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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던 열정을 깨우쳐준 사람 <변호인> 송강호

2013년 12월 18일 수요일 | 서정환 기자

전국 시사회를 진행하고 있어요.
관객들에게 영화를 보여줌으로써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깨고 평범한 대중영화임을 알리고 싶어서 그런 것 같아요.

반응은 어땠나요?
아주 열광적이었습니다. 이건 사실이니까(웃음).

지역별로 반응이 좀 다르던가요?
아닙니다. 거의 비슷한데, 가장 뜨거웠던 건 대구였어요. 대구가 열광적이었고, 부산은 아침에 시사를 해서 그런지(웃음).

부산이 가장 반응이 좋았을 것 같은데 말이죠.
반응은 좋았는데, 아침이니까. 대구는 오후였단 말이죠. 그 차이(웃음). 부산은 어르신들이 많으셨어요. 젊은 친구들의 막, 그런 반응은 없는(웃음).

시사 이후 영화에 대한 정치적, 이념적 선입견이 사라지던가요?
예상을 벗어난 반응은 없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에 대한 선입견이 무너지고, 따뜻한 대중영화 한편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봐주시는 것 같아서 반가웠죠.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까지 올해 세 편째 개봉을 해요.
앞 두 작품은 규모도 컸고요, 정말 분에 넘치게 사랑도 많이 받았고요. <변호인>은 스케일이 큰 영화는 아니지만 또 다른 대중적인 영화가 된 것 같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올해 영화가 연달아 세 편이 나오긴 했지만, 세 작품이 달라서 다행이에요. 시공간도 다르고, 상이한 캐릭터를 연기해서 관객 입장에서는 자주 보는 것 같은데 (웃음) 다르니까 그게 다행스럽지 않나 싶어요.
신인 양우석 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요?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이창동 이런 거장 감독들과도 많이 했지만, 신인 감독들과도 많이 했잖아요. 신인 감독이라도 영화에 대한 관점이나 방향성이 공유가 된다면 얼마든지 작업할 수 있는 거죠. 물론 신인 감독이기 때문에 약간 기술적인 부분들이 부족할 수는 있지만, 그런 것들은 스탭들과 배우들이 메워주면 되니까요. 기술적인 측면보다는 어떤 관점이냐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양우석 감독은 신인이지만 불필요한 에너지를 쓰지 않아요. 그런 점들이 깔끔하고 좋더라고요. 촬영도 굉장히 빨리 끝났어요.

송우석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있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일종의 열정 같은 거였어요. 송우석이라는 인물이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못했던 시대에 그 열정으로 살아왔던 모습, 알고는 있지만 우리가 숨겨왔던 또는 잊어버렸던 것들을 찾아준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그런 지점이 연기하는데 있어서도 중요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송우석이 부림사건 변호를 맡으며 변화의 지점이 존재하는데, 두 가지 포인트가 중요했을 것 같아요. 돈을 벌기 위해 등기변호사, 세무변호사로서 속물적 모습을 보이던 사람이 왜 그 사건을 맡게 됐느냐, 그리고 동창회에서 학생운동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비치던 사람이 왜 그 사건을 맡게 됐느냐. 그 변화의 지점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어가려 했나요?
송우석은 변호사 이전에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가장 갈구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사법소사들이 시위하러 사무실 앞에 왔을 때 일갈하잖아요. 내가 법을 어겼느냐, 라고 말한 건 남의 인생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원칙을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그런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부딪힘이 급변하는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아요. 실리와 사회적 역학관계를 따지기 보다는 기본적인 삶의 원칙과 상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가장 컸고, 인생에서 부당함을 느끼고 그 부당함이 사람을 변하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겉으로는 물론 배고플 때 은혜를 베풀어준 국밥집 아주머니에 대한 인간적 관계가 있겠지만, 실제로 가장 큰 힘은 그 부당함이었던 것 같아요.

