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작보다 따뜻하게
Warm After All , 2016
짐작보다 따뜻하게. 이 영화는 매우 건조한 톤의 영화다. 아주 극적인 사건이랄 것도 없으며 독특하고 매력적이고 개성있는 인물이 나오는 영화도 아니다. 그렇다고 반전이 있거나 짐작하지 못할 만한 내용이 있지도 않다. 그럼에도 영화는 잘 만든 영화다. 바쁜 시대에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느린 연출법, 천천히 관찰하듯 다가가는 카메라 워킹, 현재 일어나는 큰 사건없이도 인물들의 내면을 잘 드러내는 자연스럽고 절제된 연기. 이 것들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한다.
사실 이런 영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조금 지겹게 느껴질 수도 있다. 배경음 하나 없고 긴장감 역시 없다. 절제되고 조용한 일상속의 작은 파장만 그저 담담하게 관찰할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파장을 겸허하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충동적이고 결렬하게, 언제 터질지 몰라 불안하게 느끼는 그들의 일상을 아주 잘 살펴 볼 수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감정 선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고 인정한다.
이야기의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아들을 잃은 한때 부부였던 남자와 여자의 삶을 그저 관찰하듯 보여주는 것이 다다. 다만 그들이 왜 그렇게 힘겨워 하는지, 아직도 아들을 잊지 못해 안달인지 이런 부분들에 대한 결정적 원인은 영화를 보면서 이해하게 된다.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들이 받은 상처와 그 고통은 어떻게 견뎌내야 바른 걸까. 영화를 보며 내내 고민하게 만드는 것들이다.
여기, 이 모든 불행을 시작하게 한 아들이 있다. 아들의 죽음은 갑작스러웠다. 하지만 두 남녀는 아들을 쉽게 보내지 못한다.
그들의 슬픔은 온전히 스스로에 대한 책임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스포일러기에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겠지만, 영화를 보면 두 남녀의 고통의 경위가 충분히 나온다.
그 중 주인공 여자이자 엄마인 은경의 가장 큰 슬픔은 아들에 대한 무관심이었을 것이다.
아들이 먹은 마지막 저녁은 컵라면과 김치였다. 편의점이 아닌 홀로 있는 집에서였다. 성우 활동으로 매우 바쁘게 살고 있던 은경은 평소 아들을 자주 챙겨주지 못하고 용돈이나 간단한 인스턴트음식 등으로 아들을 챙겼다. 마지막 먹은 컵라면이 화면 전반에 클로우즈 업 되는 이유는 분명한 것이었다.
결국 책임감 느낀 어미는 아들의 죽음을 인정 못하며, 여전히 아들이 곁에 있는 것처럼 하며 살아간다. 역시 가장 눈에 띄는 장면은 다른 것도 아닌 풍성한 아침 밥상이었다.
제주도에서 중고차 매매를 하며 살던 상문은 아들과 마지막 통화를 한다. 하지만 하필 그 통화로 아들의 운명이 불행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상문의 아픔은 이것에 기인한다. 모든 것을 자신의 탓으로 여기며 아픔을 꾹꾹 참고 산다. 조용히 음악을 듣고 조용히 형의 카페에 가고 조용히 회사로 돌아온다. 상문의 언어는 초반에 거의 없다. 오로지 음악을 들으며 참는 것이다.
그렇게 영화의 초반은 이들의 트라우마를 견뎌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다 영화가 조금씩 변화하는 부분이 생긴다.
이혼하여 이미 남이 된 이 둘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혼의 시기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아들이 있던 회상장면으로 봤을때, 이들의 이혼은 아들의 죽음 훨씬 전의 일일 것이다. 게다가 당시 은경은 새로운 남자친구가 있었던 상태다. 그녀는 새 남친에게 자신의 애교섞인 목소리를 들려주며 사랑 표현을 하곤 했다.
부부가 함께 살다 이혼을 한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자신의 1차적 인생을 모조리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엄청난 일이기에 이혼을 결심하기 까지는 굉장히 많은 고민과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둘은 그렇게 서로에 대한 감정이 전혀 없거나 혹은 굉장히 나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 죽었다. 그 과정에서 은경은 남편을 원망한다. 남편의 전화가 아들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분노하기도 했다.
남편도 그 죄책감으로 죽은 아들보다 남이 되어 떠나보낸 아내에게 더 큰 미안함이 있었던 것 처럼 보인다.
그렇게 적과 같은 둘은, 아들의 죽음으로 이혼 후 첫 만남을 갖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그 만남은 서로 원해서가 아닌, 남편의 죄책감과 아내의 분노가 충돌했기에 가능했던 아이러니다.
첫 만남보다 힘든 것이 있다. 다시 만남이다. 그것도 한때 사랑했던, 그리고 원망했던 누군가를 다시 만남.
남자가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은 단순하진 않다.
불꽃이 튀었을 것이고 어느 순간 아주 찬 단검처럼 싸늘하게 식었을 것이다.
그 사이에 있는 감정의 격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굴곡이 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 있던 두 남녀가 다시 만나기 위해서는 아마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꼐 나눌 수 있던 어느 상처가 필요할 것이다.
결국 이 영화가 집중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들의 죽음에 대한 그 트라우마, 그것을 겪는 것이라기보다는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원망했던 사랑의 감정이 다시 트는 그런 지점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때 아마 느끼게 될 것이다. 내가 정말 이 사람을 다 알고 있던 게 맞을까. 내가 이 사람을 다 안다고 너무 성급하게 판단하고 오해했던 것은 아닌가. 그 깨달음은 새로운 시작의 경종을 알려주며, 고민하고 있는 누군가의 삶을 새롭게 바꾸어 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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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sung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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