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そして父になる, Like Father, Like Son, 2013

어릴 적, 필자는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원래 내 부모님은 다른 사람이고 지금 현재의 부모님이 나를 어쩔 수 없이 데려다가 키우고 있는 건 아닐까? 라고. 한국 대부분의 드라마에 반드시 들어가야 하는 양념이 하나 있는데, 그게 출생의 비밀인 걸 보니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나 보다. 이 영화의 주된 사건은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는 데서 시작된다.
11월, 1월, 4월 ......
누구나 처음 문제를 만나게 되면 당황하게 되는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갈등하고 번민하고 주변을 탓하고 자신을 탓하고 결국 시간이 갈수록 본질을 놓치게 된다. 이 영화는 3달을 하나의 사건으로 묶어 그 사이에 인물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갈등하고 화해하는지를 보여준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우리는 모두 지난 일을 후회하는데 익숙해져 있다. 오히려 지난 일을 교훈삼기 보다 모두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취해서 정말 소중한 사람들에게 많은 고통을 안겨다 준다. 사건은 일어나기 마련이고 그 사건에 다가서는 우리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하는 건 내가 다가온 사건보다는 나와 내 주변의 인물들을 봐야 하는 건 아닐까?
소유냐? 존재냐!
유대인으로서 정신분석학자이며 사회학자인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 란 책에서 새로운 인간의 특성으로 소유양식 포기, 나눔의 기쁨, 생명에 대한 사랑과 존경 등등 인간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다소 불가능해 보이는 언급을 한다.
그러나 우리 일상에서 발견되는 인간상은 그와는 반대인 경우가 많고 나 자신이 그런 경향을 보인다. 이 영화에서 류세이의 원래 아버지 료타도(후쿠야마 마사하루) 마찬가지이다. 그는 처음부터 망가져 본적이 없는 일등주의 아버지, 능력있고 이성적인 남자(어버지)의 상징이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차라리 처음부터 끝까지 속물적 근성을 드러내는 케이타의 원래 아버지 못생긴 사이키가(릴리 프랭키)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그는 애들한테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역설하면서 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이 느끼는 원초적인 감정인 사랑, 가족애,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틀을 넘어서는 함께 공존하는 인간애의 원형을 찾아가는 데 밑바당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거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료타는 원래 아들 류세이와 기른 아들 케이타를 모두 소유하고자 한다. 그는 물질적 풍요로 애들의 행복을 가늠하는 도시형 인간의 전형을 보여준다. 모든 걸 돈으로 해결하려 한다. 이 얼마나 기만적인 이중성 인가? 돈으로 살 수 있는거, 돈으로 살수 없는 거. 영화는 중반부에서 우리에게 이런 물음을 던지고 만다! 살 수 있는 것! 살 수 없는 것! 소유할 수 있는 것! 함께 존재하는 것.......
만두냐? 쇠고기냐?
애초의 이야기 전개의 균열을 극명하게 보여준 상징은 두 집안의 식사 장면에서부터였다. 시골에서 조그만 전파사를 운영하며 치매로 고생하는 노인을 모시고 사는 류세이의 가난한 환경. 그러나 가난한 간식을 대변하는 만두가 나오고 가족은 옹기종기 앉아서 기쁜 표정을 하고 있다.
반면에 케이타가 자란 노노미야의 집은 호텔 같은 주상복합 아파트로 보이며 류세이를 데려가서 첫 주말을 보내면서 소고기를 구워 먹는다. 그리고 다음 류세이는 혼자서 욕조에서 논다. 영화는 혼자노는 아이 장면에서 실제적인 부정의 부재를 노출시키고 가난해도 함께 먹고 목욕하는 류세이가 자란 환경과 대비시킨다.
낳은 정이냐? 기른 정이냐?
서로 떨어져 있어도 부모와 자식 간에는 닮는다! 당연한 소리다. 그러나 오래 함께 지내면 서로 닮아간다! 마치 부부처럼. 부모와 자식처럼. 영화는 같으면서도 다른 두 주장으로 우리에게 화두를 던진다. 낳은 정이냐? 기른 정이냐? 굳이 분리할 필요는 없지만 주인공을 통해 우리에게 마치 선택을 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게 만든다.
그냥 이대로 각자 모른 채 살까? 아니면 애들을 바꿀까? 그들이 결국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영화를 보시고 확인하시라! 그리고 원래 그들의 바뀐 운명에 대한 약간의 반전을 확인하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한국과 가장 가까운 나라이면서 섬나라 특성인지 아니면 두 나라의 기구한 운명인지 역사적으로 한국인의 심성과 다른 영화적인 발상과 이야기들로 사실 일본 영화가 한국에서 그리 잘 먹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필자도 일본 영화가 주는 묘한 이질성에 이따금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하고 그만 둔 경험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일본 소설과 영화들은 동양인이 가진 특유의 일원성과 감성을 담아내고 사실적 표현에 깊이가 있다. 이 영화의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소설가 지망생이었고 영화로 전향하여 독립 TV 프로덕션인 TV Man Union에서 일하며 경력을 시작했다. 첫 번째 장편 극영화인 <환상의 빛>(1995)으로 베를린영화제 골든오셀라상을 수상했으며, 네 번째 영화 <아무도 모른다>(2004)는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 영화 또한 2013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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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소중함을 되돌아 보고픈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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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파코스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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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아버지를 아버지로 만들까.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혈육에 대한, 아버지의 됨됨이에 대한 근원적 물음을 제기하며 아버지의 성장담을 풀어낸다. 극중 아버지 료타는 기른 아들 대신 낳은 아들을 택하면서 혈육의 의미, 아들의 의미, 아버지의 의미를 배워나간다. 그렇다고 료타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영화는 두 부모와 두 자식 모두를 통해 입체적 캐릭터들을 구현하며 동일한 상황에 처한 다른 등장인물들을 그려낸다. 이렇게 영화는 주인공에 초점을 맞추고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폭 넓은 깊이를 보여주며 영화란 매체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아들과의 생이별이란 신파적 주제를 정제된 감정으로 갈고 닦은 감독의 역량은 가히 놀라울 정도. 스필버그의 추천대로 모든 이에게 보여주고픈 영화다.
2013년 12월 12일 목요일 | 글_최지나 기자 (payphonelov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