송우석을 연기하는데 있어 중점을 뒀다는 열정이라는 것이 송우석이 어떤 식의 삶의 방식을 택하든 간에 균일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인물을 미화시키기보다는 입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내려는 여러 장치들도 그런 부분을 뒷받침한 것 같고요.
그래서 저는 국밥집에서 이성민씨와 싸우는 그 시퀀스가 처음부터 그렇게 좋았어요. 시나리오 작법 상으로도 대단히 잘 쓰였고요. 그 시퀀스 안에는 호기롭게 국밥집에 들어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혼자 쓸쓸히 소금을 맞으며 나올 때까지 많은 것이 담겨있어요. 진우 어머니와의 관계는 물론이고 심지어 당시는 서로 존재를 모르지만 법정에 앉아있는 피의자 학생들과의 스치는 그런 인간의 만남에 대한 미장센, 허세를 부리는 송우석의 속물근성 등 그때까지 인간관계와 세계관이 다 소개되죠. 아주 자연스럽게 모든 것들이 그 안에 있더라고요. 특히나 영화적으로 잘 쓰인 장면이 아닌가 싶어서 좋아했고 촬영할 때도 재밌게 했습니다. 이성민씨는 워낙 친한 후배라 연기하는데 어찌나 웃기던지(웃음), 혼났어요. 이성민씨는 심각하게 연기하는데 너무 친한 친구니까 웃으면 안 되는데 웃음이 자꾸 나서 눈을 못 마주치겠더라고요(웃음). 재밌게 찍었어요.
일상적인 장면들에서는 애드립도 많이 구사했을 것 같아요.
아파트 집 주인과 마지막에 하는 대사가 애드립이었어요. 그 친구도 연극계 후배인데 너무 연기를 잘해서 깜짝 놀랐어요. 시나리오가 워낙 탄탄해서 제 감정의 리듬만 스스로 계산을 잘하면 됐어요. 공판 장면을 촬영할 때는 5일전부터 혼자 연습했어요. 그렇게 준비를 처음 해봤죠. 대사를 외우는 건 기본이고 1차부터 5차까지 공판이 입체적으로 다른 느낌을 주어야하기 때문에 그래서 혼자 연습을 많이 했어요. 감정도 다 계산이 돼있었고요. 감독님이 대본을 들고 찾아와서 상대 배우 역할도 해줬고, 촬영감독도 뒤늦게 알고 와서 제가 스스로 리허설 하는 것을 보며 카메라 위치나 앵글을 미리 계산해보기도 했고요. 실제로 연습할 때는 100%까지는 아니어도 7~80%까지는 감정을 올려서 했고, 리듬을 잘 계산해서 1차부터 5차 공판까지 촬영했던 기억이 납니다. 일상의 소소한 촬영을 할 때는 다른 작품 하듯이 편하게 가서 애드립도 하고 했지만, 공판 장면들은 철저한 계산과 감정의 준비된 리듬이 있었죠.

그렇게 준비한 법정 장면은 마음에 들게 나왔나요?
비교적 제가 마음속에 그려왔던 그림과 리듬이 만들어진 것 같아 좋았어요. 이제부터는 연습을 많이 해야겠구나, 생각을(웃음). 연습을 많이 하니까 좋아지네요(웃음). 다른 감독님들이 인터뷰 기사를 보면 나하고 할 때는 연습도 안하고 대충 와서 대충 연기했단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실까봐 걱정은 되지만, 그런 뜻은 아니고요(웃음).

다른 감독님들이 기사를 보고 이제부터는 대사를 많이 주겠죠(웃음).
(일동 폭소) 그러면 안 됩니다.

공판 장면들도 인상적이었고, 동창회 시퀀스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로는 국밥집 아주머니에게 밥값을 갚으러 간 장면이 가장 크게 마음을 움직였어요. 별다른 대사나 행동 없이도 꼭 껴안은 두 사람의 눈빛과 표정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만들고 가슴 따뜻하게 만들어주더군요.
밥값 안내고 도망가다가 진우랑 눈이 마주치잖아요. 저는 그때가 왜 그렇게 슬픈지. 아들이 태어난 날이잖아요. 인생 최고의 패배감, 가장 밑바닥의 패배감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한데 저는 이상하게 그 장면이 슬프더라고요.

