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렛지
The Ledge,2022
어렸을 적엔 우정에 목숨을 거는 것이 꽤나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만일 친구와 동시에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다면 그에게 양보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라 상상하면서.. 의리에 취한 우정은 지금 돌이켜보면 상당히 쓸모없고 무의미한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친구와의 관계를 가장 중요시한다던 그 아이들은 이제 내 주변에 존재하지 않고, 오직 그들의 필요에 의해서만 가끔 연락이 올 뿐이다. 어른이 되었기에 어쩔 수 없다는 우스운 변명만 남긴 채 우린 그렇게 각자의 자리를 찾아가게 된 것이다.
초반부를 아주 잠깐 보고 최근 우연히 다시 찾아보게 된 버티칼 리미트라는 2000년대 초반의 영화와 많이 닮았다고 착각한 더 렛지라는 제목의 영화는 오히려 3류 영화가 가장 사랑하는 공포가 적당히 섞여있는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흔한 스릴러물이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던 것은 바로 초중반에 느낄 수 있었던 그 긴장감 넘치는 장면들 때문이었으며 바로 그 감정의 임팩트 덕분에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후반부는 살짝 지루한 모습도 보였기에.
결과적으로 그 흔한 소재를 암벽등반에 대입시켜 스릴 넘치게 만든 것은 상당히 괜찮았던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켈리(브리트니 애쉬워스)와 소피(아나스 퍼렐로)가 4명의 남자들을 만난 뒤 위험에 처하게 되는 장면까지는 다른 영화들과 크게 다를 바 없이 흘러간다. 이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전개일 뿐이며, 소피를 영화에서 빠르게 제거하고 켈리를 통해 그녀의 복수를 완성시키는 구조는 진부함에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어떤 흥미요소를 담아내는지가 관건인데..
이 영화가 가장 빛이 나던 순간은 바로 소피를 죽이는 4명의 남자를 켈리가 발견하고 도망치게 되는 그 순간이며, 켈리가 암벽을 통해 아슬아슬하게 도망치는 장면은 그녀가 결코 잡히지 않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안함을 배로 증폭시킨다. 그렇게 암벽에서 시작해 암벽에서 끝나게 되는 켈리의 도망 장면은 이 영화의 전부라 할 수 있는 키포인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부분은 바로 우정이란 이름으로 똘똘 뭉친 4명의 남자들의 관계이자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이다.
이 모든 사건의 중심인 조쉬(벤 램)는 켈리를 죽인 진범이자 친구들을 위험한 상황에 빠트리게 만든 인물이다. 만일 그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그 어떤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높을 것이며, 설령 어떤 문제가 발생했다할지라도 그런 식으로 일이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를 제외한 3명의 친구들이 뭉쳐서 3:1의 상황을 만들어 그를 곤란하게 만들었어도 일이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만, 폭력적인 성향을 활용한 조쉬의 이기적이면서도 거친 행동에 친구들은 동조하거나 침묵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협박을 당하며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관계가 되어버린다. 잭(루이스 보이어)은 조쉬가 테일러(데이빗 웨이맨)를 죽인 것을 알면서도 침묵하고, 레이놀즈(네이선 웰시)는 혁명을 꿈꾸면서도 본인이 주도적으로 나서진 못한다. 그저 마지막 순간에 잠깐 빛을 내고 사라질 뿐! 심지어 조쉬가 잭의 애인과 놀아난 사실을 밝히는 장면에서조차 그들은 비겁한 모습만 보일 뿐이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던 친구들과 알게 되었음에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까지..
다만 이런 유형의 영화가 지닌 장단점을 대부분의 관객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이 역시도 커다란 놀라움을 주진 못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통해 순간의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면, 우정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시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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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espoirvert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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