를 얻지만, 안도하는 순간 그녀가 정성스레 싸준 도시락은 신념을 다한 폭탄으로 변신한다. 자신의 전부를 걸겠다 확신한 그녀는 이름이 열 개도 넘는 묘령의 여인이 되어 그의 모든 것을 가지고 사라지고. 해명은 난실을 미친 듯이 찾아다닌다. ‘니가 가져간 내 물건 다 내놔! 나쁜 기집애’ 이게 아니라, 자신을 사랑했던 난실의 마음을 다시 가져오기 위해서.영화 <모던보이>는 1937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치욕스럽고 거침없이 암울했던 아픈 시대. 하지만 영화는 그러한 시대에 앵글을 맞추기 보다는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에, 그리고 시대도, 부모도, 자신도 다 던져 버릴 수 있는 용기를 넘칠 만큼 안겨주는 사랑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전작 <해피엔드>와 <사랑니>에서 인물의 심리와 관계에 집중하며 세밀한 연출 감각을 선보였던 정지우 감독은 이번 <모던보이>에서 시대를 고증하고 묘사하는데 있어 자신의 섬세함을 영화 전반에 확장시킨다. 조선총독부와 미스코시 백화점, 숭례문과 지금의 서울역이 되어있는 경성역, 여기에 명동성당까지. 이렇게 당시 경성을 이루었던 주요한 장소들을 배우들의 의상과 소품, 음악, 그리고 그들의 실제 생활공간과 함께 버무려 놓아 영화제목에서 느껴지는 모던함을 영화전체에 주입시켰다. 그리고 다소 부족해 보이는 해명과 난실의 사랑, 해명과 신스케의 우정에 대한 디테일하고 끈끈한 인과관계에 대한 설명을 대신해 ‘해명’이라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사랑이라는 자아의 한 부분에 대부분을 집중한다. 이러한 집중과, 해명이 사랑을 이유로 변화하는 과정은 시대라는 것 따위는 전혀 상관없이 살 수 있을 것 같던 주인공이 어쩔 수 없이 시대에 부딪히며 좌절하고, 그로 인해 더욱더 사랑에 애틋해져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결국 그들의 마지막 선택을 통해 시대의 조건이라는 것이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전혀 무관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을 짊어지고 해명을 연기한 박해일의 연기는 영화에 대한 이해와 몰입을 하는데 있어서 적절할 만큼의 만족감을 안겨준다. 한번 본 여자에게 온 몸과 마음을 바치며 오직 한 가지 면에만 무모할 정도로 집착하는 해명의 모습은, 감정의 수위의 높고 낮음에 따라 그의 사랑이 애틋해 보이지 않을 수도, 혹은 ‘도대체 저 여자가 뭐 길래 저러는 건데?’라는 감정의 분산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종일관 점층적으로 고르게 유지되며 유쾌함과 진지함을 넘나드는 박해일의 감정 선은 그러한 초유의 사태를 막고 ‘이휴.. 뭔지 몰라도 얼마나 좋으면 저럴까..’라는 동정의 시선을 스크린으로 던져준다. 그리고 이러한 해명의 감정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조난실로 분한 김혜수의 발군의 표현력이다. 솔직히 연기적인 부분에 대해서 지적할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다소의 눈물연기나, 과정에 있어서 해명에 대한 아픈 사랑을 표현하는데 분명한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김혜수가 표현한 조난실은 달리 다른 여배우를 이입시키기 어려울 만큼 김혜수식 표현 방식에 깊이 박혀있고, 스크린을 꽉 채운 그녀의 농염한 춤과 노래는 순간을 흡입하기에 충분하다. <모던보이>의 사랑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사랑 방식과 비교하면 굉장히 무모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건 사람은 있고, 그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한 꿈을 그린다. 그렇게 사랑하는 이와 함께 그리는 꿈은 어떤 이유나 목적도 수반되지 않는다. 이처럼 <모던보이>안의 해명과 난실도 함께 꿈을 꾼다. 그들의 꿈은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다름과는 상관없는, 오직 사랑하는 이를 눈앞에 두고 살고 싶은 지극히 평범한 사랑의 소망이다. 하지만 시대를 떠안아야만 했던 어떤 이들에겐 평범한 이것이 가장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은 때론 자신에게, 때론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고 연민을 안기며, 더욱더 애틋한 시선으로 상대를 바라보게 한다.
2008년 9월 29일 월요일 | 글_김선영 기자 ( firstwriterk@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