제목이 ‘변호사’가 아닌 ‘변호인’이잖아요.
3차 공판에 그런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람을 변호한다는 거죠. 변호사가 피의자를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변호한다는 느낌. 그것이 이 영화에서는 중요했던 것 같아요.
80년대는 개인적으로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80년대는 저에게도 정말 많은 키워드가 있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연극. 이것들이 다 80년대에 저에게 왔던 겁니다. 그 이후로 9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그냥 배우로서의 삶, 아주 단순한 삶이었죠. 80년대가 저에게도 격동의 80년대였죠. 문화적인 과도기가 있었고요. 연극을 하는 제 입장에서 내적 혼란도 있었고 격동의 세월이었던 것 같아요.

근현대사를 다룬 <효자동 이발소>에서도 6~70년대의 소시민을 표현한 적이 있잖아요. 시대를 관통하는 소시민, 평범한 사람들의 역할에 대한 애착이 있는 것 같아요.
영화배우로서 판타지를 주는 배우가 아니라 친근하고 어디서나 만날법한 소시민적인 느낌의 배우다보니 그런 쪽의 영화나 배역들이 많이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많이 하게 됐어요. 박찬욱 감독하고 한 <복수는 나의 것>이나 <박쥐>같은 예외적인 작품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푸근하고 소시민적인 역할을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앞으로 다양한 캐릭터, 꼭 악역이 아니라도 비중을 떠나서 다양한 느낌을 주는, 앞으로 배우로서 노력해야하는 지점인 것 같아요.

<변호인>을 관객들이 어떻게 봐줬으면 싶나요.
정말 편견 없이 이 영화를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설국열차> <관상>했던 배우고 그런 영화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봐주시면, 그 영화들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는 대중영화로 받아들여주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영화를 본 사람들은 <변호인>이 외적 요소들로 판단할 영화가 아니라는 걸 알겠지만, 그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말들이 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런 상황이 지금까지 있었던 일련의 일들을 끌어와 많은 의혹으로 제기되는 것 같아요. 런던한국영화제에 출연작 두 편이 제외됐던 것도 그렇고요.
그 실체는 제가 정확하게 모릅니다. 그 얘기들이 진실일수도 있고 진실이 아닐 가능성도 있어요. 저는 궁금해 하지도 않고, 누군가 저에게 정확하게 알려주지도 않았고요.

더 나아간 질문이지만, 현재 사회분위기가 이렇다보니 혹시 <변호인>에 부당한 외적 압력이나 조치가 개입됐을 때, 영화를 좋게 본 사람들도 반응을 보이겠지만 제작진들도 일련의 대처와 대응을 하겠죠. 그런 단체 행동들에 동참할 의사가 있나요?
글쎄요. 그런 상황이 안 올 거라 생각하고요, 설사 만에 하나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때 가서 결정해야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가 그런 영화가 아니라는 걸 점점 더 많은 분들이 알게 되는 것 같고,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 해나가면 될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웃음).
올해 <8월의 크리스마스> <올드보이> 등이 재개봉했어요. 출연작 중에서는 어떤 작품이 재개봉했으면 하나요?
<올드보이> 10주년이잖아요. <살인의 추억> 10주년 상영회도 한국영상자료원에서 했거든요. 당시 스탭들, 배우들이 함께 영화를 보고 관객들과 GV도 했는데, 참 뜻 깊더라고요. 많이 늙었구나, 이런 생각도 들면서(웃음). <올드보이>도 다시 10년 만에 봤고, 최민식 선배는 프랑스 촬영으로 안계셨지만 출연 배우들, 박찬욱 감독과 함께 이야기도 나누고 했어요. 그런 재개봉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관객들이 가장 보고 싶은 영화들, 그게 저도 가장 보고 싶은 영화겠죠. 그나저나 제 작품은 왜 재개봉 안하는지 모르겠어요. 언젠가는 하겠죠? (웃음)

개인적으로는 <넘버 3>를 다시 한 번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요.
그러면 저는 <반칙왕>. 재밌을 것 같아요. 모든 작품을 다 아끼지만, 첫 주연작이기도 하고 너무 고생하면서 찍어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에요. 가장 자랑스러운 작품은... <변호인>입니다. (일동 폭소)

차기작은 언제쯤 계획하고 있나요?
지금까지는 없습니다. 확실한 건 내년 상반기까지는 휴식을 취할 것 같아요. 혹시 하게 되더라도 내년 하반기가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개봉은 내년에는 없는 거죠. 올해 세 작품이 연달아 나왔으니까 자연스럽게 휴식을 갖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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