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들
The Snob,2019
사람은 누구나 속물이라는 말이 있다. 성인군자가 아닌 다음에야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서, 혹은 내면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남을 속이고 나 자신도 속이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기꺼이 속물이 되고자 하는 부류와 어쩌다 속물이 되어 버린 부류는 구분되어야 하지 않을까. 이 영화 <속물들>에 나오는 인물들은 두 부류 중에서 어디에 속하는지 애매모호할 지경이다. 기꺼이 속물이 되어서도 어쩌다가 속물이 된 것 같은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어떤 속물인지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미술작가 선우정(유다인)은 표절작품을 대놓고 전시하며 차용작품이라고 우긴다. 그러다 보니 업계에서 욕은 욕대로 먹고 고소까지 이어지면서 불편한 삶을 살고 있는 중이다. 그런 그녀를 예술적으로 여긴 유민미술관의 큐레이터 서진호(송재림)은 선우정만의 특별전시회를 제안한다. 그리고 둘은 잠자리를 갖게 된다.
선우정은 김형중(심희섭)을 애인으로 둔 상태인데 형중이 유민미술관에 낙하산 인사로 근무하게 된다. 즉, 세 사람의 관계는 이제 얽히고 섥힌 관계가 되어 버린다. 현중은 우정이 바람을 핀 것을 알게 되는데 우정의 옛 친구 탁소영(옥자연)이 나타나 형중을 자신이 유혹하겠다는 제안을 한다. 즉, 서로 바람 핀 것을 입막음하려는 맞바람인 것. 서로의 속내를 알아차린 상태에서 이제 서로의 맨얼굴을 봐야하는 순간이 다가오면서 긴장은 극에 달하고 우정이 추구하는 전시회는 물거품이 되어버리면서 이제는 뒤로 물러설 자리도 없어진다. 어차피 이렇게 된 상태라면 모두다 폭로해버리는 것이 잃을 것 없는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인냥 모든 것을 드러낸다. 부끄러움은 보는 사람의 몫인가…
위선의 인물들이 보여주는 막장의 한계를 따라가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다. 영화는 쉬운 언어로 쉽게 쉽게 진행된다.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이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위악은 그대로 현실로 묻혀지고 인물들의 속내는 장면과 장면 사이에 적절히 배치되어 나타난다. 특히 의외의 캐릭터를 완성한 유다인의 모습은 그동안 보여준 배역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유다인의 커리어에 한 획을 긋는 작품으로 인식될 것 같다. <강철대오 : 구국의 철가방>에서의 당찬 여대생 모습이나 최근 <올레>에서의 자유로운 게스트 하우스 여주인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오직 예술적 욕망의 화신으로 삶의 모든 것을 위태롭게 걸고 연애도 이력도 추구하는 예술도 날선 벼랑끝으로 내몬다. 바람을 피운 자신을 숨기기 위해서 애인을 바람피우게 만드는 것도 어찌보면본인의 치부일텐데 그것을 동창생에게 맡겨버리는 것은 영화적 설정을 훌쩍 뛰어넘는다.
결말부분에 나오지만 선우정은 탁소영에게 매달리는 인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인상도 받는데, 애인 형중의 집에 동거하는 것도 사실은 얹혀사는 정도였고 과거에도 소영의 집에서도 얹혀살았으며 앞에선 웃지만 뒤에선 뒷통수 친다는 말로 보아 예쁜 얼굴 뒤에 숨겨진 이면의 얼굴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전달해준다. 그런 이중적 인물을 표현한 유다인의 연기는 탄탄해서 연기 배역의 한 획을 긋는 작품이라고 말한 이유이다.
미술관, 갤러리, 큐레이터 등 무언가 고급스러운 예술 작업을 하고 문화를 이끌어내는 직업으로 인식되지만 그 사이에 벌어지는 어두운 사회적 이면의 사연들은 사회 뉴스에서 보아온 이슈들을 그대로 가져온 듯 하다. 임금체불, 낙하산 인사, 세금 탈루, 속고 속이는 배신…
예술은 원래 그런거다… 라고 말하기엔 상식과 보통의 법률 안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다. 표절은 표절이고 차용은 차용이기 때문이다. 예술과 외설의 차이는 종이 한장 차이라고 하는 것도 말장난에 불과하다. 미술계의 관행이 어떻든 그 세계를 살며시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며 젊은 남녀의 욕망에 차지하는 헛된 허상도 관찰할 수 있다.
2019년 막바지에 도착한 이 영화 <속물들>은 예술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검게 드리워진 욕망의 얼굴을 그대로 마주할 수 있게 하는 리얼리즘의 영화이자 코미디를 숨겨둔 부조리극이다. 연극으로 만들어도 좋을, 귀에 딱딱 꽂히는 대사도 매무 찰지다. 언제쯤 폭로가 터질까 조바조바하며 마지막 장면까지 달려가는 시간도 의외로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볼 수 있으니 환타지 블록버스터에 지친 관객에게 시원한 현실 영화로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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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C-Guy (파일조 무비스토리 패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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